‘유기 농산물은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환상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2 15: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반 농산물보다 건강에 좋지도, 영양분이 많지도, 맛이 뛰어나지도 않다…과장 광고 상술 경계해야

 

유기 농산물은 '건강한 먹거리'로 인식된다. 그러나 유기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보다 건강에 더 좋거나 깨끗한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유기농이란 하나의 친환경 농작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정의한 유기농은 이렇다. 3년 이상(다년생 이외 작물은 2년) 화학 비료나 화학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물을 이용해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런 농작법으로 재배한 것이 유기 농산물이다. 

 

사실 옛날엔 유기농이라는 말만 없었을 뿐, 대부분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다. 화학 비료가 없던 시절,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다. 화학 농약 대신 독초에 물을 타서 뿌렸다. 이렇게 해서 생산한 농산물은 그 양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여기저기 벌레 먹은 데가 있었다. 

 

정부와 농민은 한정된 땅에서 더 많은 수확물을 거두면서 해충의 피해를 덜 받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화학 비료와 화학 농약이다. 화학 비료는 인분 등으로 비료를 만들던 수고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작물에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했다. 화학 농약으로 병충해 걱정도 덜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소비자는 화학 비료와 농약이 없는 농산물을 원했다.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산물이 건강에 이로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다시 예전의 농사법과 비슷한 농작법이 유기농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그러나 유기 농산물에도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다. 다만 화학 비료 대신 유기물을 퇴비로 사용하고 화학 농약 대신 정부가 인정한 유기농 비료를 뿌린다.  

 

pixabay

 

항생제 있는 가축 분뇨로 재배한 유기 농산물? 

 

유기물이란 과거엔 인분이 대표적이었다면, 지금은 가축 분뇨나 음식물 찌꺼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축 분뇨를 구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 농가에선 으레 소를 키웠고 그 분뇨를 농사에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가에서 소를 키우지 않는다. 또 볏짚이나 식품공장에서 나온 찌꺼기 등 유기물은 냄새도 좋지 않아 퇴비를 주는 작업은 농민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유기물은 화학비료만큼 양분이 충분하지 않아 화학 비료만큼의 효과를 내려면 많은 양의 유기물이 필요하다. 

 

충북농업기술원 출신, 유기 농가 컨설턴트인 주선종 농학박사는 "유기농 비료의 조건이 까다롭다. 가축 분뇨를 구해도, 퇴비로 만들려면 적정 온도(55~75도)에서 5번 정도 뒤집어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점차 유기물 규정을 완화하는 추세"라며 "또 항생제를 투여한 가축의 분뇨에 항생제 성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런 가축 분뇨로 재배한 작물이 과연 유기 농산물인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무농약 농산물이라는 것이 생겼다. 화학 농약은 사용하지 않지만, 화학 비료를 어느 정도(권장 성분량의 3분의 1 이내) 사용한 농산물을 의미한다. 또 가축도 항생제·항균제·호르몬제(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것을 유기 축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처럼 가축에게 먹일 것이 풍족하지 않아 무항생제 축산물이라는 말도 생겼다. 항생제·항균제·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않지만, 일반 사료를 먹인 축산물을 말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유기농 농산물은 4920건, 무농약 농산물은 1만9000여 건이다. 유기 축산물은 92건, 무항생제 축산물은 6500건이다. 

 

이처럼 유기 농산물 재배는 까다롭다. 흔히 유기 농산물은 청정지역에서 깨끗한 흙과 물,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볕에서 수확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기 농산물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 어떻게 보면 자연환경이 아니라 인공환경인 셈이다. 인공 환경에서는 온도와 습도를 인위적으로 맞춰줘야 하는데, 영화처럼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첨단기능을 갖춘 비닐하우스는 드물다. 한 농업 전문가는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생산하는 유기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벌이 날아다니며 수정해야 토마토가 열릴 텐데 온도와 습도가 맞지 않았는지 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걸 보면 호르몬제(성장 촉진제)를 사용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밝혔다. 

 

 

정부 허가받지 않은 비료 사용하기도 

 

화학 비료와 화학 농약을 팍팍 치던 과거의 농작법 대신 유기 농작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려니 수확량이 예전만 못하다. 유기농 농산물의 생산량은 일반 경작의 80% 정도다. 또 유기농 농산물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세균이나 식중독균과 같은 미생물이 번식하기 쉽다. 외국에서도 이 문제가 골칫거리다. 일반 농산물보다 유기농 농산물은 더 위생적으로 취급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대부분은 과거 정통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온 70~80대여서 철저한 위생 관념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도 개선할 부분이다. 또 이런 미생물을 제거하려면 농약이 필요하다. 소비자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길 원하면서도 농작물은 깨끗하고 벌레가 먹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유기 농가는 편법을 사용한다.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비료나 농약을 조금씩 사용하는 것이다. 주 박사는 "유기 농가는 정부가 인정한 유기농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유기 농가는 자신들이 유기농 자재를 만들어 사용한다. 예를 들어, 할미꽃 등 독성식물을 발효시키거나 삶아서 농약처럼 사용한다. 이런 독성식물을 사용하면 벌레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유기농과 기존 농작법을 절충하는 농가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는 유기 농산물이 건강에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양분이 일반 농산물보다 풍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유기농 농산물에 비타민C나 항암물질 등 특정 성분이 더 많다는 주장이 있지만, 영양학적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뛰어난 영양 성분의 농산물을 얻으려면, 유기농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이나 육종 등으로 품종을 개량해야 한다. 유기농이라고 해서 영양분이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일반 농산물이든 유기농 농산물이든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영양이나 신선도가 높다. 

 

유기농 작물이라도 수입한 것은 운송 기간, 유통기간 등으로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유기농은 농법의 하나일 뿐이다. 유기 농산물이 마치 건강에 더 좋은 것처럼 과장 광고를 하는 상술을 경계해야 한다"며 "영양분이 많거나 안전한 식품이라는 유기 농산물의 허상 때문에 소비자가 유기 농산물에 너무 과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 

 

 

"일반 농산물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

 

그렇다면 일반 농산물은 안전하지 않은가. 현재 사용하는 화학 비료나 농약은 과거만큼 독하지 않다. 주 박사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과 환경 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유기 농작법은 필요하다. 인건비 등으로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이런 농산물을 사줘야 농가가 계속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허가받지 않은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는 등의 편법은 개선해야 한다"면서 "농약안전사용기준을 지키면, 일반 농산물은 아스피린보다 덜 해롭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농약을 어제 사용하고 오늘 작물을 수확하는 방식이다. 농약 잔류 기간 등을 지키면 일반 농산물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출신, 이완주 박사는 책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에서 화학 비료는 독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는 "작물에 필요한 3요소는 질소·인산·칼리다. 화학 비료의 원료도 퇴비(유기물)처럼 자연에서 얻는다. 질소비료는 공기 중의 질소와 물에서 얻는 수소를 반응시켜 만든 것이다. 인산비료는 인광석과 사문암(蛇紋岩)이 원료다. 칼리비료는 암염(岩鹽)처럼 암석을 가루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화학 비료만으로 재배한 농산물은 질과 수량, 맛이 떨어진다. 반대로 화학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일손이 많이 가는 만큼 인건비가 오른다. 이 박사는 "화학 비료처럼 유기농 자재도 만능은 아니다. 화학 비료와 유기농 자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