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살인’ 그들은 왜 살인자가 됐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5 14:52
  • 호수 15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때 ‘사귈 때는 열정적’으로, ‘헤어질 때는 미련 없이’라는 뜻의 ‘쿨한 이별’이 ‘사랑의 풍속도’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쿨한 이별’은 이제 옛말이다. 대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결별은 죽음이다” “이별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서 잇따라 ‘이별 살인’이 발생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안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안전 이별’이 화두다. 이별 살인의 가해자는 대부분 상대 남성, 피해자는 상대 여성이다. 이번 부산 일가족 사건처럼 가족이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별 살인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상대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소유욕, 일상생활 통제, 병적인 집착 그리고 무조건적인 증오다. 여기에 더해 가해 남성들은 세상과 단절된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부산 사건의 용의자도 이 범주 안에 들어 있었다. ​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씨가 10월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살던 김아무개씨(32)도 이별 살인의 희생자다. 김씨는 2016년 4월19일 아침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나섰다가 기다리고 있던 전 남자친구 한아무개씨(32)에게 살해당했다.

한씨는 흉기로 목, 심장, 옆구리 등 6곳을 찔렀다. 범행 후에는 흉기를 아파트 쓰리기통에 버리고 준비한 오토바이를 타고 황급히 도망갔다. 범행 현장에서는 한씨가 남기고 간 회칼, 과도, 로프, 나일론 끈, 염산 등이 발견됐다. 범행을 철저히 준비한 것을 알 수 있다.

김씨에게 한씨와의 만남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듯했지만 점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면 간다고 꼭 알려줘야 했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지 않으면 화를 냈다. 김씨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점점 다툼이 잦아졌고, 급기야 사귄 지 8개월 정도 됐을 때 김씨가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자 한씨는 “함께 죽자” “죽여버리겠다”며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부터 협박과 잔혹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쉴 새 없이 문자와 협박전화를 했다. 매일 김씨가 사는 아파트 앞에 나타났다. 보란 듯이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서 지켜봤고, 아파트 맞은편 교회에 올라가 집 안을 수시로 들여다봤다.

그러다 결국 살인으로 막을 내렸다. 한씨의 성장 과정을 보면 어릴 적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사춘기 시절을 외톨이처럼 보냈다. 그는 범행 뒤에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별 살인’이 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10월22일 오전 7시16분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지상주차장에서 이아무개씨(47)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를 살해한 것은 전남편이었다. 이씨는 결혼 후 남편 김아무개씨(48)의 상습폭행에 시달렸다. 두 사람은 2015년 아내 이씨의 요구로 이혼했다. 세 딸들은 이씨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김씨의 폭행은 그치지 않았다. 그는 병적인 집착을 보이며 이씨를 찾아가 폭행하며 괴롭혔다. 이씨는 그를 피해 지금까지 6번이나 거처를 옮겼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이씨 차량 범퍼에 몰래 GPS(위성항법장치)를 붙여 위치를 추적했다. 심지어 범행 당시에는 이씨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발까지 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25일 서울 강남에서 살해된 A씨(22)는 이혼소송 중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다. A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아무개씨(25)와 혼인신고를 하며 법적 부부가 됐다. 조씨는 결혼 후 본색을 드러냈다. 조씨는 아내를 억압하며 집과 직장만 오가도록 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집착하고 감시했다. 급기야 아내가 반발하자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강도는 점차 세졌다.

A씨의 결혼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언제 또 남편에게 폭행을 당할지 몰라 무섭고 두려웠다. 결국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 이혼 절차에 들어갔다. A씨는 남편을 피해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렇다고 조씨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린 딸을 보러 갔다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조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A씨의 거처를 알아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왜곡된 집착과 분노가 범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별 살인’의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 가해자 스스로 범행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해자가 피해 다닐수록 더욱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법원에서 ‘접근 금지’ 조치를 내려도 살인으로 이어지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다 보니 살인으로 이어진 다음에야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연관기사


뒤틀린 증오와 병적 집착이 부른 가족의 몰살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