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북한과 경계, 예술이 허물어야”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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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미술전 기획으로 ‘2018 광주비엔날레’ 성공 이끌고 있는 김선정 대표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 북한이다. 국경을 맞대고는 있지만 경계선은 너무 높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실제 삶은 눈 보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광주에서 북한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열렸다.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로 불리는 광주비엔날레에서다. 지난 9월6일 개막해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2018 광주비엔날레가 항해를 시작한지 절반이 지났다. 북한 예술을 최초로 선보이며 화제를 모은 2018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11월11일 66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이다. 11명의 세계적 큐레이터가 광주에 모여 7개의 주제전을 꾸몄다. 이들은 전쟁과 분단, 냉전 등 근대적 잔상과 더불어 21세기 사회에서의 격차와 소외 등을 성찰했다. 그 결과를 예술로 풀어내는 데 참여한 작가들만 43개국 165명.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개막한지 한 달 만에 관람객 수가 13만여 명을 돌파하는 등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7개 주제전 중 하나인 북한미술전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최초로 북한 집체화(여러 명이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대형 그림) 6점을 포함한 북한 미술 22점이 설치됐다. 이런 규모의 북한미술전은 이번 전시가 세계 최초다. 

 

2018 광주비엔날레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김선정 대표다. 지난해 7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김 대표는 국내 미술계의 파워 기획자로 꼽힌다. 아트선재센터에서 관장을 역임하며 국내외 미술관 전시를 10여 차례 큐레이팅했다.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깃들면서 광주비엔날레에 들인 북한 예술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는 상황.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걸까. 10월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평화가 (최근처럼) 무르익지 않았다 하더라도 북한 예술은 소개했을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 (재) 광주비엔날레 제공

 

 

“남북관계 안 좋았더라도 기획은 진행했을 것” 

 

광주비엔날레 개막 전부터 북한전 때문에 화제를 모았다. 유엔의 대북제재 분위기가 강했을 때인데, 작품은 어떻게 들여온 건가.

 

“북한 작가가 만든 작품은 맞지만 북한 소장은 아니다. 북경 만수대창작사미술관장 소장품 15점, 국내 개인 및 미술관 소장 3점, 워싱턴 예도예술재단 소품 4점 등 해외에 나와 있는 작품을 들여왔다.”

 

북한전 기획은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

 

“북한은 항상 미지의 세계처럼, 잊히고 지워진 세계처럼 그려진다. 그런 북한이 어떤 곳인지를 예술 작품에서 확인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한국만의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2011년부터 DMZ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비무장지대인 강원도 철원에서 그곳만의 역사와 생태를 각종 형태의 예술로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아트선재센터에 전시돼 있다.) 예술을 핑계로 DMZ 등 경계의 영역에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북한 미술의 특징은 뭔가.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조선화’이다. 동양화에서 발전한 북한만의 그림으로, 러시아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북한에선 조선화를 체제 선전 목적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노동현장 등 사회주의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굉장히 사실적인 게 특징이다.”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전에 공개된 집체화 중 하나 ⓒ (재) 광주비엔날레 제공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최대 규모정작 해외보다 국내서 관심 덜해” 

 

한반도 분위기가 바뀌면서 북한과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것 같다. 북한과 관계가 개선돼서 감회가 새롭겠다.

 

“작년에 대표로 부임하자마자 북한전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뀔지는 몰랐다. (웃음) 사실 전시 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다. 전시 허가도 개막 직전에 받았다. 보따리장사꾼마냥 몰래 작품을 몇 점 들여올까도 생각했다. 만약 북한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안 좋아졌다면? 그래도 했을 거다. 전시를 포기할 순 없으니까.”

 

북한전 이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전시가 있다면.

 

“광주 시내 전체가 전시관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광주라는 장소가 갖는 역사성을 표현한 작품들이 구 국군광주병원에 설치돼 있다. 이곳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이 치료를 받았던 곳인데 지난 십여 년간 폐쇄됐다. 그런 곳을 이번 비엔날레를 계기로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당시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노력이다. 이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다. 1박2일을 잡고 구경 와도 모자를 정도의 규모다.”

 

십여 년간 폐쇄됐다 이번에 시민들에 개방된 구 국군광주병원 ⓒ (재) 광주비엔날레 제공

 

광주비엔날레가 상당히 정치적이란 평가가 있는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예술을 지향하는 편이다. 한 현상을 구성하는 층계는 다양하다. 단편적이지 않다. 그런 층계들을 모두 설명하려다 보니 정치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예술엔 여러 종류가 있다. 쉽고 재밌게 관객들이 작품과 직접 소통하는 전시가 있고, 깊은 사유와 성찰을 필요로 하는 전시가 있다. 무엇이 좋거나 나쁜지를 가를 순 없다. 전시마다 특성이 있고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거다. 광주비엔날레가 정치적인지 아닌지는, 직접 광주에 와서 보고 판단해 달라.”

 

1995년 광주비엔날레 첫 개막 당시만 해도 관람객이 100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20만 명으로 줄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1995년도만 해도 이런 규모의 전시는 국내에 없었다. 처음 개막할 땐 광주비엔날레가 올림픽처럼 인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행사로 홍보가 됐다. 국가적 행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예술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다양한 전시가 생겨났다. 동시에 광주비엔날레 예산은 줄어들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한 전시다. 아시아 최대 규모다. 해외에선 많이 보러 오는데, 정작 우리 국민들은 광주를 찾지 않는다. 굳이 비행기 타지 않아도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가까이에 있다. 생각이 바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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