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예산 93% 삭감한 고흥군의회, 왜 이런 일이?
  • 전남 고흥 = 박칠석 기자 (sisa613@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0 19: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선7기 첫 추경 240억 중 222억 ‘싹둑’ 후폭풍…“민주당 일당 횡포” 주민 반발

전남 고흥군의회가 전례없는 추가경정예산 93%를 삭감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고흥군이 올해 안에 쓰기 위해 올린 추가경정예산을 군의회가 이처럼 무더기로 ‘칼질’함에 따라 그 피해가 애꿎은 군민에게 돌아가게 됐다. 예산삭감으로 중단하게 된 사업은 내년에 예산을 다시 짜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삭감된 예산에는 군민 수혜 혜택이 높은 생활과 밀접한 읍·면 단위 사업이 다수 포함돼 주민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이번 예산 집중 삭감이 민주당 일색의 군의회가 민주평화당 출신 군수에 대한 ‘길 들이기식 표적 삭감’으로까지 비춰지고 있어 정치적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고흥군의회는 “잘못된 절차를 바로 잡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군의회 안팎에선 이번 추경예산 삭감 규모가 너무 커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소속 정당이 다른 신임 군수 군기잡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올해 첫 추경예산 '표적 삭감' 논란에 휩싸인 고흥군의회 전경 ⓒ고흥군의회

 

 

‘피해는 군민 몫’…태풍 ‘솔릭’ 피해복구, 지역 SOC사업 등 추진 지연

 

10월11일 고흥군과 고흥군의회에 따르면, 군의회는 최근 올해 첫 추경예산 심의에서 집행부가 상정한 자체사업비 240억원 가운데 18억원만 남겨두고 93%인 222억원을 삭감했다. 이 같은 예산 삭감액은 군의회가 구성된 이후 최대 규모다. 민선 6기인 2015년부터 올해 추경예산까지 11차례에 걸친 평균 삭감액은 3%인 15억원이었다. 이것만 봐도 크게 비교된다. 심지어 지난 8월 태풍 ‘솔릭’ 피해 복구사업비도 삭감됐다. 

 

군의회의 대폭 예산 삭감으로 군의 주요사업 추진에 적잖은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우선 예산이 의회를 통과하면 이를 추석 연휴 전 긴급 투입하려던 고흥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봉계 입체교차로 설치, 국도 27호선 녹동휴게소 지하차도 신설, 고흥만 관광지구 진입체계 개선 등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일제히 제동이 걸렸다.

 

전남도와 일선 시·군이 함께 추진하는 경로당 공기청정기 보급 사업도 엇박자를 내게 될 형편이다. 도비가 내려오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군비를 충당할 수가 없어 도비만으로 일부 경로당에만 공기청정기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시급성을 떠나 주요 사업은 6개월 이상 중단되는 파행이 빚어지게 됐다. 이번에 예산이 삭감된 사업은 내년 본예산 수립과정에서 편성돼 군의회에서 통과되기를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예산이 마련된다고 해도 일정 기간 사업 추진 지연은 감수해야 한다. 

 

이에 혜택을 당장 받을 수 없게 된 지역주민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장단 등은 월례 회의에서 예산 삭감에 따른 지역 사업 차질을 우려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일부 군민은 군의회를 항의 방문하는 한편 민주당 중앙당과 청와대 등에 이런 사정을 알리기 위해 군민 서명운동도 고려하고 있다. 

 

도양읍과 금산면 주민 20여 명은 지난 5일 군의회를 항의 방문, 송우섭 의장과의 면담에서 “군민들이 시급히 해결해 달라고 긴급 요구한 지역현안사업 예산을 통째로 삭감하는 것은 군정 발목잡기와 행정 길들이기로 결국 이번 추경의 최대 피해자는 군민이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군의회 “잘못된 절차 바로 잡겠다” vs 주민들 “집행부 길들이기”

 

이번 예산 삭감의 배경에 군의회 측이 군정 발목을 잡거나 길들이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추경예산 심의 때마다 사실상 ‘원안 의결’에 나섰으나 유독 이번 추경예산에 대해서만 무더기 일괄 삭감한 것은 집행부의 사업 추진계획을 완전히 무산시키기 위한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의회는 지난 2월 민주당 소속 전임 군수가 올린 ‘1차 추경예산액 1009억원’ 규모의 추경안에 대해서는 고작 0.07%인 7200만원만 삭감하고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시킨 바 있다. 

 

그간 고흥군의회는 민선 7기 취임이후 조직개편, 각종 조례개정 등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음에도 제동을 걸었다는 지역관가의 평도 나온다. 고흥군 의회는 12명 의원 가운데 9명이 민주당, 2명은 평화당, 1명은 무소속으로 구성됐다.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은 민주당 일색이지만 송귀근 고흥군수는 민주평화당 소속이다.

 

고흥군의회 관계자는 “집행부가 2회 추경세출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군의회와 사전협의조차 없었다”며 “군민과 군의회의 의견수렴과 사전 설명회 등 절차에도 문제가 있어서 예산을 삭감한 것이지 그 밖의 요소는 심의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