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인 윤현경씨 가족 42년 만의 뜨거운 상봉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4 14:45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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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방한해 첫 만남 가져…한복 입고 전주 나들이 하기도

지난 10월14일 오후 3시1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한 가족이 모였다. 이들은 입국장을 주시하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3시50분쯤 가족으로 보이는 4명이 들어왔다. 그러자 누구 할 것 없이 일제히 뛰어나가 한 여성을 부둥켜안았다. 이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입국한 여성은 2살 때인 1976년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된 윤현경씨(45·미국명 사라 존스)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현경씨의 오빠인 윤태훈(50)·기태(48)씨 형제, 그리고 작은아버지 윤치경씨(60)다.

이들은 현경씨가 해외에 입양된 지 42년 만에 극적으로 만났다. 지난 5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지 약 5개월 만에 직접 만난 것이다. 현경씨는 너무 어린 나이에 해외에 입양됐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유일한 기록은 입양기관을 통해 받은 출생지역과 출생연도 등의 정보. 그리고 입양 직전 시설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다. 이들 가족의 만남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시사저널은 제1497호(2018년 7월3일자)에 윤현경씨가 가족을 찾은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미국과 한국의 윤현경씨 가족이 상봉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정락인 제공


아버지가 새긴 ‘십자가 문신’으로 찾아

윤현경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두 살 때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양부모는 현경씨와 함께 두 명의 여자 아이를 더 입양했다. 양부모는 입양한 딸들을 지극 정성으로 키웠다. 현경씨는 양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대학에서 엔지니어링과 법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변호사로 10년 정도 활동하다가 지금은 테크놀로지 관련 기업가로 성공했다. 그는 현지인 남성과 결혼해 아들 형제를 낳았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해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한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우선 입양기관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적극적인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어렵게 받은 기록에는 ‘1976년 5월18일 전주시청 앞에서 전주시 공무원이 발견해 비사벌 영아원에 맡겨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부모가 버린 것처럼 돼 있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적지 않았다.

양부모는 현경씨 팔에 있던 문신에 대해 얘기해 줬다. 입양 당시 왼쪽 팔에 커다란 십자가와 네 개의 점이 찍혀 있었는데, 성형외과에 가서 지웠다고 했다. 입양 기관에서 받은 사진을 자세히 보니 왼쪽 팔에 정말 문신이 있었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부모가 새겼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게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증표’가 될 것으로 믿었다. 지금은 희미한 자취만 남은 팔에 똑같이 펜으로 문신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입양기관에서 받은 어릴 적 사진과 팔에 그린 문신 사진을 첨부해 지난 3월 중앙입양원 홈페이지 ‘가족 찾기’에 등록했다. 혹시 몰라 ‘윤현경’과 ‘윤형경’ 이름으로 두 차례에 걸쳐 친부모를 찾는다고 남겼다. 전주시청에도 도움을 요청해 지역 언론에도 가족을 찾는 사연이 보도됐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곳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시민단체인 SNS시민동맹과 실종전문단체인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 등이 진행하는 ‘해외입양인 가족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현경씨의 사연이 SNS에 전파되면서 제보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큰오빠인 태훈씨의 친구인 김승현씨(50)였다. 어릴 적 친구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기억했다가 똑같은 문신의 사진을 보고 “내 친구의 동생”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기자는 작은아버지와 큰오빠를 통해 윤현경씨의 이름, 나이, 입양 당시 상황, 문신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가족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현경씨에게 전달했더니 ‘문신의 뜻’을 가장 궁금해했다. “아버지가 가족이 헤어질 것을 우려해 만남의 증표로 새긴 것”이라고 알려줬더니 “최고의 감동”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가족이 크게 화나는 일이 생겼다. 현경씨가 가족을 찾은 후인 지난 6월 지역의 한 방송사에서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가족을 찾는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문제는 현경씨를 부모가 버린 것처럼 보도해 가족들이 항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입양 기록에 잘못 기재된 것이 화근이었다. 김은희 미혼모협회 I’MOM 대표는 “해외에서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얻기 위해 종종 입양 기록이 다르게 기재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작은아버지 윤치경씨는 “현경이 입양될 때의 상황을 내가 잘 알고 있다. 버릴 것이었으면 왜 그 어린 것 팔에 문신을 새겼겠느냐”고 반문했다. 현경씨와 가족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그동안 못다 한 정을 나눴다. 윤치경씨는 “현경이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내가 아는 대로 자세히 알려줬더니 잘 이해했다”고 전했다. 윤현경씨는 서둘러 한국 방문 계획을 잡았다. 한국의 가족들에게 입국 날짜를 정해 알려줬다.
 

