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의 몰이해로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 유경민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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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 47명 치료 전후 진단한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환자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고통 받는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건 의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는 답답하기만 하다.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를 위한 방사선 미사일 치료(Lu-177 Dotato PRRT)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서다.

 

신경내분비 종양은 신경계와 내분비계 조직이 뭉쳐 발병하는 종양이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앓았던 병이기도 하다. 국내 중증 환자는 약 1000명 정도로, 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 대상 약 70%의 치료 효과가 있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는 해외에서 검증됐지만,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시사저널 8월28일자 보도 ☞‘치료법 있는데도 죽어가는 환자들, “국가의 직무유기”’ 기사 참조)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고 싶은 환자들은 강 교수가 있는 서울대병원을 찾는다. 서울대병원은 말레이시아 핵의학과 의료진과 협동 진료를 하고 있는 국내 3개 병원 중 하나다. 

 

강 교수는 “외국에서 수년간 검증된 치료인데 동물 실험부터 다시 하고 있다”며 “환자들은 우리나라보다 의료 수준이 낮은 말레이시아나 중국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시사저널은 8월17일 강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김의신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가 도움말을 줬다.

 

8월17일 서울대병원 핵의학과장실에서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 시사저널 우태윤

 

방사선 미사일 치료의 원리가 무엇인가.

 

김의신 교수(이하 김) “암은 수용체를 만든다. 기존 항암 치료제에 방사선 물질을 붙인 치료제를 환자 몸에 주입하면, 치료제가 암을 찾아 공격한다. 하나의 치료제가 모든 암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료제가 찾을 수 있는 수용체를 만드는 암만 치료할 수 있다. 방사선을 이용하면 사전 검사도 가능하다. 치료 전 사진을 찍고 치료제가 암에 도달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강건욱 교수(이하 강) “이를 맞춤·표적치료라고 한다. 의약품 효과가 나타날 환자를 미리 고르는 것이 맞춤치료다. 사진(아래 참조)에서 까맣게 보이는 부분은 치료제가 도달한 곳이다. 암이 어떻게 퍼져있는지 나오는 CT 영상과 비교해보면 어떤 암이 치료가 될지 미리 알 수 있다. 표적치료는 치료제가 암만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 항암 치료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신경내분비 종양은 온몸에 퍼져있어 전신치료가 필요하다. 외과수술이나 바깥에서 쬐이는 방사선 치료는 국소치료다. 그래서 효과가 없다. 그런데 기존 항암제는 DNA까지 손상시켜 부작용이 너무 크다. 3개월만 써도 환자가 죽어간다.”

 

“반면 방사선 미사일 치료제는 암을 겨냥하기 때문에, 치료제의 영향이 골수나 머리에 미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존에 쓰이는 약들은 맞춤·표적치료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손발이 까지는 등 부작용이 크다. 그래서 환자들이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치료 효과도 몇 개월 뒤에나 알 수 있다. 약이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복용할 필요 없는 약을 먹는 거다.”

 

국내 환자 대상으로 치료 효과가 입증됐나.

 

“물론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온 환자는 최근 1년여 동안 93명이다. 이 중 절반인 47명이 방사선 미사일 치료 가능 대상자다. 지금은 대부분 치료를 받았다. 이후 상태가 좋아진 환자들이 많다. 사진을 찍으면 검은색으로 보이는 치료제가 점점 옅어지는 게 보인다. 암이 그만큼 줄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4기 암 환자들에게는 암이 더 이상 퍼지지만 않아도 성공이다.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4번 받으면 평균 40개월 동안 암이 안 자란다. 부작용이 거의 없어 일상생활도 가능해진다. 물론 평균값이어서 치료가 잘 듣지 않는 환자도 있을 수 있고, 드물지만 완치되는 환자도 있다.”

 

신경내분비 종양에만 적합한 치료법인가.

 

“전립선 암환자도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나가고 있다. 그 치료 원리는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방사선 미사일 치료와 같다. 이 역시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참여를 못하고 있다.”

강건욱 교수(왼쪽)와 김의신 교수가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은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의 치료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우리나라엔 치료법이 도입되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가까스로 치료를 마친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설사가 심했다. 몇 년째 입원하며 하루 5리터의 수액을 맞았다. 치료를 받으러 말레이시아에 가려면 비행시간만 5시간이다. 대한항공에 양해를 구하고 비즈니스석에서 수액을 맞으며 이동했는데, 도중에 탈진이 왔다. 다행히 두 달 간격으로 세 번 치료를 마치고 지금은 퇴원했다.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하지 않았을 고생을 한 게 사실이다. 비행기를 못 탈 정도로 컨디션이 나쁜 환자는 아예 치료를 못 받기도 한다. 

 

비용 부담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치료하려면 항공료와 숙박비를 포함해서 한 번에 1000만 원 정도가 든다. 4회가 한 사이클이니 기본 4000만원이다. 국내에서 치료를 받으면 의료보험 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국내에서 약을 직접 만들 경우 값이 훨씬 싸진다.” 

 

국내에서도 검사는 가능하다고 들었다.

 

“미국과 유럽 약전(의약품 성능·품질 등에 대한 기준서)에 올라가 있어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 약전을 인정한다. 국내 약전에 없어도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고 핵의학 검사가 가능한 이유다. 서울대병원과 분당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아산병원, 우리병원에서 치료 가능 여부를 검사할 수 있다. 또 서울대병원과 분당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세 곳에서 말레이시아 의료진과 협동 진료해 환자를 보내고 있다.”

 

방사선 미사일 치료 국내 도입이 지연되는 이유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이해가 부족하다. 배울 의지도 없다. 핵의학 자체가 새로운 학문이다. 식약처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안전성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국내 핵의학과 병원에서 검증됐다. 소량의 방사성 물질은 몇 시간이면 몸 안에서 사라진다. 방사선이 정상조직에 손상을 입힌다고 하지만, 독약이나 마찬가지인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이 식약처에 없다.”

 

“일단 식약처에 방사성 의약품과가 없다.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

 

다른 이유는 없나.

 

“의사들 문제도 있다.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치료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은 의사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치료에 집착한다. 흔한 임파선 암을 예로 들어보자. 종양내과 의사들은 임파선 암 치료를 위해 네 가지 약을 쓴다. 독성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그 중 한 가지 약에 방사선 물질을 붙인 약을 쓰면, 네 가지 약을 쓰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게 20년 전 입증됐다. 그런데 여전히 종양내과 의사들은 네 가지 약을 모두 쓰길 원한다. 밥줄과 관련 있다. 병원에서 자꾸 돈을 벌어오라고 하니 약을 잔뜩 쓰는 것이다.”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나.

 

“유럽공동체(EC)처럼 임상시험이 시작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치료할 기회를 줘야한다. 이를 동정적 치료라고 한다. 식약처는 ‘미국에서 허가난 약과 국내 의사가 사용하는 약이 똑같은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는 생각에서다. 의사 개인을 믿지 못하겠다면 외국 환자 데이터를 근거로 전문가들이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 치료를 시도해볼 만하다고 판단되면 동정적 치료를 승인해주면 된다.

 

유럽에선 2013년에 이미 방사선 미사일 치료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10~20년이 뒤처졌다. 한국도 ‘임상시험을 하기 전엔 못 쓴다’며 동물실험부터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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