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부터 전해진 ‘후지오리’ 강습회, 34년째 이어와
  •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6 15:06
  • 호수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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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등나무 재료로 베 짜는 기술 전승, 산골마을 가미세야 탐방

10월초의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른 날, 하늘과 맞닥뜨릴 만큼 높고 깊은 산골에 갔습니다. 교토(京都)부 단고(丹後)반도 지역의 미야즈(宮津)시 가미세야(上世屋)라는, 10세대나 살까 말까 한 산촌입니다. 교토시에서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아침 8시에 나서 전철과 버스를 몇 차례나 갈아타 겨우 점심 지난 오후 2시 즈음 도착하는 그런 산골입니다. 자동차로 가도 3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지요.

재해 연구의 공동연구자이면서 인도의 천연염색과 수공예 작업을 인류학적으로 연구하는 가네타니 미와(金谷美和·48)씨의 한마디에 이런 먼 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등나무를 재료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베 짜기를 하고 있어. 후지오리(藤織·등나무베짜기)라고 해.”

수공예 연구를 하기에 조사를 하는 것까진 이해가 되지만 직접 직물 짜기에 참여한다는 말에 그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연구만 하면 알 수 없는 것이 많아 원시직물의 하나인 후지오리 강습회에 입학해 종료한 후 보존회 회원이 됐어.” 보존회에서는 후지오리 전승자를 길러내기 위해 강습회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베틀에 날실을 걸고 있는 보존회 사람들.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 이인자 제공



한반도로부터 벼농사와 함께 전해져

올 5월에 처음 들은 이 말은 저에게 아주 자극적으로 들렸습니다. 전날 후지오리를 위해 등나무를 채집했다면서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등나무를 재료로 바구니 만드는 것도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상황인데 나무에서 섬유질을 잡아내 실을 만들고 그 실로 베 짜기를 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서 이 먼 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후지오리와 같이 식물섬유로 직물을 짜는 기술은 기원전 10세기 전후부터 기원후 3세기 정도의 시기에 한반도로부터 벼농사와 함께 전해졌다고 일본의 여러 기록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목화가 전파돼 서민들이 사용하게 되는 17세기 전까지 마(麻)와 더불어 후지오리는 자급자족을 하던 농민들이 흔하게 이용하는 직물이었다고 합니다.

등나무에서 직접 섬유질을 찾아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직물을 짜서 사용하는 것이기에 무척 손이 갈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도 이 오래된 베 짜기를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 1990년대까지 해 왔고, 마지막 세대가 아직 있을 때 보존회가 만들어져 기술이 전승됐다고 합니다. 1983년 나라의 선택무형민속문화재로 선정돼 보존회가 만들어지고 올해로 34기 강습생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강습회는 5월부터 시작해 한 달에 한 번 1박2일로 12월까지 이뤄집니다. 8월에는 명절이 끼어 방학을 하니 총 7차례 14일간의 기술전수를 위한 강습회가 열립니다. 산 깊은 마을에서 내려가야 하니 마치고 나면 교통이 끊기거나 육체적으로 힘들어 머무르는 사람이 있기에 실제로는 2박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치 원시생활을 상징하는 듯한 후지오리에 대한 기대를 듬뿍 안고 가미세야에 도착했습니다. 마을까지 가는 길에는 빨랫줄처럼 나무로 만든 걸대에 누렇게 익은 이삭을 맺은 볏단이 걸려 있습니다. 초가지붕처럼 겹겹이 이삭만 내밀게 걸려 있기에 시골 풍경과 어우러져 정겹게 느껴집니다. 볏짚 앞에서 작업을 하던 젊은 부부가 우리에게 인사합니다. 가네타니씨는 이미 알고 있는 사이고 농촌 이주로 정착한 마을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10세대 정도의 이 마을은 다섯 세대가 농촌 이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농촌 이주를 한 이들 모두 후지오리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곳으로 이주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보존회 이름은 이 지역 이름을 따서 단고후지오리(丹後藤織)보존회입니다.

