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 “재벌이 萬惡이라는 경제민주화, 잘못됐다”
  • 김종일 기자·김윤주 객원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4 14:14
  • 호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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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文정부 경제정책 F학점 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경제가 어렵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고용·소비·투자의 충격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단호하게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학점은 F”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다. 그는 최근 전경련 주최로 열린 대담에서 “생산 활동을 어렵게 하는 대신, 분배 쪽으로 많은 돈을 쏟아 부었는데 분배마저 악화됐으니 F학점”이라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혹평했다. 

 

신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F학점 준 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사람들이 지금은 나를 우파라고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프로그램을 반대했을 때는 좌파로 분류했다”면서 “좌우 구분하지 말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지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얘기하자”고 말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경제지표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도 세금에서 나오니까 기업 덕분에 생기는 면이 크다. 기업이 투자하고 고용을 하고, 또 고용된 사람들의 임금이 지속적으로 올라야 다 같이 사는 ‘좋은 세상’이 된다. 기업들은 국내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고용하기 어려운 여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여건이 계속 생기고 있다. 

 

미국은 4%대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유럽과 일본도 좋아지고 있다. 한국만 빌빌거린다. 그러면 한국에만 독특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기업을 옥죄는 거다. 기업은 위험 부담을 안는다. 기업이 자칫 패가망신할 수 있는데도 위험 부담을 안는 이유는 많은 돈을 벌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 부담을 격려하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여야 ‘기업가 정신’이 생기고 투자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근 기업인들의 상황을 직접 느낀 계기가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다. 순방에 따라온 중소기업인들을 싱가포르 기업인들이 초청한 오찬에 간 적이 있다. 정상적인 모임이라면 한국에서 온 분들이 ‘싱가포르에 어떤 아이템이 있냐. 우리 같이 해 보자’와 같은 이야기를 주로 하거나, 싱가포르에 있는 분들이 반대로 물어보고 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한국 중소기업인들이 ‘도저히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니 싱가포르 기업인들이 ‘기업을 해외로 옮기라’고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점은 뭔가. 

 

“전체적으로 생산과 분배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데 생산 쪽에서는 한 것이 없다. 분배 쪽에 돈을 많이 부었는데 결과적으로 분배가 악화됐다. 분배에 아무리 돈을 써도 생산 쪽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을 늘리고 고용을 하도록 기업인들의 의욕을 북돋워야 한다. 기업인들이 성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지금은 기업이 정경유착, 중소기업 착취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다는 인식이 커 ‘너희들이 번 거 내놔’라는 식이다. 물론 기업이 실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지만 경제 성장엔 기업이 기여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잘살게 된 것도 기본적으로 기업이 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기여는 무시하고 기업의 여건을 어렵게만 하니까 기업이 계속 ‘어렵다’ ‘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과거 ‘경제민주화가 규제로 점철돼 기업을 옥죄고 경제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에 대한 평가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재벌이 한국 경제 만악(萬惡)의 근원이라고 한다. 재벌 문제가 해결되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재벌이 분배를 악화시킨 주범이란 건데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전까지는 재벌이 융성하면서 임금도 올라갔다. 기업이 투자를 계속하니 분배도 좋아졌다. 분배 구조는 IMF 체제에서 나빠졌다. 영미(英美)식 구조조정이나 IMF 프로그램 탓이 크다. 원인 분석을 잘해야 실질적인 대책이 나온다. 경제개발 시대부터 지금까지 재벌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하니 문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7월10일 서울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업과 혁신 생태계 특별대담에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현 정부도 혁신성장을 강조한다. 

 

“경제민주화와 혁신 사이에는 부정합(不整合)이 있다. 경영을 민주화하면 위험을 부담하는 적극적인 투자가 잘 되지 않는다. 혁신은 불확실성에 투자하는 것, 즉 확률이 낮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다. 성공 확률이 낮은 일의 투자 결정을 민주적으로, 즉 다수결에 부치면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도력이 필요하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떼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기업 결정 구조에 개입하려 하고, ‘너희 떼돈 벌면 나쁜 거야’ 하면서 뺏어가면 누가 나서겠나. 

 

정부가 기업이 잘되도록 하는 방법은 몇 가지 없지만 기업이 안되게 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다.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가 ‘당신들 애로사항이 뭐냐. 일자리가 필요한데 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못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뭐냐.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 기업인들이 한국에서 다시 힘껏 뛰어보겠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 기간 전망이 없다. 기업 활동도 정치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최근 여권(與圈)에서 ‘사내유보금은 현금’이라는 식으로 사내유보금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나.