윤현경씨와 둘째 오빠 윤기태씨가 왼쪽 팔에 새겨진 문신을 맞대고 있다. ⓒ 정락인 제공


해외입양인들에게 남긴 희망의 메시지

윤현경씨는 10월14일 남편 매튜씨(44), 큰아들 데리우스군(14), 막내아들 벤저민군(12)과 함께 입국했다. 이들이 처음 찾은 곳은 상봉식이 예정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 위치한 전미찾모 사무실이다.

나주봉 회장은 “이곳은 수많은 실종자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가족 중에 실종자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고, 이곳을 통해 많은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록 장소는 협소하지만 이곳에서의 상봉식은 수많은 실종자 가족과 해외입양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의 가족들은 이곳에서 일일이 뜨거운 포옹을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태훈씨는 감회가 새로운지 동생을 끌어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현경아, 너무 그리웠고, 또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둘째 오빠 기태씨는 자신의 왼쪽 팔을 걷어 아버지가 새긴 문신을 보여줬다. 남매는 나란히 팔을 맞대고 ‘가족 증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현경씨 가족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전달했다. 작은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오늘은 최고 행복하고 기쁜 날”이라며 “오늘 현경이에게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나이 숫자만큼의 장미꽃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카에게 꽃다발을 주며 “현경아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제보자인 김승현씨도 전주에서 올라와 참석했다. 그는 “내가 꼭 친구의 동생을 찾아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진짜 찾게 돼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상봉식에는 실종자 부모인 송혜희양의 아버지 송길용씨, 이훈식군 어머니 염남이씨, 김하늘군 어머니 정혜경씨가 함께했다. 윤현경씨의 가족은 이들 실종자 가족에게 쌀을 전달했다. 이혜숙 전국군폭력희생자유가족협회 회장이 보내온 축하 쌀을 전달하며 “실종 아들을 꼭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송길용씨는 “내 딸을 찾은 것만큼 기쁘다”며 “내가 죽는 날까지 딸 찾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상봉식에서는 현경씨의 두 아들이 자신들이 받은 꽃다발을 실종자 부모에게 선물로 주는 반짝 이벤트도 있었다. 아이들은 서툰 한국말로 “잃어버린 아들을 꼭 찾으세요”라고 말했고, 실종 가족들이 따뜻하게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윤현경씨 아버지인 윤건중씨는 1982년쯤 아들 둘을 데리고 전주를 떠나 경기도 동두천시에 정착했다. 그는 둘째 아들과 함께 살며 기와 찍는 일을 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국 2010년 6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해 동두천에 모셨다. 이곳에는 할머니 산소도 있다.

윤현경씨 가족은 한국 방문 이틀째 동두천을 찾았다. 둘째 오빠 기태씨의 집을 방문해 아버지의 자취를 찾았다. 기태씨는 가족 앨범을 꺼내 와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의 사진을 살펴보던 현경씨는 아버지의 왼쪽 팔에 똑같은 ‘십자가 문신’이 있는 것을 보고는 오열했다. 아버지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납골당을 찾아 “42년 만에 현경이가 찾아왔다”며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해외입양인 가족 찾는 데 적극 돕겠다”

전주는 현경씨가 태어난 곳이다. 아무 기억도 없지만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자신이 태어난 곳, 아버지가 문신을 새겼다는 우물가, 또 오빠들과 함께 맡겨진 보육원 등. 하지만 40년이 넘는 세월만큼이나 그 옛날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큰 건물들이 들어서 있거나 아예 흔적조차 없었다.

작은아버지는 조카와 가족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전주의 전통 한복집을 찾아 한복을 선물했다. 전주를 방문하는 동안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현경이와 가족들에게 전주에서의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며 “가족의 정을 듬뿍 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주를 찾은 현경씨와 가족은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구경하며 웃음꽃을 피웠다고 한다. 또 덕진공원에서는 정자에 둘러앉아 가족끼리 깊은 대화의 시간도 나눴다.

현경씨의 양부모도 딸 가족의 상봉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양어머니인 마가렛 엘모어 댄시씨는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딸의 가족 상봉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신나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행복을 갖게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현경씨와 가족들의 한복 입은 사진을 보고는 “나는 이 사진이 너무 좋다. 손자들이 매우 행복해 보인다. 나는 그들이 한국에서의 첫 번째 여행에 대한 멋진 추억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현경씨는 한국 방문 일정을 끝내고 출국하기 전 “나는 내 가족을 만나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내 가족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자신처럼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미국에서 적극 노력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해외에서는 수많은 입양인들이 국내의 가족 찾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만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 정부가 해외입양인의 가족 찾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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