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선수생활 하는 동안 내 사전에 대표팀 은퇴는 없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9 10:35
  • 호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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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통산 300골’ K리그 최고령 선수 이동국 인터뷰…“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면 과감히 은퇴 선언”

2경기만 더 뛰면 한국 프로축구 통산 500경기를 채운다(10월18일 현재).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전까지는 3경기 남았다(김기동, 501경기). 올 시즌 12골을 터트리며 팀 내 득점 1위(전체 6위)로 2009년부터 10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을 세웠다. 1979년생으로 올해 나이 39세. 한국 나이로 불혹에 이른 공격수 이동국(전북 현대)은 세월의 흐름을 역행하는 활약으로 전북 현대의 10년 왕조를 이끌었다. 2009년 이동국이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후 그해 전북은 K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11·2014·2015·2017년에 이어 올해도 정상에 올랐다. 이동국이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넣은 골은 통산 300골. K리그 최고령 선수인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실력으로 증명해 내고 있다. 10월17일, 전북 봉동읍에 위치한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이동국을 만났다.

 

ⓒ 시사저널 임준선


 

1998년 만 19세의 나이에 포항 스틸러스 신인 선수로 K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프로의 옷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새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축구할 때는 나이를 잊고 지내다 인터뷰할 때마다 기자들 덕분에(?)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신인 때는 프로에 적응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생활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프로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이나 행동 등 신경 쓸 게 정말 많았다. 그러나 20대를 넘어서면서 거칠 게 없었다. 겁날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달렸고 최고의 자리에도 올라섰다. 정상에 오른 후에는 그걸 유지하느라 또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단 한순간도 만족했던 적이 없었다.”

30대의 선수 이동국은 어떠했나.

“질풍노도의 시간을 겪으며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전북 현대에 입단했다는 점이다. 영국 미들즈브러에서 성남 일화로 복귀했다가 3개월 만에 전북으로 트레이드된 것이다. 그런데 그 트레이드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전북을 만나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었고, 이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에만 주력했던 삶과 마음가짐이 소속팀을 더 우선시하게 됐다.”


이동국은 2009년 1월10일, 미드필더 김상식과 함께 성남 일화에서 전북 현대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두 ‘노장’을 데려간 최강희 감독을 향해 ‘지나친 모험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동국은 그해 29경기 21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전북 현대는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동국은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생애 처음으로 MVP와 베스트11, 득점상을 수상했다. 또한 팬 투표를 통해 ‘팬타스틱 플레이어(FAN-tastic Player)’로도 뽑혔다. 당시 이동국의 수상이 더욱 크게 와 닿았던 건 그의 굴곡 많은 축구 인생 때문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모험을 감수하고 선택한 카드를 선수 스스로 비난에서 칭찬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이동국은 소속팀보다는 대표팀을 더 우선시했다는 말인가.

“그때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걸 더 높은 목표로 삼았다. 월드컵에 대한 회한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표팀 승선 여부가 축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면 전북에 와서는 대표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법을 배웠다.”

대표팀과 소속팀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강희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희생’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신다. 선수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팀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줄 안다. 그러나 대표팀 선수들은 희생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을 앞세우는 듯했다. 자신이 골을 넣으면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서 동료 선수를 빛나게 해 줄 여유와 기회가 많지 않다. 내가 마지막으로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가 2017년 8월이었다. 3년여 만의 대표팀 발탁이었는데 당시 선수들을 모아 놓고 처음으로 희생과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았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 받으려 하지 말고 동료에게 그 스포트라이트를 넘길 수 있도록 돕는 게 희생이라고 말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동국 선수가 이런 말을 했었다. ‘대표팀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팀에 돌아오면 전북 팬들이 나의 모든 걸 보듬어줬다’는 내용이 꽤 인상적이었다.

“전북이 이전부터 명문 클럽은 아니었다. 성적도 환경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전북 팬들은 그런 부분에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최강희 감독님 부임 후 팀 성적도 환경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팬 문화도 팀과 함께 향상됐다.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선수들, 팀을 진심으로 아낄 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실수하더라도 운동장에서 내 이름을 한 번 더 크게 불러주고 환호를 보낼 줄 아는 팬이 전북 현대 팬들이다. 전북 팬들은 3대가 함께 경기장을 찾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리고 손자가 손을 잡고 경기장에서 응원전을 펼친다. 팬들, 관중들의 수준이 한층 올라섰다. 처음 전북에 왔을 때만 해도 내가 이 팀에서 10년 동안 뛰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2년 정도 있다가 다른 팀을 찾아 나갈 생각으로 집도 전월세를 구했었다. 그런 팀에서 10년을 함께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동국은 2014년 10월 친선전 이후 3년여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었다. 당시 축구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이란-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둔 상태였다. 승점 13점의 대표팀은 조 2위를 차지,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과의 승점이 단 1점 차였다. 2경기에서 자칫 삐끗할 경우 예선 탈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집중해야 할 경기를 앞두고 이동국은 후배들에게 희생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러시아월드컵 본선 무대에는 서지 못했다. 이후 대표팀은 신태용 감독에서 벤투 감독으로 사령탑이 교체됐다.

“현재 대표팀은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중이다.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대표팀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대표팀과 나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표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제 은퇴를 발표할 거냐고 묻는데, 메시나 호날두 정도의 클래스가 돼야 은퇴 선언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안 된다.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내 사전에 대표팀 은퇴는 없다.” 

 

4월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2018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현대 이동국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 때 선수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이동국이란 이름이 회자됐었다. 뽑혀도 화제, 안 뽑혀도 화제였다.