 

“실상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현찰과 사내유보금은 완전히 다르다. 사내유보금은 돈의 출처에 관한 것이다. 돈 쓰는 출처가 이익을 남긴 것일 수 있고, 돈을 빌린 것일 수도 있다. 현찰은 이렇게 지출을 다 하고 남은 것이다. 사내유보금을 두고 현찰과 똑같다고 하는 건 기본적인 회계를 무시하는 발상과 같다. 국내 기업의 현찰 보유 비율은 국제적으로 봤을 때 중국 기업보다도 낮다. 

 

또 현찰 보유가 굉장히 불균형하다. 삼성전자가 절반 이상 갖고 있을 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빼면 다른 기업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투자에 리스크가 있으니까 기업이 투자를 할 수 있게끔, 정부가 빚이라도 동원해서 밀어주겠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 말도 안 되는 수치 들이대면서 ‘돈을 이만큼이나 갖고 있는데 투자를 안 한다’ 식이다.” 

 

‘성장의 과실이 기업에 집중돼 왔기 때문에 후진적인 분배 체계 개선이 먼저’라는 반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분배 체계는 후진적이지 않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현실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담론이다. 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분배가 괜찮았던 나라가 한국과 대만 두 나라밖에 없다. 싱가포르나 중국도 분배 면에서 매우 좋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불평등이 있는 사회다. 완전히 평등할 수 없다.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 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동력이 된다. 다만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재도전 기회를 주거나 기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해 주면 된다.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 때문에 분배가 나빠졌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1997년 이후 임금 격차가 커졌다. 누구 잘못일까.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많은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이다. 그렇다면 왜 해외로 나갔냐. 국내에 투자해 봤자 별 이득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실사구시’다. 지금은 대기업이 착취한다는 얘기만 한다. 

 

사실 중소기업 대부분이 하청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생 관계다. 대기업이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 중소기업도 먹을 게 생긴다. 그런데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면서 중소기업의 일감은 줄고 이득도 줄어든다. 대기업은 노조가 세니까 주요 생산시설이 해외에 나가도 임금이 많이 줄지 않았다. 반면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니까 계속 격차가 벌어졌다. 2차, 3차 하청으로 가면서 이런 추세가 점점 강해졌다.”

 

다른 얘기도 해 보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 국민연금은 독특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연금 기금의 국내 주식시장 보유비율이 5%보다 낮다. 한국은 7%대, 대기업으로만 좁히면 지분율이 10%에 달한다. 그 원인은 한국이 기관투자가에 대한 규제를 제대로 안 해서다. 기관투자가가 개인투자자에 비해 좋은 점은 많은 돈을 다루기 때문에 투자 다변화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변화를 위해 한 곳에 5% 이상 지분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지분이 5% 이상이면 일반투자자 이상으로 기업에 영향력이 있다. 그래서 기관투자가는 일반투자자와 달리 강한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연금은 그 정신을 지키고자 지분율을 1%대로 유지한다. 일본이 유일하게 5%인데, 그 이유가 투표권까지 전부 민간에 위탁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연금이 기업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제로(0)다. 한국은 의결권 위탁을 못 하게 돼 있고, 그래서 국민연금이 엄청난 권력이 돼 있다. 이는 기관투자가로서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기 때문에 지분율을 5% 밑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그런데 5%만 남기고 지분을 팔면 주식시장이 무너지니까 민간 위탁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말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 말도 안 되는 개입을 하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당시 국민연금이 찬성 편에 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후 이 사건이 국정농단의 일부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국민연금의 결정은 수익률을 기준으로 한다. 제일모직 합병은 수익이 나는 일이었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주가가 15% 뛰었다. 엘리엇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15% 이상 벌 사람은 나를 따르라’는 식이었다. 국민연금은 사회적 기금이니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곳은 아니다. 15% 수익이 나는 일이면 합병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로비를 받아 찬성했고 손해를 봤다고 하는데 만약 리스크가 있었다면 다른 투자자도 그때 손을 뗐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로비 받지 않은 외국인 투자자도 대부분이 주식을 팔지 않았다. 삼성물산 주가가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비슷하게 예측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 후 삼성물산의 주가가 떨어진 것은 호주에서의 부실시공 등 다른 이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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