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정치의 중심에서 막말을 외치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6 11:34
  • 호수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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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막바지, 2019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대결이 국회에서 한창이다. 당연하게도 여당은 기존에 책정된 예산이 한 푼도 깎이지 않은 채 확정되기를 바라고, 야당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예산을 되도록 많이 삭감하기를 원한다. 이번 예산안을 두고 야당은 특히 일자리 창출과 남북협력을 위해 책정된 예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와 심사 과정이 잘 진행돼 국민들이 낸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고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것도 국가의 돈이 어떤 용도에 얼마나 적절하게 배정되었느냐이다. 또 내가 사는 지역에는 내년에 어떤 사업이 예정되어 있고, 그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만큼의 돈이 충분히 뒷받침될 것인가도 중요 관심사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예결위 회의가 열린 첫날부터 들려온 얘기는 그런 국민 희망을 무색하게 하고 말았다. 예산 문제는 쏙 빠지고 생뚱맞은 일본어가 뉴스의 중심에 올랐다. 이 낯 뜨거운 공방에는 여도 야도 따로 없다. 예결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이 “국회의원 품격과 품위를 말하면서 동료 의원의 질문에 왜 ‘야지’를 놓느냐”고 따지자 여당 의원이 나서서 “언제 야당 의원에게 ‘야지’를 놓은 적이 있느냐”고 항변했다. 예전에 국회 회의에서 ‘겐세이’라는 일본어를 사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야당 의원마저 빠지면 큰일 날세라 ‘야지’ 언쟁에 동참해 부끄러운 2연타 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이러면서 품격과 품위를 운운했다는 사실이 이 블랙코미디의 백미라면 백미라 할 수 있다. ‘야지’는 ‘야지우마’라는 일본어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야유·조롱·훼방을 뜻한다. 우리말에는 알맞은 용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국회에서 일본어뿐만 아니라 상스러운 표현들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니까짓게 뭔데” “나가서 한번 붙을까”라는 식의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온다. 이게 어느 길거리 난장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국회의원들도 인간인지라 감정이 끓어오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격한 표현이 튀어나올 수 있다. 하지만 국회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공장소 중의 공공장소다.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모범은 보여주지 못할망정 비속어나 막말을 대놓고 해도 좋은 장소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말에 의한 상처 못지않게 큰 손해는 국가지대사라 할 수 있는 예산안 심의가 그로 인해 자꾸 지체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법정 시한이 있는 예산안 심의는 말 그대로 시간 싸움이다. 총 470조5000억원에 이르는 ‘슈퍼 예산’을 다루는 만큼 단 한 시간도 허투루 흘릴 수 없다. 정치의 중심에서 막말을 외치면서 시간을 낭비하다 보면 잘 쓰여야 할 국가 예산까지 낭비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사저널이 이번에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주제 역시 ‘엉터리 국가 예산’ 문제다. 국회 또한 이 책임을 피해 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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