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너마저…” 일자리, ‘브렉시트 영국’ 버리다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 11:50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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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까지 50만 개 일자리 사라질 것

 

2016년 6월23일, 영국은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52.5%가 유럽연합(EU) 탈퇴에 동의하며 2019년 3월29일 발효될 브렉시트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주된 이유는 영국이 EU에 연간 지불하는 22조원에 달하는 높은 분담금에 비해 이득이 미미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EU의 각종 규제로 인한 경제활동 제약, 강제적 난민 수용, 그리고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자국민 취업난도 한몫했다.

 

2018년 기준 영국 내 노동자 수는 총 3231만 명이며, 그 가운데 355만 명가량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 중 EU 국가 출신은 228만여 명, 비(非)유럽연합(Non-EU) 국가 출신이 127만여 명에 달한다. 영국 내 노동자 중 10%가 외국인이니만큼, 주요 일간지들은 앞다퉈 영국 내 EU 국가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실상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영국 정부의 구체적인 공식 발표는 아직까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Non-EU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논의는 더욱 미미한 상태다.

 

6월23일(현지 시각)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결정한지 2년을 맞아 영국 런던 곳곳에선 시위가 벌어졌다. 2019년 3월29일 정식 발효를 앞두고 영국에선 여전히 뜨거운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PEP 연합·pixabay

 

영국인보다 뛰어나지 않다면 일자리 못 얻어

 

현 정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EU 국가 출신 외국인들은 취업 비자나 취업 허가증(Work Permit) 없이 자유롭게 영국 내 취업 및 거주가 가능하다. 반면 Non-EU 또는 비유럽경제지역(Non-EEA·Non-European Economic Area) 국가 출신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Tier 2’ 비자라 불리는 취업 비자를 취득해야 합법적으로 영국 내에서 일할 수 있다. Tier 2 비자의 유효기간은 최대 5년이며 영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회사에 한해서만 외국인 노동자에게 후원이 가능하다. 

 

비자를 신청하는 노동자의 연봉은 3만 파운드(약 4500만원) 이상 돼야 하는데, 영국인의 평균 연봉이 2만7000파운드(약 39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비자 획득에 있어 진입 장벽은 다소 높은 셈이다. 직종 또한 영국 정부가 지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고숙련(High-skilled) 직업군에 속하거나 또는 특정 직무일 경우에 한해서만 Tier 2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브렉시트 이전부터 영국은 Non-EU, Non-EEA 국가 출신 이민자 및 노동자에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영국 내 취업을 허용했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취업 제한은 영국 국민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영국의 이주자문위원회(MAC· Migration Advisory Committee)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영국 고용주들이 외국인을 고용하는 주된 이유는 영국인 노동자 중 해당 직업 또는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고용주들은 브렉시트 이후 EU 국가 출신 노동자들의 거취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 의하면, 취업 비자 발급이 가능한 고숙련 직업군 노동자들의 경우 출신 국적에 관계없이 현재의 Non-EEA 국가 출신 노동자 채용 조건으로도 고용이 가능하다. 때문에 비자 문제로 인한 타격이 기타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저숙련(Low-skilled) 직종은 브렉시트 이후 타격이 가장 심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영국의 화물차 운전기사 7명 중 1명, 식품 제조업계 종사자 10명 중 3명 이상이 EU 국가 출신 노동자다. 그 외에도 50만 명가량의 EU 국적 노동자들이 영국 내 호텔·레스토랑·상점 등 다양한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 투표 이후 고용 불안정과 영국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의 이유로 많은 EU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고 있다. 

 

영국 화물운송협회 회장 리 폼릿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내에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돼 이미 많은 EU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고 있다”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표했다. 하지만 영국의 현 이민 규정에 따르면, 위와 같이 영국 정부에 의해 저숙련 직종으로 분류된 직업들의 경우 취업 비자 발급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관련 업체들은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2017년 유출된 이민국 문서에 의하면, 저숙련 직업군에 종사 중인 EU 이민자들은 브렉시트 이후 주요 규제 대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은 고숙련 직종의 EU 노동자에게만 3년 또는 5년 유효한 취업 비자를 발급하며, 이외 직종은 최대 2년까지 유효한 비자를 발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실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시 장년층 및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당시 EU 탈퇴 찬성 측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영국 떠나는 다국적 기업, 예견된 일자리 감소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되면 영국을 기반으로 유럽 내 사업을 펼치던 다국적 기업들의 유럽 시장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성이 줄어든다. 실제로 이를 우려해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 내 다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영국을 떠나 다른 유럽 국가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JP모건, HSBC, 골드만삭스 등 20여 은행 및 금융회사들이 런던을 떠나 프랑스 파리 및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이전을 확정했거나 준비 중이다. 또한 파이낸셜타임스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 내 공급망을 가지고 있는 유럽 사업체 7곳 중 1곳이 영국 사업을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철수했다고 전했다.

 

2016년 과반을 넘는 영국 국민들은 자국민 보호와 경제 부흥을 그리며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국민투표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영국 경제에 기여했던 다수의 다국적 기업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고 있다. 또한 케임브리지 이코노매트릭스의 발표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2030년까지 약 5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애국심과 국가 이기주의의 애매한 경계를 보여준 브렉시트. 과연 영국 국민들의 선택이 어떤 나비효과를 초래할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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