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신 워싱턴行 택한 정의선 홀로서기 가능할까
  • 윤시지 시사저널e. 기자 (sjy0724@sisajournal-e.com)
  • 승인 2018.09.21 13:44
  • 호수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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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지배구조 개편·판매부진 등 과제 산적…미국행으로 정 부회장 경영능력 시험대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 총괄을 맡게 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평양 대신 워싱턴행을 택했다. 남북경협보다 미국 정부의 ‘관세폭탄’ 문제 해결을 보다 시급한 선결과제로 판단한 탓이다. 정 부회장은 9월16일 출국해 미국 행정부 및 의회 고위인사들과 회동을 갖고, 18일(현지 시각)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을 단독 면담했다. 이로 인해 삼성·SK·LG 등 3대그룹 총수들이 포함된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김용환 부회장이 정 부회장을 대신해 방북길에 올랐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9월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 부회장이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 등 많은 미팅이 잡힌 것으로 안다”며 “핵심 당사자로서 그 일정이 오래전부터 약속 잡혀 있는 걸로 안다”고 언급했다. 

 

업계에선 정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통해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 부과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인사들을 만나 한국을 관세 예외국으로 지정해 달라고 설득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미국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자국에 수입되는 차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두고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상무부에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상무부 조사 결과에 따라 현행 자동차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정부는 수입차 및 부품에 최대 25%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현대·기아차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미국서 여전히 갈 길 먼 현대·기아차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이 수입차에 25% 관세를 물릴 경우 향후 5년간 대미 수출 순손실액은 약 661억7700만 달러(약 74조원), 취업유발 손실은 3만18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고율 관세가 실현될 경우 국내 자동차업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대외적 통상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정 부회장의 경영 구상에도 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재계에선 이번 미국행이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 시험대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현안의 경우 여전히 정몽구 회장이 결정한다”는 입장이나, 수년간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는 정 회장 대신 정 부회장이 현안 타개에 앞장설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자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이번 미국행을 통해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문제를 두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경우, 그룹 내 입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면서 “그룹 경영 구상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미국 통상문제 해결과 함께, 부진한 해외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장기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래차 사업 역량을 키우는 등 대대적인 체질개선에도 나서야 한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목표 판매량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상반기 현대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이하 현지판매 기준)은 33만5000대로, 지난해보다 3.3% 판매 실적이 줄었다. 기아차 역시 전년 동기 대비 0.7% 줄어든 29만4000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미국 시장의 전체 산업 수요가 전년 대비 1.9%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시장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승용차급 수요 부진이 판매량 급감으로 직결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세계적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렌드에 뒤처져 제품군을 발 빠르게 꾸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시장 악재로 수익성도 악화됐다. 상반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7.1% 감소한 1조6321억원을 기록했다. 기아차도 전년 대비 16.3% 뒷걸음질한 658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미국 행정부가 무역확정법 232조를 근거로 자국에 수입되는 차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두고 연일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 © 연합뉴스

 

현대·기아차는 신흥국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해외 권역본부 설립 역시 이 같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지난 6월 현대차는 북미·유럽·인도에, 기아차는 북미·유럽 지역에 권역본부를 각각 설립했다. 각 권역본부는 해당 지역의 현지 시장전략·생산·판매 등을 통합 운영하고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 부회장은 차량공유,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역량에 집중해 위기를 돌파한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9월7일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정 부회장은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 초부터 자율주행, 친환경차 등 핵심기술을 보유한 국내외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의 기술 역량을 키우며 시장 대응에 나섰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이번 미국행을 통해 구글, 테슬라 등 기업들과 접촉할 것이라는 전망도 유력하게 제기된다. 올 연말 신사업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거나 강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무엇보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정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지만, 엘리엇 등 해외 투자자문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 특별위원회가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그룹이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하는 데 부담을 더했다.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사업 추진력과 지배구조 개편은 별개의 문제”라면서도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정부 규제로 인해 그룹에 전방위로 가해지는 압박은 경영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 부회장의 승진을 놓고 “경영 보폭은 넓혔지만 실질적인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며 “새롭게 내놓을 개편안은 시장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까닭에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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