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포르노’ 협박에 떨고 있는 여성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 14:05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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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 촬영 ‘성관계 동영상’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성관계 장면’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해 남기는 일이 종종 있다. 촬영 당시에는 ‘사랑의 증표’ ‘사랑의 기록’을 남기자는 의도다.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제안해서 이뤄진다. 물론 “혼자만 간직하겠다”는 단서를 단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이런 약속은 무의미해진다. 무서운 협박 도구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수 겸 탤런트인 구하라씨(28)로 인해 ‘리벤지 포르노’란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전 남자친구인 유명 헤어디자이너 최아무개씨(28)와 벌어진 폭행 문제가 발단이 됐다. 최씨가 이별을 요구하자 구하라가 폭행을 했고 최씨가 112에 신고하면서 이슈가 됐다. 구하라는 쌍방폭행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구씨는 최씨를 강요·협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최씨가 과거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성관계 영상을 전송하면서 협박했다는 것이다. 구하라가 무릎 꿇고 “동영상을 유포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내용과 관련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최씨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다.

최씨는 “둘이 관계를 다 정리하는 마당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어서 보낸 것뿐”이라며 협박을 부인했다. 또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 “제가 찍은 것도 아니고 제가 가지고 온 제 휴대폰으로 구하라가 찍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진실공방은 법정으로 이어지게 생겼다.

‘리벤지 포르노’는 당사자 간 성관계 영상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유포하거나 상대에 대한 협박이나 강요 등에 이용할 때 사용된다. 오래전부터 많은 여성들이 리벤지 포르노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일러스트 오상민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에는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을 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최근에 게시된 내용을 보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SNS에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다고 했다”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촬영한 후 협박하고 있다. 신고하면 동영상이 유포될까봐 두렵다” “전 남자친구와 연인 사이일 때 성관계 동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고통스럽게 해 주겠다며 내게 신체가 노출된 사진을 보내며 협박했다” 등이다.

다양한 사례가 있다. A씨의 경우 남자친구와 서로 다투다 홧김에 헤어지게 됐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A씨의 뺨을 때리고 목을 졸랐다. 이후 A씨는 남자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그런데 이별을 선언한 후 12일쯤 지나자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을 시작했다.

A씨는 전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를 수신 거부하고 차단했다. 전 남자친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집 앞까지 찾아와서 계속 협박을 했다. A씨는 “너무 무서워서 내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고, 계속하면 고소한다고 으름장을 놨는데도 소용없다”며 답답하다고 적었다.

B씨도 전 남자친구에게 ‘성관계 동영상 공개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전 남자친구를 올해 18세의 미성년자라고 소개했다. B씨는 “전 남자친구와 성관계할 때 찍은 영상이 있는데 그걸 가지고 협박한다”며 “유포하지 않는 조건으로 10번의 (성)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들어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개인정보와 함께 유포하겠다고 한다”며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C씨도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을 받고 있다. 3년 정도 만나 사귄 남자친구와 동의하에 3번 정도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했는데, 결별을 선언하자 이것으로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C씨에 따르면, 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추가로 촬영한 것이 4개 정도 더 있다고 한다. C씨는 형사고소를 준비하고 있다며 법적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D씨는 “남자친구와 싸우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저의 알몸을 찍은 걸 보여주며 ‘난 잡히면 그만인데, 넌 인생 끝나’라며 협박했다. 무섭고 두렵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리벤지 포르노로 협박을 받고 있는 피해자 대부분은 고소 등 적극적인 대응에는 망설이고 있다. 주변에 알려지거나 최악의 경우 온라인에 유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음란물 사이트 등에 광범위하게 유포