“솔직히 난 즐거웠다. 불혹의 나이에도 이토록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그만큼 내가 선수생활을 잘해 왔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내 나이의 다른 선수들은 이미 은퇴하거나 지도자를 하고 있는데, 난 대표팀 관련 이슈메이커가 돼 이동국을 뽑아라 말아라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난 대표팀 감독이 이동국이란 카드를 쓸 수 있게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이 소지한 여러 카드 중 나를 중요한 카드로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나중에는 버리는 카드로 내몰렸지만 말이다.”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미련과 회한으로 가득한 무대다. 만 19세의 나이에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에 교체 투입돼 과감한 중거리 슛을 날리며 한국 축구의 희망을 쏘아 올렸지만 이후 월드컵에서는 참담함을 곱씹어야만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외면을 받았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에 실패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 결정적 찬스를 잡았지만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기대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동국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동국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18년이 월드컵으로선 마지막 기회였다는 사실을.

3~4년 전부터는 전북 현대에서 주전보다는 교체 선수로 출전하고 있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겠지만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몸을 풀다가 그라운드에 투입되지 못하고 그냥 경기를 끝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내가 계속 선수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이 되더라. 교체 투입되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보여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준비를 했는데 그걸 보여주지도 못하고 경기를 끝내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엔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 같다. 최강희 감독님이 올해는 많은 기회를 주셨고 덕분에 골도 넣을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전북의 팀 색깔 덕분이다. 감독님이 1점을 앞서고 있어도 수비 위주가 아닌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시기 때문에(‘닥공<닥치고 공격>’) 추가골을 만들기 위해 나를 투입하는 횟수가 많았다.”

선발로 출전할 때와 교체 투입될 때의 플레이에 차이가 나지 않나.

“선발로 들어가면 가끔 선수들과 모험적인 플레이를 시도해 볼 수 있지만 후반에 투입되면 단 1분의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 계속 슈팅 찬스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당시 어떻게 해서 그 위기를 극복해 냈나.

“아내, 가족들과 많이 상의했었다.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면서. 지난 시즌 초에 부상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했었다. 부상에서 회복 후 돌아와 보니 기존 선수들이 워낙 잘하고 있어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여름까지 해 보고 안 되면 은퇴할 생각을 했었다. 아내한테도 미리 귀띔을 해 뒀다. 그런데 여름부터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두 골을 연속 터트렸다. 산소호흡기를 떼고 있다가 다시 단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얼마 전부터 구단과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었다. 본의 아니게 해마다 FA 신분이다. 올해도 마찬가지고. 이번에도 구단이 이동국 선수와 재계약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이를 먹은 선수는 경기를 못 해야 하는데 계속 골을 넣고 있으니 (구단 입장에선) 골치가 아플 것이다. 사실 나이를 제외하고는 내가 다른 선수들보다 뒤떨어지는 부분이 전혀 없다.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수준 높은 경기력을 유지한다. 득점도 팀 내 1위다. 그런 내게 경기력이 아닌 나이 얘기만 꺼낸다면 진정한 프로가 아니라고 본다. 난 시즌 중이라도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은퇴를 선언할 것이다. 지금은 충분히 후배들과 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다. 선수를 평가할 때 나이에 대해 색안경을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좀 다른 질문이다. 최근 전북 현대를 이끈 최강희 감독이 중국 프로팀을 맡게 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최 감독이 없는 전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전북에 처음 입단한 것도 감독님 때문이었고, 전북에서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성적을 내는 것도 감독님의 배려와 도움 덕분이었다. 2009년 정규리그 우승부터 지금까지 모든 걸 감독님과 함께했었다. 지금 언론을 통해 나오는 얘기들은 나한테 의미가 없다. 바람이 있다면 감독님한테 직접 듣고 싶다. 앞으로의 거취가 어떻게 되시는지 말이다.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그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이동국은 자신의 축구 인생이 “최강희 감독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귀국했지만 성남 일화에선 그가 기대한 만큼의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당시 성남 일화 감독이 신태용이었다). 결국 퇴물 취급을 받다 구단으로부터 다른 팀을 알아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황망해할 때 손을 내민 이가 최강희 감독이었다. 물론 다른 팀의 제안도 있었지만 최 감독은 이동국에게 진심을 보였다. 그때 이동국의 마음을 움직인 최 감독의 메시지가 있었다. “네가 다시 선수로 뛸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싶다. 경기장에서 더 이상 뛰기 힘들다고 손을 들 때까지 뛰게 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동국은 최 감독의 약속을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감독과 내년 시즌부터는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4녀1남을 두고 있고 아이들과 이동국보다 ‘대박이 아빠’로 불리며 방송을 함께 시작한 지 어언 3년이 흘렀다(KBS-TV 《슈퍼맨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내가 매주 촬영을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있는 휴식일에 촬영하고 있다. 어차피 휴식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터라 촬영한다는 생각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놀아준다고 받아들인다. 방송 덕분에 아이들과 많은 추억과 얘깃거리를 쌓았다. 또 축구선수의 출연으로 K리그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전북 현대 유니폼이 한 번이라도 더 방송을 탄다면 더 좋은 현상이 아니겠나. 요즘에는 나보다 울산 현대 ‘나은이 아빠’ 박주호가 더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운동선수의 방송 출연은 구단과 감독님의 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점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동국은 이 얘기를 덧붙였다.

“나이 먹은 선수가 계속 선수생활을 영위하려면 실수가 없어야 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약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면 방송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노력이다. 모두 잘할 수 없겠지만 어느 부분에서도 비난받지 않으려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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