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진화, 건강보험 좀먹는 ‘사무장 병원’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1 11:01
  • 호수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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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면허 임차해 병원 사익화…온갖 불법·탈법 난무

지난 1월 경남 밀양에 있는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환자 등 46명이 사망하고, 109명이 부상당했다. 화재가 참사로 이어진 것은 ‘불법 증·개축’ 등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특히 병원 측이 불법 설치한 비가림막 시설이 문제였다. 이것이 밖으로 연기가 배출되는 것을 막은 데다 불법 증축한 병원과 요양병원 간 연결통로 등을 통해 유독가스가 건물 상부로 이동하면서 피해를 더 키웠던 것이다. 


밀양시청은 병원 건물에서 12건의 불법 증축을 적발해 2011년부터 23차례 원상복구 명령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행강제금만 내고는 배짱 영업을 계속해 왔다. 원상복구만 했더라도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병원 측은 오로지 돈 버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환자의 안전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경찰수사 결과, 이 병원이 ‘사무장 병원’으로 운영된 것이 드러났다. 의료인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운영하는 형태다. 


이사장 손아무개씨(56)가 2008년 영리 목적으로 의료법인을 불법 인수했다. 손씨는 식자재 납품단가 부풀리기, 허위 직원 등재를 통한 급여 빼돌리기 등의 수법으로 총 11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과밀병상 등 수익창출에 골몰한 반면 건축·소방과 의료 등 환자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부실하게 관리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것이다. 


밀양 화재 참사가 발생한 후 ‘사무장 병원’ 문제가 이슈가 됐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사무장 병원은 계속 진화하면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최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10여 년간 사무장 요양병원 6곳을 운영하며 총 430억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타낸 일당을 검거했다. 이들의 사기 행각에는 가족이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병원 운영자 A씨(60)와 그의 부인(57), 남동생(50), 여기에 아들(29)까지 한통속이 됐다. 


A씨는 2008년 1월부터 수도권에서 불법 사무장 요양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서울 강북권에 노인전문병원 2곳을 차렸는데, 이를 위해 B씨(79) 등 의사 3명의 명의를 빌렸다. A씨는 자신이 건물주이면서 B씨 등과 허위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 병원 수익금을 임대료 명목으로 빼돌렸다. 명의 대여자인 의사들은 대여료를 포함해 월급 명목으로 월 700만원 이상을 받아 챙겼다. 

 

A씨는 사업을 확장해 2009년 11월에는 경기 용인에, 2011년 11월에는 인천에 의료재단(법인)을 각각 설립했다. 재단 이사장에는 자신의 부인과 남동생을 앉혔다. 병원 행정 등을 총괄하는 경영지원과장은 20대 아들에게 맡겼다. 또 의료재단 명의로 4곳의 요양병원을 추가로 개설해 가족끼리 운영했다. 


A씨는 2009년 1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환자들에게 상급병실 요금을 2배로 부풀리거나 통증 치료를 받은 것처럼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 줬다. 환자 46명은 이런 방식으로 보험회사에서 실손보험금 10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A씨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환자들이 보험금을 더 탈 수 있도록 진료비를 부풀려 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A씨는 요양병원 수익금 수십억원을 개인 생활비나 11억원 상당의 오피스텔과 아파트 매입비용 등으로 사용했다. 


경찰은 B씨 등 70대 의사 3명을 의료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입원환자 C씨(여·52) 등 46명을 허위 진료비영수증으로 보험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불구속 입건했다. 


충북에서도 사무장 병원을 운영해 6억원이 넘는 요양급여를 받아 챙긴 일당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북경찰청은 최근 의료 자격 없이 병원을 운영한 혐의로 D씨(49)를 구속하고, 면허를 빌려준 의사 E씨(88)와 브로커 F씨(61) 등 4명은 불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D씨는 지난해 8월16일쯤 충북 증평에 의사 출신인 E씨 명의로 병원을 개설한 뒤 의사를 고용해 최근까지 진료하게 했다. D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건강보험공단과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6억4000여만원의 요양급여를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장 병원이 활개 치는 이유 중 하나는 제도적인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데 있다. 사무장 병원의 전통적인 수법은 의료면허가 없는 일반인이 의사 면허를 빌려 병원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의를 빌려준 의사를 교체할 때마다 설립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명의를 빌려줄 의사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새로 등장한 수법이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통한 방식이다. 의료생협은 지역주민들의 건강 주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사무장 병원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의료생협을 설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최소 조합원 300명에 출자금 3000만원만 있으면 설립이 가능했고, 여기에다 개인의료기관까지 운영할 수 있다. 사무장 병원 입장에서는 이처럼 좋은 제도가 없었던 것이다.

