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단둥 현지 르포②] “北, 중국서 중장비·철근 밀수한다” (下)
  • 중국 단둥=송창섭·김지영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2 15:31
  • 호수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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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中 단둥 현지 르포]“北, 중국서 중장비·철근 밀수한다” (上)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10월22일 밤 10시 단둥 해관(세관) 앞에는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차량 번호를 보니 하나같이 ‘평북(평안북도)’ 소속이다. 현재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으로 들어가는 품목은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생필품 정도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교역량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언론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둥에서 만난 한 재중(在中)교포는 “밤만 되면 수십 대의 컨테이너 차량이 세관 앞에 집결한다. 대북제재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 소문에는 중국 세관의 검사도 요식행위라고 한다. 저(컨테이너)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어떻게 100% 확인하느냐”고 반문했다.

압록강철교는 철도와 차도가 한 개씩 있다. 한쪽에서 차량이 모두 넘어가야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식이다. 1943년에 지어져 안전상에도 문제가 있다. 북·중 양국이 신압록강대교 개통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중 양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한국의 독자적 대북제재(2010년 천안함 사태 직후 취해진 5·24 대북 교역 금지 조치)와 안보리 제재로 2010년을 기점으로 북·중 교역량이 매년 10~12% 줄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공식 교역량은 감소하고 있지만 비공식 교역은 되레 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공식 교역은 ‘밀수’다. 이러한 비공식 교역은 양국 정부의 묵인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황금평 주변에서 밀수 목적으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어선(위 사진). 압록강을 따라 하구 쪽으로 가다보면 공터에 석탄을 쌓아 놓은 모습(원 안)을 쉽게 볼 수 있다. ⓒ 시사저널 송창섭


밀수는 주로 밤에 이뤄진다. 압록강 하류에서 강폭이 좁아지는 곳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밀수에는 단둥의 중국 어선들이 동원된다. 중국 쪽에서 넘어가는 품목은 사실상 제한이 없다. 현지에서 만난 한 재중교포 사업가는 “이따금씩 압록강변을 바라보고 있으면 건너편 신의주에 들어서는 고층건물을 보고 깜짝깜짝 놀란다.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고층건물 수가 대충 세어도 70여 개가 넘는데 여기 사용되는 철근과 중장비가 어떻게 북한으로 갔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신청에서 단둥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압록강 주변으로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다. 단둥에선 석탄이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하나같이 강변에 있다. 현지를 안내한 한 중국인은 “북한으로부터 밀수로 받은 석탄을 저렇게 대놓고 쌓아놓은 것을 단둥시 당국이 그냥 보고 지나칠 리 없다”고 설명했다.

수산물 등이 중국산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올해 오징어가 풍년이다. 북한에서 낙지라고 불리는 오징어는 올해 청진과 나진 사이에서 많이 잡힌다. 이렇게 잡힌 오징어는 남포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산으로 둔갑한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팔리는 오징어 값은 톤당 1만2500위안. 여기서 중국산으로 원산지가 바뀌면 톤당 4만 위안이 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산 오징어의 일부는 이런 경로를 거친다.

현재 단둥에 거주하는 북한 사람들은 대략 2만 명으로 추산된다. 과거 북한은 단둥에 대규모 제조인력을 파견했다. 이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의류 임가공 사업으로 중국인이나 북한에서 태어난 화교가 오너로 있는 회사에 파견돼 일한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2375안에 따르면, 대북제재위원회가 사전에 허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규 노동 허가증 발급이 금지됐다. 특히 기존에 파견된 노동자의 경우 노동허가증이 만료되면 이를 갱신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로써 국제사회는 중국 내 노동자 수를 강제적으로 줄여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예상대로라면 중국에서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 수는 줄었어야 한다. 하지만 현지 취재 결과, 달라진 건 거의 없다. 현장에서 중국 근로자들을 관리·감독하는 한 중국인은 “한 달짜리 관광비자로 들어와 일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이렇게 하면 유엔 제재를 모두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 북·중 관계를 가리켜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비유한다. 북·미가 가까워지자 시진핑 정부가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근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러한 계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 중국이 북한 영토 일부를 99년간 빌려 개발하려는 구상이 보도된 것이 좋은 예다. 중국의 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차하얼(察哈爾)학회 소속 연구팀은 최근 랴오닝성과 지린성(吉林省)의 북·중 접경지대를 현지 조사한 뒤 이같이 결론 내렸다.
 

북·중 교역의 상징인 압록강철교를 통해 신의주에서 출발한 화물차량이 단둥으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송창섭


단둥-신의주-평양 고속도로 건설 추진

액면 그대로 봐선 중국이 북한을 활용해 돈을 벌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북한으로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 현지 한국인 사업가는 “중국 자본과 기술로 접경지 일대 도로를 개설하고 북한은 통행세만 챙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위화도와 황금평은 충분한 개발 가치가 있다. 현재 북한은 대중(對中) 교역을 늘리기 위해 남포항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물론 훗날의 대북제재 해제를 대비해서다. 중국 현지에선 북한이 현재 5000톤급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도크를 남포항에 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록강철교 위로는 기차가 매일 아침 단둥과 신의주를 오간다. 신의주를 거쳐 평양으로 가는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매일 아침 단둥역은 북적인다. 하나같이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부자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달고 있다. 관광객인 척하고 무리 근처로 가니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열차 때문인지 단둥역 앞엔 압록강을 배로 유람하는 상품을 파는 관광사들도 성행하고 있다. 아침 일찍 단둥역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에게 여행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전단지 한 장을 건넸다. 웨량다오(月亮島)를 출발해 주리다오(九里島) 통군정(統軍亭), 북한군 초소를 배를 타고 둘러보는 하루짜리 상품이 1인당 180위안(약 3만원)에 팔리고 있다.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단교 주변을 거닐던 기자에게 중국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손짓한다. “이봐, 내가 사진 찍어줄까? 요즘 여기에서 저쪽(북한 신의주 방면) 향해 사진 찍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늘었어. 당신도 그래서 여기 서 있는 거 아냐?”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즐거운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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