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손잡고’ 가야 한반도 평화 온다
  • 손기웅 한국DMZ학회장·前 통일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4 10:59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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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전망대] 남·북·미·중·러·일 등 동북아안보협력체, 北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 동시 해결

정상외교가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남북, 북·중, 북·미에 이어 북·러 및 북·일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다자(多者)안보협력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상호 관계 발전에 가닥이 잡힐 경우, 사실상 폐업 상태인 6자회담 동력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평화와 공동 번영을 지향하는 동북아안보협력 형성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한반도 통합은 동북아 지역통합과 분리될 수 없고 분리돼서도 안 된다. 통합은 국가 간에 교류·협력이 제도적으로 활발하게 형성되면서 평화적 공생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환경 등 다양한 차원에서 교류·협력해야 한다. 이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유대감을 키워 나가야 한다. 남북 간 통합 과정이 진척된다고 하더라도 지역·국가 간에 갈등이 유발된다면 남북관계는 제약될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은 물론이고 평화협정이 향후 남·북·미·중 간에 채택돼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역내(域內) 국가들이 갈등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염원인 통일이 주변 국가들의 갈등과 반대 속에서 과연 가능하겠는가. 

 

2008년 7월10일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다이에서 개막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자회의에서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맨 오른쪽)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 측 수석대표(왼쪽 두 번째)가 우다웨이 중국 측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 EPA 연합


열강의 무력 충돌 없앨 중요한 대안

북한 비핵화에 6자회담 당사국 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북핵 문제 외에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다자안보협력에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호 불신과 의혹에 바탕을 둔 안보 불확실성의 연결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신뢰부터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관계정립을 겨냥한 다자간 안보협력이 요청된다. 이를 통해 ‘대화의 습관(Habit of Dialogue)’ ‘대화의 문화(Culture of Dialogue)’를 증진시킬 수 있다.

둘째, 경제·환경·난민·마약 등 비군사적 문제들에 대해 역내 국가들이 개별이 아닌 지역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셋째, 다자안보협력은 평화와 번영이라는 ‘지역공동선(Regional Collective Good)’을 만들 수 있다.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민족주의를 자극, 군비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따라서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을 겨냥한 새로운 지역질서 구축은 지역안보협력의 중요한 구심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자간 틀을 활용, 북한이 외부 세계와 계속적인 접촉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북한의 국제사회로의 진입과 개방·개혁을 촉진할 수 있다. 또, 다자적 차원에서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한반도에 실현, 안보증진과 평화정착을 이룩한다. 북한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위기관리도 가능하다. 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과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덤이다. 더 나아가 통일 이후 통일 한국의 안보체제 정립과 평화번영에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자안보협력을 벤치마킹할 모델은 없을까. 냉전 시대 다자안보협력을 위한 ‘대화(conference)’로 시작, 오늘날 ‘기구(organization)’로 제도화·발전되고 있는 CSCE(유럽안보협력회의·1995년부터 유럽안보협력기구로 개칭)가 좋은 예다. 1975년 출범한 CSCE는 2차 세계대전 후 서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동구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간 극심했던 냉전의 탈출구에서 출발했다.

CSCE가 성사된 이면에는 전쟁 후 30년간 지속된 냉전의 폐해, 정치·경제적 부담을 회복할 여유가 필요했던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동서 진영 갈등의 상징이자 중심지인 서독의 정책 변화가 유럽안보협력의 전제 조건을 만들었다. 1969년 서독 수상에 취임한 빌리 브란트는 이전 정부의 국경 변경, 동독 및 동구권과의 관계 단절이란 ‘동방정책(Ostpolitik)’ 입장에서 기존 국경선의 유지, 동독을 포함하는 동구권과의 관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신동방정책(Neue Ostpolitik)’을 펼쳤다. 독·소 및 독·폴 불가침조약(1970년)에 이어 동·서독 기본조약(1972년) 체결은 동서 간의 접근 분위기 조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이러한 서독의 정책 변화에 대해 경쟁관계에 있던 프랑스·영국 역시 정책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유럽 내 현상유지 속의 변화에 대해 다자안보대화를 통해 이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결국 CSCE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2017년 12월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장관 회의. 이 기구는 독일 통일의 기초를 닦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출발했다. ⓒ EPA 연합


주변 국가 신뢰가 한반도 통일 열쇠

유럽의 경험이 동북아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무리라는 견해가 많다. 첫째, 현재 한반도는 미·중·러·일 등 세계 최강대국의 이해가 교차하고 있다. 둘째, 미·중·러·일 간에 존재하고 있는 상호 불신으로 인해 양자 간 안보협의체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와 함께 다자협력이 양자적 동맹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구심이 있다. 셋째, 역사적인 반목과 이해 상충, 오래 쌓여온 민족감정, 영토 문제, 북핵 문제와 한반도 문제,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관계 등 오랜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넷째,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존재다. 결국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은 ‘CSCE/OSCE’의 창조적 응용에 기초해야 한다.

현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펼치고 있는 평화 공세, 비핵화 및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수사와 의지가 과연 진심이며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의구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지금 도래한 현 상황에서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가시적인 무엇을 하나씩 엮어내는 일이다. 남북 양자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도 포함하는 국제적 차원에서도 실체를 가진 성과물을 하나씩 쌓는 일이다. 어느 순간 김정은 위원장이 되돌리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 평화와 공동 번영으로 걸어간 그 만큼 성과로 남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미·중이 함께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로, 그것이 남·북·미·중·러·일이 함께하는 동북아 안보협력체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노력이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지금의 정상회담 외교가 그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상유지로부터 출발한 유럽안보협력이 독일의 통일과 동구권의 변화를 보여주었듯, 먼 훗날 변화와 개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현상유지가 다자안보협력의 출발이지 목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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