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차(茶)류’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백차(白茶)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1 11:18
  • 호수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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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Tea Road] 변화하는 세상과 입맛 따라 출현하는 새로운 차

 

차(茶)의 이름을 정하는 기본원칙이 있다. 생산지명을 먼저 쓰고 ‘6대차류(六大茶類)’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단해 이어 붙인다. 제조공정의 유사성과 완성된 차 맛의 공통점에 따라 찻잎으로 만든 차는 ‘6대차류(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 중 하나에 대부분 속한다. 보성녹차는 보성에서 나오는 녹차라는 뜻이다. 중국의 차 이름 작명도 대동소이하다. 치먼(祁門) 홍차는 안후이성(安徽省) 남쪽 황산에 속하는 치먼현에서 나오는 홍차를 말한다. 이런 기본 원칙을 벗어나는 차도 있다. 안지(安吉) 백차는 백차가 아닌 녹차인데도 ‘백차’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징구(景谷) 대백차는 백차도 있지만 녹차와 홍차도 있다. 


징구 대백차나무 찻잎은 ‘백차’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제조공법을 달리하면 ‘6대차류’를 모두 만들 수 있다. ‘6대차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징구 대백차를 보이차(普洱茶)로 만들었을 경우에도 징구 대백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완성된 결과물은 보이차지만 차를 만든 원료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 서영수 제공

 

 

차의 이름을 정하는 기본원칙은 무엇?


안지 백차가 백차라는 이름의 녹차인 사연도 유사하다. 녹차 제조공법으로 완성되는 안지 백차는 공법에 따라 차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백엽(白葉) 1호라는 백차나무를 강조하기 위해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른 봄 4주 동안만 백색에 가까운 연녹색을 띠는 백엽 1호의 어린 찻잎만을 원료로 사용하는 안지 백차는 녹차의 일반적인 제조과정에서 하는 유념(찻잎 비벼주기) 과정이 없다. 찻잎에 열을 가하는 살청(殺靑)만 없다면 백차의 제조공정과 일치하는 측면도 있다. 백차로 유명한 푸젠성(福建省)의 푸딩(福鼎)은 젊은 층의 기호에 맞춰 가벼운 살청과 미세한 유념을 가미한 신공법을 개발 적용하며, 정통 백차 제조공법 원칙을 무시한 백차도 생산하고 있다. 


기존 ‘6대차류’가 정의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차들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안지 백차는 1800년 전 한나라 영제(靈帝) 때 ‘편하고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안지(安吉)’라는 지명을 하사받았을 때부터 기록에 나오는 차다. 백차나무는 안지현을 뒤덮은 대나무 숲과 연관이 깊다. 산림 녹화율이 71%가 넘는 안지현은 대나무가 전체 수목의 60%를 차지한다. 안지현 시룽(溪龍)향을 중심으로 재배되는 백엽 1호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3~4월의 안지현은 비가 자주 내려 대나무 성장에 유리하지만 울창한 대나무 숲속에서 어울려 사는 키가 작은 백차나무는 광합성 부족으로 엽록소 함량이 낮아져 백화현상이 발생해 어린 찻잎이 미백색을 띠게 된다. 


안지 백차의 백화현상은 섭씨 10~23도 사이에서만 유지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청명(淸明) 전에 발아한 하얀 어린잎은 곡우가 지나면서 녹색으로 변이를 시작해 입하(立夏)가 지나면 다른 차나무 잎처럼 정상적인 녹색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찻잎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간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4주 미만이다. 짧은 채취기간 동안 아주 어린잎만 선별해 채취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숙련된 사람이 하루에 채취하는 최대량도 2kg을 넘지 못한다. 모자라는 일손을 거들기 위해 도시로 떠났던 고향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귀향한다. 안지 백차를 만드는 봄이 되면 돌아온 농민공(農民工)과 넘치는 돈으로 안지현은 활기가 넘친다. 


“어린 찻잎 하나가 안지현 시룽향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귀한 차”라고 시진핑(習近平)으로부터 예찬을 받은 안지 백차는 시룽향을 중심으로 5개의 핵심지구에서 생산된다. 120㎢에 달하는 차 재배지를 위해 종사하는 가구 수는 1만5000호가 넘는다. 차를 가공하는 회사는 350개 정도다. 인구 50만 명이 채 안 되는 안지현에서 오랜 세월 동안 대표산업이었던 대나무 관련 산업인구가 4만5000명인 반면, 후발주자인 안지 백차 산업에 연계된 인원은 20만 명에 이른다.


안지 백차가 뒤늦게 빛을 발하는 이유는 백차나무가 여러 차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차나무가 사라졌다는 처음 기록은 당나라 시절 육우(陸羽)와 이어진다. 인류 최초의 차 백과사전인 《다경(茶經)》을 편찬한 육우가 안지 백차를 마셔보고 감탄하며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이 차를 만나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크게 외치고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됐다고 한다. 육우가 가져온 차를 마신 옥황상제는 백차나무를 모두 대라천(大羅天)으로 가져오게 했다. 이때 육우는 인간 세상을 위해 백차나무 씨 한 톨을 몰래 산속에 숨겨놓았다는 전설 이후 수백 년 동안 안지 백차는 실제로 사라졌다.


안지 백차는 송나라 인종(仁宗·재위 1022~1063) 때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백색의 어린 잎차가 백성 앞에 나타났다’며 역사에 다시 등장했다. 송나라 휘종(徽宗·재위 1100〜1125)이 직접 저술한 차 전문서적 《대관다론(大觀茶論)》에는 “다른 지방의 백차는 제조과정에서 하얀색을 만들어내지만 안지 백차는 가공하기 전의 어린잎 자체가 백옥처럼 흰색이다. 야생 백차나무는 험준한 계곡 사이에서 겨우 한두 그루만 자생한다”며 안지 백차의 희소성을 적확하게 묘사했다. 안지 백차는 800여 년에 걸친 은둔생활을 마치고 1930년 야생 차나무 수십 그루와 함께 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중국 근대사의 혼란 속에 잊혀졌다.


저장성 당서기 시절 시진핑 ⓒ 서영수 제공

 

역사기록과 설화를 통해 전설로만 여겨졌던 야생 백차나무 한 그루가 1982년 해발 800m 산속에서 발견됐다. 그 당시 수령 100년이 넘은 이 나무가 안지 백차의 어머니가 되는 백차조(白茶祖)다. 안지현 산림원의 기술요원, 리우이민과 청야구가 앞장서서 백차나무 가지를 잘라 삽목을 시작했다. 무성생식에 성공한 백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안지 백차는 1991년 일류명차 상을 획득하며 안지 백차의 명성을 각인시켰다. 중국 차나무 품종 가운데 아미노산 함량이 제일 높은 백엽 1호는 1998년 저장성 우수품종으로 등록됐다. 

 


6대차류로 정의하기 어려운 차들 다수


안지 백차와 징구 대백차처럼 ‘6대차류’로 정의하기 힘든 차들은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이런 차들을 굳이 ‘6대차류’에 소속시키려 하거나 정통공법을 따르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이비 차라고 오인하면 곤란하다. 세상은 변하고 입맛도 변한다. 그런 흐름을 따라 새로운 형태의 차도 출현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답습’이 아닌 ‘새로움’에 방점이 있듯, 신공법 차에 대한 외면보다 수용이 필요하다. 차를 마시면서 ‘6대차류’를 알게 되면 아는 만큼 차 맛의 깊이도 깊어진다. ‘6대차류’를 벗어나는 하이브리드 차를 이해하면 차 세계가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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