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해군 성폭행’ 무죄…“재판부가 가해자다” 거센 반발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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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2명 모두 원심 깨고 2심에서 무죄 판결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진 해군 장교 2명이 11월8일과 19일 고등군사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 원심을 깨고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앞선 무죄 판결에 이어 11월19일 재판부가 두 번째 가해자에게도 원심을 뒤집는 무죄 선고를 내리면서, 벌써부터 ‘성폭력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 판결’이라는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1월19일 2심 공판 방청에 참석한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80여명의 시민들은 이날 선고 결과에 크게 반발하며, 즉각 법원 앞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11월19일 해군 성폭행 사건 피고인 B소령에 대해 고등군사법원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자 공판에 방청한 시민들이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저널 구민주

 

 

2010년 해군 1함대에서 벌어진 해당 사건은 피해 여군 A대위(당시 중위)가 직속상관 B소령과 C대령(당시 중령)에게 연이어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2018.03.26 시사저널 '[단독]軍 첫 미투 폭로···‘성폭행 피해’ 女장교 인터뷰' 기사 참고). A대위는 B소령의 상습적인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 중절 수술까지 받게 됐고, 이 사실을 C대령에게 알렸으나 역시 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A대위는 이들에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혔지만, 오히려 “네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런다. 남자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며 성폭행을 지속적으로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A대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등 지속적으로 군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 7년여가 흐른 후인 2017년 6월에서야 A대위는 고민 끝에 여군 수사관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고 이내 수사가 시작됐다. B소령과 C대령은 같은 해 9월 해군 경찰에 의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고, 1심 재판부는 B소령에게 징역 10년 형, C대령에게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11월8일 서울 용산구 고등군사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에서 C대령은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성폭행 과정에서의 폭행 및 협박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지나 피해자의 기억이 과장·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선고 이튿날 A대위의 여자친구는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 명의 해군 간부를 처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고, 열흘 만에 1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여기에 동의했다. 

 

해군 성폭행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인원이 11월19일 오후 6시 기준 1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무죄 선고에 방청석 탄식과 야유 잇따라


C대령에 이어 11월19일 B소령의 2심 선고 일정이 공개된 직후,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공판 단체 방청 신청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80명 이상의 시민들이 ‘성소수자 여군인 점을 이용해 일어난 성폭력, 군대 내 성평등의 현주소’, ‘군대 성폭력 대책은 번드르르, 군대 성폭력 판결은 무죄?!’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방청석에 입장했다.

 

이날 오후 2시 시작된 공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범행 당일 구체적인 정황 등을 검토한 재판부의 설명과 최종 선고까지 약 30분 간 진행됐다. 재판부가 선고 이유를 설명하는 중간중간 방청석에선 탄식과 야유가 쏟아졌다. 특히 재판부가 피고인과 피해자 관계에 대해 “서로 사귀는 사이”라고 하거나,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그 분위기를 맞췄다는 점에서 강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방청석에선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후 재판부가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직후엔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퇴장하는 피고인을 향해 “뻔뻔하다”, “당신은 성폭행범이다”, “이런 식이면 어떤 피해자가 신고할 수 있겠느냐”고 외치며 들고 있던 피켓을 찢기도 했다.

 

 

A대위 “이젠 눈물도 안 난다”


시민들은 방청 후 즉각 군사법원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판결에 대해 규탄하는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어떻게 한번도 저항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선고하느냐”며 “군 내 성폭력 대책 백날 세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발언한 또 다른 시민 역시 “여성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거 처절하게 느꼈다”며 “재판부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어 ‘무죄판결 말이 되냐’, ‘재판부가 가해자냐’라고 다같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2심 선고가 난 직후 피해자 A대위는 시사저널과의 대화에서 “8일 C대령 무죄 판결 땐 한나절을 펑펑 울었는데 지금은 눈물도 안 난다”면서 “3심 준비를 잘 해야겠다. 마음이 비장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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