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City Forum④] “지방도시, 피 돌지 않는 괴사 직전 상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 15:00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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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시의 발견》 저자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편집자주]

한국의 도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기술 발달로 외형은 화려해졌을지 모르지만, 정작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은 오히려 활력을 잃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 원인은 하나로 요약됩니다. 바로 도시 발전에 ‘사람’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생명체입니다. 도시는 자본의 ‘상품’이 아니라 시민의 ‘삶터’입니다.
한국도시행정학회와 시사저널은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행복한 ‘착한 도시(Good City)’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함께 고민하고자 10월23일 서울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GOOD CITY FORUM 2018」을 개최합니다. 올해는 그 첫걸음으로 위기에 내몰린 지방의 현주소와 지방 소멸 위기를 어떻게 대응할지,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도시재생뉴딜 사업’이 지역 발전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심도 깊게 논의합니다.



'폐교된 시골학교들이 다시 살아나는 날.'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모바일 메신저 첫 화면에 이 같은 문구를 적어 놨다. 정 교수는 ‘서울 전문가’로 불린다. 민선 1기 조순 시장과 고건 시장 등 5명의 서울시장을 도와 도시계획을 책임져왔다. 그런 그가 서울의 마천루(摩天樓)가 아닌 무너져가는 시골학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10월10일 정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10월23일 열리는 ‘2018 굿시티 포럼(GOOD CITY FORUM 2018)’에서 대한민국 도시의 재생과 혁신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서울은 비대한 반면 지방도시는 사람이 빠져나가 피가 돌지 않는 괴사 직전의 상태”라며 “도시재생은 이와 같은 국토의 불균형과 병적 상태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도시혁명은 곧 주인을 바꾸는 일”

도시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을 하셨다. 현재 ‘좋은 도시’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자동차 시대에는 차가 빨리 다닐 수 있는 도시가 좋은 도시였다면 지금은 사람이 걷기 편하고 걷고 싶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 가장 좋은 도시를 저는 ‘걷고 싶은 도시’로 표현하고 싶다. 걷고 싶은 마음이 들기 위해서는 물리적 보행 환경뿐 아니라 공기의 질, 걷는 길가의 가로 환경, 사람들, 날씨 등등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결국 좋은 도시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좋은 시민이다. 좋은 시민들이 사는 곳이 가장 좋은 도시란 얘기다.”

‘좋은 시민’이란 표현이 모호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마을과 도시에 살면서 일상에서 겪는 여러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첫 번째 길이다. 출퇴근 때의 고생, 마을과 거리의 안전 문제, 미세먼지 문제, 자동차 위주의 도시 공간 문제 등을 당연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감수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책임은 없는지 스스로 묻고 생각하며,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일상의 도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고 풀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최근 강연을 통해 도시재생​을 넘어 도시혁신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도시개발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거나, 오래된 도시를 지우고 새 도시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도시재생은 오래된 도시를 잘 고쳐 오래오래 지속하도록 돌보는 일이다. 개발시대의 도시가 빨리 만들어야 할 물건이었다면 재생시대의 도시는 돌보고 되살려야 할 생명체와 같다. 도시혁신은 말 그대로 도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세게 표현한다면 도시혁명이고, 도시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 여러 선진 도시들이 자동차 도시를 사람의 도시로 바꾸는 도시혁신, 도시혁명을 하고 있다.”


“청년을 불러 모아야 지방이 산다”

도시를 혁신하는 것과 자동차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수많은 도시 문제들은 서로 얽혀 있고, 그 문제들을 푸는 출발이 어쩌면 자동차 도시를 사람의 도시로 바꾸는 도시혁신일지 모른다. 승용차 이용이 줄고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으로 도시 활동을 한다면 교통사고도 줄고, 대기오염도 줄고, 도시의 활력과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서울시장과 일했다. 도시정책에 있어 인상 깊었던 시장이 있나.

“고건 시장의 임기 중에 많은 혁신적인 정책들이 세워지고 실행됐다. 재개발 위주 서울 도심부 정책을 보전과 재생 쪽으로 전환하는 ‘서울 도심부 관리계획’이 세워졌고, 주거지역을 저층지역과 고층지역으로 나누고 과밀개발과 고층개발을 막기 위한 ‘일반주거지역 종세분화’도 고건 시장 임기 중에 완료됐다. 부패방지 시스템 도입, 도시행정 전산화, 천만 그루 나무 심기,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사업 등 많은 일들이 이때 이뤄졌다.”

현재 서울의 모습을 평가한다면.

“서울은 타고나기를 잘난 도시, ‘쌩얼’(민낯)이 고운 아름다운 도시다. 산과 강과 언덕 등 자연지형이 발달해 스카이라인보다 보디라인이 더 멋진 도시인데, 그 아름다움을 우리 시민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도시 따라 하기로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자연환경과 경관을 훼손하는 개발, 오랜 역사와 문화를 훼손하는 재개발로 서울의 아름다움이 더는 상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울과 지방도시의 균형적 발전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해법이 있을까.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를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보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국토를 하나의 생명체로 봐야 한다. 지금 서울과 수도권은 너무 비대해지고 과열된 반면, 지방과 농산어촌, 지방도시의 원도심은 사람이 빠져나가 피가 돌지 않는 괴사 직전의 상태다. 도시재생은 이와 같은 국토의 불균형과 병적 상태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돼야 하고, 지방재생에 중점을 둬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청년과 중장년을 지방에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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