강습을 위해 사용되는 곳은 마을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지금은 아이가 없어 폐교된 중학교 건물입니다. 입구에 ‘후지오리 전승교류관(藤織り傳承交流館)’이라고 쓰인 간판이 있고 그 간판을 끼고 산 쪽으로 올라가면 개울이 폐교 건물 왼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30여 명의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모였습니다. 올해 입학한 34기 강습생 7명이 주인공입니다. 그들의 강습을 도와주기 위해 보존회 선배들이 20명 남짓 모였습니다. 처음 강습회 때는 아직 이 마을에 살고 있던 마지막 기술보유자 할머니 두 분이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강습을 받았던 초기의 보존회 회원들이 강사가 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수료한 선배들이 강습생 도우며 참여

흥미로운 점은 이미 수료한 선배들이 강습생들을 도와주면서 참여하는 점입니다. 그날 1기생 선배 3명에 2기생, 3기생은 물론 최근에 강습을 마친 33기생도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기수끼리 서로 돈독함이 엿보이는 면도 있었습니다. 다른 베 짜기의 경우 주로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후지오리는 남성들이 많은 점이 특징입니다. 아마도 산에 올라 등나무를 채취하거나 껍질을 벗기는 등 남자 손이 더 유리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지오리 과정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면 산야에서 자생하는 등나무를 5월부터 7월까지 채집합니다. 일본에서 옷감을 재는 단위로 ‘단(反)’이 있습니다. 일본식 전통옷 기모노를 한 벌 만드는 데 필요한 옷감 단위를 한 단이라고 합니다. 폭 36cm, 길이 12m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 정도 옷감을 짜는 데 필요한 재료는 어른이 두 팔을 힘껏 벌린 만큼 길이의 등나무 토막 70개 정도입니다.

먼저 채집한 등나무의 표피를 두드려 껍질을 벗기기 좋게 만듭니다. 그러고 난 후에 발까지 사용하며 표피를 벗기지요. 벗긴 껍질의 안쪽에 유착돼 있는 하얀 속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냅니다. 이것이 등나무 실의 재료가 되는 섬유질을 포함한 중요한 부분으로, 아라소(中皮·속껍질)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5월 강습회 때 모두 합니다. 말려 놓았던 아라소를 물에 담가 부드럽게 한 후 나무를 태워 만든 재를 물에 개어 그 속에 넣고 뒤집어가면서 4시간 정도 끓입니다. 이렇게 끓이면 섬유질만 남게 되지요. 그걸 개울가 흐르는 물에 뽀득뽀득 집게 같은 도구를 이용해 불순물을 제거하면 섬유질만 남습니다(6월 강습회).

그리고 섬유질을 부드럽게 해 주는 쌀겨 물에 담갔다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립니다. 이 과정을 마쳐야 겨우 실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실을 자아내는 일은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비교적 같은 두께의 실을 잣기 위해 서로를 이어줘야 하는데, 명주와 달리 등나무 넝쿨의 원리를 이용해 위아래로 꼬아 실을 엮어갑니다. 손이 건조한 고령자보다 보습이 좋은 어린아이 손이 실 잣는 데 유리해 옛날에는 일고여덟 살 정도의 여자아이부터 겨울밤엔 실을 자았다고 합니다(실 잣는 일은 6월부터 매일 밤마다 함). 그렇게 만들어진 실로 베 짜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습회나 보존회 회원 중엔 젊은 남녀도 많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산골까지 와서 이런 작업을 보존하겠다고 모이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그것도 34년간 전국에서 강습을 받기 위해 매달 수강을 하고 수료한 후에도 보존회 회원이 돼 후기생들과 함께 배움을 이어가거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옷감만이 아니라 좋은 옷들도 철마다 한 보따리씩 버려야 다시 새로운 옷을 살 수 있는 소비시대에 이토록 원시적인 방법을 구현해 직물 짜기를 보존하는 사람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음 호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배우고 그리고 남기려 하는지 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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