 

2017년 2월28일 최도자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무장 병원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법률 개정 공청회’를 열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의료생협이 사무장 병원 통로로 악용


조합원 숫자를 채우는 것도 이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무료 식사 제공이나 경품 제공 등을 미끼로 노인들을 꼬드겨 허위로 등록해 머리 숫자를 채운다. 


2015년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생협이 개설한 의료기관 67곳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53곳(79%)이 사무장 병원으로 드러났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의료생협은 단속 대상인 253곳 중 203곳(80%)이 사무장 병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료생협을 합법적인 사무장 병원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경찰에 적발된 사무장 병원 중에는 의사가 교체될 때마다 병원 이름을 6차례 바꿔가며 마치 병원을 새롭게 개설하는 것처럼 꾸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온 곳도 있었다. 


사무장 병원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정부와 환자들이 중요시하는 ‘의료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건강보험료 등을 빼내기 위해 불법·탈법이 난무하다 보니 ‘생활 적폐’로까지 불린다. 병원 자체가 사익을 추구하다 보니 시설 안전 투자에 소홀해 화재 등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환자들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환자를 더 유치하기 위해 병원을 무리하게 증·개축하거나 병실 안 환자 침대를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배치해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정부 발표를 보면 병상 수에 있어 의원이 2.62개인 데 반해, 사무장 병원은 4.57개였다. 직원 대비 의료인 고용비율은 일반 의원이 27.5%인 데 반해, 사무장 병원은 18.2%에 불과했다. 


사무장 병원은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설이나 의료서비스가 현저히 낮다. 소속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과잉진료를 조장하기도 한다. 주사제를 상대적으로 많이 처방하거나 장기입원을 유도하는 것 등이다. 항생제 처방률도 사무장 병원이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환자의 건강보다는 매출을 늘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강보험료를 빼돌리기 위해 가짜로 환자를 만들고, 심지어 멀쩡한 사람을 입원환자로 둔갑시켜 보험금을 청구한다. 의료인이 보험사기 브로커와 공모해 사무장 병원을 개설하고 ‘나이롱’ 환자를 유치하는 것도 여전하다. 


입원이나 치료 횟수를 부풀리고,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시술인데 입원을 권하기도 한다. 입원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입원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진료비와 보험금을 타내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국민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재정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큰 누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사무장 병원의 존재 자체가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는 주범인 것이다. 


지난해 환수 결정된 요양급여금액 중 사무장 병원 등 ‘개설기준 위반’에 따른 금액은 6250억원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운영되는 사무장 병원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무장 병원에 지급한 요양급여 징수율도 현저히 낮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1273개 사무장 병원이 적발됐다. 이곳에서 건보공단에서 받아간 요양급여만 무려 1조8112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실제 징수율은 7%(1320억원)에 불과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행 수사체계다. 사무장 병원에서 요양급여 등을 적발할 경우 건보공단 등은 수사기관에 통보해 수사를 의뢰한다. 이 과정이 평균 3개월 이상 걸리다 보니 그사이 병원을 폐업하거나 매도해 재산을 빼돌리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요양급여 전액을 환수하기란 불가능하게 된다.

 

화재로 인해 190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 ⓒ 연합뉴스


 

복지부 대책안 실효성은 미지수


이에 따라 사무장 병원을 퇴출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복지부는 사무장 병원 개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종합대책안을 마련했다. 


우선 사무장 병원의 온상으로 지적돼 온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의료기관 개설권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생협의 의료기관 개설권을 삭제하고 기존에 운영돼 온 병원의 경우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공정위와 논의할 예정이다.


사무장 병원은 내부 정보 없이는 적발이 어려운 만큼 면허를 대여한 의사가 자진 신고할 경우 면허취소 처분을 면제하고, 부당이득 환수 처분을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외에도 불법 개설자의 부당이득 환수 강화, 형사처벌 규정 신설, 적발된 의료기관 양도 제한, 의료기관 회계 공시 확대 등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도 의료생협이 사무장 병원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천 의원이 발의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기존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의료생협이 더 이상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미 설립된 의료생협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른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천 의원은 “사무장 병원이 생협을 악용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대책들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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