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참패’ 《인랑》 발목 잡은 건 그 누구도 아닌 《인랑》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4 09:52
  • 호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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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폴 영화(가장 흥행 가능성 높은 작품)가 흥행에 참패한 이유

 

7월 한국영화 점유율이 크게 꺾였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27.3%다. 관람객 수도 대폭 줄었다. 539만 명으로, 2008년 이후 7월 한국영화 관객 수 최저치 기록이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건 명확하다. ‘7월 한국영화 농사, 흉작’. 이에 대한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많이 호출되는 건 텐트폴(투자배급사의 한 해 개봉 라인업 중 가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 영화 《인랑》의 흥행 참패다. 《인랑》이 제 역할을 못 하면서 한국영화 시장 침체를 가져왔다는 의견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홀로 ‘화살받이’가 되는 건 《인랑》으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이건 ‘기형적인 구조’가 낳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라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여름 극장가는 이제 대작 영화들만의 리그다. ‘대작 강박증’의 결과다. 몇 해 전까지는 그래도 대작 영화 틈새를 노리고 출격하는 중간급 영화들이 몇 편씩 있었다. 그러나 대작 영화 제작비가 점점 거대해지고, 이에 따라 스크린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간급 영화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스크린 배정에 막강한 파워를 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흥행이 유리해 보이는 대작 영화에 관(館)을 몰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름 시장은 100억원짜리 영화가 아니면 발을 들여놓기 힘들거나, 큰 용기가 필요한 구조로 굳어져 버렸다. 영화를 만들고도 보여줄 수 있는 창구를 잡기 힘들어진 중간급 영화들은 알아서 여름 시장을 피하기 시작했다. 

 

7월20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인랑》 언론시사회에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정우성, 한예리, 김무열, 김지운, 한효주, 최민호, 강동원 ⓒ연합뉴스

 

100만 관객도 동원 못 하고 퇴장한 《인랑》

 

올해는 이러한 성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인랑》뿐 아니라 마블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도 있고, 톰 크루즈가 맨몸으로 헬기에서 뛰어내린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도 있다 보니 중간급 영화들이 더 몸을 사렸다. 결국 대작 영화 중심으로 판이 짜이면서 《인랑》 성적이 한국영화 점유율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었는데, 《인랑》의 부진을 대체할 중간급 영화들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뼈아프다.  

 

너무나 당연해서 말하기 민망하지만, 건강한 시장 구조란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 사이의 규모 작품들이 많이 나와 장르와 소재의 다변화를 이루며 상생하는 형태다. 대작 영화 몇 편이 시장을 독식하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분명 비이상적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인랑》이 비뚤어진 시장 구조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지 않을까란 강한 의구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일단 《인랑》의 흥행 참패 요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스타 감독, 스타 배우, 인기 원작, 거대 제작비 등 뭐 하나 크게 빠질 게 없는 영화는 왜 100만 관객도 동원하지 못하고 퇴장했을까. 

 

《인랑》의 실패를 두고 많은 말들이 있다. 출연 배우들에 대한 거부감과 이로 인한 평점 테러를 실패 요인으로 꼽는 분위기도 있고, 개봉 초반 한 매체가 《인랑》을 ‘《리얼》급’이라 비하한 것이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심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랑》에 출연한 한 배우는 영화의 평가절하를 ‘정치색을 띤 작전세력’의 음모에서 찾기도 했다. 

 

그렇다면 살펴보자. 일단 첫 번째는 이병헌 주연의 《내부자들》이라는 작품을 호출할 필요가 있겠다. 주연 배우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과 그로 인한 평점 테러를 작품으로 뚫어 흥행한 대표적 작품이니 말이다. 심지어 영화를 향한 호평이 주연 배우의 이미지 개선으로 이어진 비상한 사례다. 

 

두 번째의 경우 속내가 다소 복잡한데, 이는 《인랑》 흥행 실패의 결정적 요소라기보다는 《인랑》이 남긴 커다란 숙제라는 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리얼》급’이란 조롱 섞인 현상을 미디어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안타깝고 심각한 일이다. 《인랑》이 김지운이라는 명성을 떠올렸을 때 아쉬운 결과물이란 점에는 동의하나, ‘《리얼》급’으로 몰아간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영화 내적인 담론을 여러 부분 제거했다는 점에서도 두고두고 돌아볼 일이다. 

 

세 번째 주장은, 정치 프레임으로 평점 테러를 당하고도 관객들의 많은 선택을 받은 사례가 많기에 힘을 잃는다. 《국제시장》과 《변호인》은 각각 다른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지만, 둘 다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결국 《인랑》 흥행 실패의 가장 큰 변수는 《인랑》 그 자체다. 여러 논란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작품 자체의 힘인데, 만듦새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논란을 오히려 생산한 면이 있다. 관객이 원했던 것과 영화가 보여주는 것 사이에 괴리가 큰 것 역시 흥행 변수로 작용했다. 논란이 많았던 멜로 요소는, 멜로를 다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극에 녹이지 못했기에 아쉬웠다. 강동원과 한효주 사이의 멜로라인이 충분히 무르익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보는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은 연이어 터지지만, 그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탓에 서스펜스가 잘 살지 않은 것도 패착이었다. 

 

© 워너브러더스 제공


 


무리한 여름 시장의 진입…스스로 덫에 뛰어들어 

 

앞서 《인랑》을 기형적인 영화 산업 구조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한 건, 바로 만듦새 때문이다. 이에 대한 힌트를 김지운 감독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게 흥미로운데, 그는 《인랑》으로 만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명일 수 있지만, 여름 시장에 내놔야 하는 영화여서 후반 작업이 너무 짧았다. 3월에 촬영이 끝났는데 6월까지 완성해야 해서 충분히 영화를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감독의 말에 기대면, 여름 시장에 무리해서라도 들어오려고 했던 스튜디오의 과욕과 감독의 선택이 작업 완성도를 떨어뜨린 게 아닐까. 거대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니만큼,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시장이 가장 크게 형성되는 여름 시즌을 선택하려 했던 것은 ‘산업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런 점까지 감안해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결국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놓은 덫에 《인랑》이 자진해서 뛰어든 것인데, 이는 비단 《인랑》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후반 작업 시간을 충분히 확보 받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다가 시장에 꾸역꾸역 작품을 내놓는 창작자들이 많다. 그것이 창작자 개인의 선택이든 스튜디오의 압박이든, 확실한 건 위험을 담보한 결정이라는 점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성공하면 크게 성공하지만, 망하면 정말 크게 망한다.  

 

조만간 영진위는 8월 한국영화 산업 결산을 발표할 것이다. 8월에는 《신과함께: 인과 연》 《공작》 등이 두루 흥행에 성공했으니 한국영화 점유율과 관객 수는 치솟을 것이고 여기저기에서 축배가 쏟아질 것이다. 그와 함께 《인랑》이 남긴 교훈도 빨리 잊힐 것이란 슬픈 예감이 드는 건, 그것이 많이 되풀이돼 온 그림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빨리 잊고 싶어 한다는 것. ‘기형적 구조’가 지속돼 온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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