리벤지 포르노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들의 사생활 문제로 치부돼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음란물 사이트나 웹하드, 파일공유사이트(P2P)는 ‘리벤지 포르노 천국’으로 불린다. 출처가 불명한 일반인들의 성관계 모습이 담긴 영상이 광범위하고 적나라하게 유통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였던 ‘소라넷’은 1999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 17년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다. 이곳에서는 몰래카메라(몰카)와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 음란물이 넘쳐났다. 이것을 보기 위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했을 정도다. 연쇄살인마 유영철도 이곳의 회원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검찰이 확인한 것만 이곳에서 8만 건이 넘는 음란물이 유통됐다. 이 중에는 회원으로 가입한 이용자가 직접 올린 것도 많았는데, 상당수는 리벤지 포르노였다. 소라넷이 폐쇄되면서 제2, 제3의 소라넷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난해 1월 적발된 음란 사이트 ‘꿀밤’의 경우 가입 회원은 42만 명, 일일 방문자가 50만 명이 넘었다. 운영자인 정아무개씨(33)는 현직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씨는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지인에게 매달 300만원을 주고 성관계 사진을 촬영해 올리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음란물 사이트에 올릴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여성에게 돈을 주고 촬영하거나 상대 여성을 몰래 촬영한 뒤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도록 매월 콘테스트 형식의 이벤트를 열고 상금까지 내걸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성관계 영상 가운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으면 최대 500만원의 상금까지 지급했다. 음란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올리면 회원 등급을 높여 더 많은 음란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회원들은 상금을 노리거나 등급을 올리기 위해 불법 음란물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이를 위해 자신의 여자친구,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의 성관계 영상까지 몰래 찍어 게시했다.

음란물 사이트들의 최대 수익원은 광고다. 불법 도박 사이트, 성매매업소, 성인용품 등의 광고를 유치해 광고비를 받고 게시해 준다. ‘꿀밤’의 운영자인 정씨는 2013년부터 2016년 12월까지 약 4년 동안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성매매업소와 도박 사이트를 홍보해 주고 매월 7000만원 정도의 광고비를 챙겼다. 소라넷은 최소 100억원대의 부당 이익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음란 사이트 못지않게 ‘웹하드’나 ‘P2P’도 리벤지 포르노 유통의 근거지다. 웹하드는 공유 사이트의 서버에 한 개의 파일을 올려놓으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반면 P2P는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돼 파일을 공유한다.

 

6월9일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 2차 집회에서 성차별 수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한 번 유통되면 ‘완전삭제’ 불가

웹하드나 P2P는 보통 회원제로 운영된다. 운영자는 업로더들이 올린 파일을 상대방이 다운로드할 때 필요한 사이버머니를 제공하고 이윤을 얻는다. 업로더들은 자신이 올린 파일의 다운로드 횟수가 많을수록 많은 돈을 챙긴다. 그러다 보니 ‘김본좌’ 같은 직업적인 ‘헤비업로더’들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리벤지 포르노를 공유하는 회원들은 결별에 대한 복수 목적도 있으나, 돈을 벌기 위해 성관계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이럴 경우 자신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해 숨기고, 상대 여성은 얼굴이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이때 거래되는 금액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 사이다. 매겨지는 금액은 동영상의 내용과 화질 등에 따라 다르다. 라벤지 포르노가 거래 형식으로 업로더 손에 넘어가 공유되기도 한다.

P2P 사이트가 활개를 칠 때는 “어디서 본 적 있다”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도 있다. 음란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누나’ ‘누구의 여자친구’였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 번이라도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했던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 자신의 영상이 등장할지 몰라 가슴을 졸여야 했다.

웹하드와 P2P에 한 번 공유되면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당 사이트가 차단되거나 삭제되더라도 이전에 다운받은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올리면 다시 퍼질 수밖에 없다. 카카오톡 등 메시지를 통해서도 유통될 수 있다. 특히 해외 SNS 사이트를 통해 유통될 경우 확산을 막을 길이 없다.

현행법은 합의하에 영상을 찍었다면 그것이 유출되더라도 처벌이 불가하다. 해당 법 조항이 처벌 가능한 촬영의 대상을 ‘다른 사람의 신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리벤지 포르노 유포자를 강력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올라온 지 4일째인 10월7일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상황 회피하지 말고 적극 대응해야”

리벤지 포르노 협박·유포 대응 방법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로 협박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이에 대한 대응법으로 몇 가지를 제시했다.

실제 협박을 받았을 경우 협박 내용이 담긴 문자나 이메일을 저장해야 한다. 통화나 대화는 녹음하고, 가해자가 협박할 때 시간, 장소, 내용을 정확히 기록한다. 가해자에게 해당 영상이 있는지 영상 캡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해서 존재를 확인한다. 확인 후에는 증거 확보를 위해 지우면 안 된다. 증거가 확보되면 가해자를 협박죄나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로 신고한다.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가 유포됐을 때는 상황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빠른 대응이 상황 악화를 막는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해당 영상을 본 즉시 다운로드해 저장한다. 또 영상이 게시된 화면을 캡처한다. 다음으로 영상이 게시된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한다.

유포자의 처벌을 위해 경찰 사이버수사대에도 신고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나 한국여성민우회 등을 통해 상담하거나 내가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공동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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