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로 느끼는 동아시아의 격랑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1 11:00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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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역사 격변기 다룬 홍남권 역사소설 3부작 《평강》 《안시성》 《계백》


일반적인 역사를 익혀온 이들에게 바보 온달에 대한 헌신적 사랑으로 알려진 평강공주와 안시성의 양만춘, 황산벌 전투의 용장 계백이 한 인연에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온 시기는 역사적으로 그다지 멀지 않다. 


평강공주의 아버지 평원왕이 590년까지 재위했고, 황산벌에서 계백이 전사한 것이 660년이니 그들은 역사에서 한 시기를 살아갔다. 그리고 금융맨 출신의 홍남권 작가는 이런 역사 인물들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평강》 《안시성》 《계백》이라는 연작소설을 내놓았다. 

 

© 온하루출판사 제공



역사 속 인물들 씨줄과 날줄 엮어 연작 출판


소설 속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탄생한 지 700년 정도 되던 때였다. 중국은 ‘전쟁의 신’ 당태종 이세민이 권력을 잡았다. 무리한 전쟁으로 37년 만에 멸망한 수나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했지만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떠났다. 당태종은 안시성에서 양만춘과 마주쳤다. 여기에서 당태종은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물러난다. 이 소설에서는 흥미롭게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평강이 길러낸 여성 지도자였고, 이 전투의 후면에는 훗날 황산벌 전투에 참여한 계백이 돕는다는 설정이 있다. 이 연작 소설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까. 


“평강과 온달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는 주무제 우문옹의 사망연도인 578년이다. 그 시기를 정리하면서 온달의 사망 시기를 다르게 봤다. 학자들이 추정하는 590년이 아닌 진평왕이 명활성(明活城)을 다시 쌓고, 서형산성(西兄山城)을 쌓은 593년으로 추정했다. 다들 주지하듯 안시성 전투는 645년, 황산벌 전투는 660년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형제의 나라이고, 백제와 신라도 통혼했다. 그런 역사적 개연성을 소설에 녹였다.”


역사적 사실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양만춘’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다. 당태종이 안시성을 공격한 것은 645년이다. 중국 기록에는 마치 당군이 승리한 것처럼 적고, 양만춘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다. 작가는 이 점들을 소설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평강》 《안시성》 《계백》│홍남권 지음│온하루 펴냄│248, 244, 244쪽│각권 1만4500원



“안시성 성주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까닭을 찾았다. 당태종과 연개소문, 당대의 이 두 영웅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것은 그가 여자였다는 이유 말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인 물증은 없다. 하지만 남자라는 기록 또한 없다. 성주는 관리이지 장군이 아니다. 충분히 여성일 수 있다. 고구려 사회가 가진 여성들의 힘에도 주목했다.”


이 소설에는 첫 번째 주인공 평강공주나 여성으로 설정된 양만춘 이외에도 백제 부흥을 이끈 ‘고이’ 등 여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부각된다. 소설 전반에서 남성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여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백제가 멸망한 배경에는 탐욕에 빠진 의자왕의 왕비 은고의 패악이 크게 작용했다고 봤다. 삼국시대 후반에 여성들을 부각시킨 이유는 뭘까.


“여성을 의식하고 쓴 소설은 아니다. 온달이 죽은 뒤 평강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평강은 아버지, 오라버니, 이복동생, 심지어 조카까지 모두 고구려의 왕이었다. 그녀는 고구려의 권력 한복판에 있었다. 유교적 관점에서 역사를 쓴 김부식 등에 의해 여성들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고려시대까지도 정치에서 여성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이 소설의 여성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이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당대 역사와 접합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 속에 추진되는 남북대화는 이 소설 속 배경과도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간과할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분열이다. 남북이 하나가 된다면, 한반도가 안정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국제평화에 이바지하고도 남는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이웃, 동맹국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삼국 통일로 갔지만 신라의 무리한 통일은 한민족의 정치적 영토를 축소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백제 패망 후 현지 통치에 한계를 갖고, 결국은 통일신라마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주는 정치적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통일은 제로섬게임이 아닌 윈윈게임이 돼야 하는데, 이때를 살필 필요가 있다.”


연작소설이 출간된 것을 기다린 듯 9월19일에는 조인성, 남주혁 주연의 영화 《안시성》(김광식 감독)이 개봉한다. 물론 원작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알아두면 영화를 감상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작가는 특히 당태종이 두 달 동안 토산을 쌓아가면서까지 안시성을 차지하려 한 이유를 영화에서는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해했다. 그의 이력도 궁금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금융맨에서 작가이자 출판인으로 전향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역사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 전하려 집필”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전하려고 했다. 당태종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망했다고 고백한 시 ‘상요동전망’(傷遼東戰亡)을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왜 가르치지 않는가? 왜 배우지 못했는가? 우리 스스로가 지난 삼백 년간의 고정관념, 남존여비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국력은 여성의 권리와 비례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하는 작업으로 역사소설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설 쓰기를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계백》 다음은 다시 안시성의 최후를 쓸 계획이다. 이후에는 일본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고구려에 왔던 로마인 이야기인 《고구려인 가이우스》도 계획한다. 이번 연작소설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것은 《계백》이다. 특히 황산벌 전투로 가는 과정은 다양한 묘사와 인상적인 단어들이 눈에 띈다. 이제 지천명이 된 작가의 계획을 보면, 이 시대 이병주를 기대해도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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