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가 된 가족드라마, 삶이 바뀌었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30 10:01
  • 호수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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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드라마 판도 바꿨다

과연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이런 질문이 가능한 건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때문이다. 한때 ‘가족이 최고’라는 가족주의 시대는 이제 1인 라이프가 트렌드가 된 시대를 맞아 조금씩 저물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제목에서 묻어나듯 그 ‘내편’이 바로 ‘가족’이라는 걸 말하는 드라마다. 병든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어쩌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 아빠와 그의 형제 같은 동생이 대신 거둬 기른 딸의 이야기. 이 두 인물에서 연상되는 고전적인 캐릭터를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아빠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고 딸은 신데렐라다. 업둥이로 들어온 이 신데렐라를 계모와 친딸은 구박하고, 급기야 양부가 사망하게 되자 이 불쌍한 신데렐라는 집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이 신데렐라가 재벌가의 왕자님과 결혼할 것 같은 낌새를 감지한 계모는 이를 통해 한몫 잡으려 한다. 그간 키워준 값을 치르고 딸을 데려가라는 것이다. 불쌍한 장발장 아빠는 어쩌다 그 재벌가 왕자님 댁의 기사가 되어 이 모든 상황들을 바라본다. 구박받고 자란 딸이 왕자님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겨우겨우 결혼 승낙을 받자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 KBS 제공


여전히 ‘하나뿐인 내편’은 가족일까

이 정도면 대충 이 드라마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제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내편 하나’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 ‘내편’이 다름 아닌 핏줄이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낸다. 우리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개발주의와 함께 최고의 가치관으로 주입받았던 ‘가족주의’가 이 드라마에는 뼛속까지 깊게 스며 있다. 이 드라마에도 빠지지 않듯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코드는 바로 가족주의 시대 최고의 흥행 방정식이 됐다. 결국 출생의 비밀이 말하는 건 ‘믿을 건 핏줄뿐’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데 과연 1인가구가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이 시대에 이런 가족주의가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됐던 소현경 작가의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사실상 저물고 있는 가족주의 시대의 새로운 풍경을 담아낸 바 있다. 이 드라마에도 출생의 비밀 코드가 등장했고 가족이 등장했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그것은 모두 가족이나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 같은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내 인생’이라는 관점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르러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기타 연주자의 꿈)을 하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담는 가치는 어느 쪽에 있을까. 여전히 ‘하나뿐인 내편’인 가족인가 아니면 ‘황금빛 내 인생’인가.

《황금빛 내 인생》이라는 제목에는 지난 시대의 가치와 우리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투영돼 있다. 즉 지난 시대의 가치는 ‘황금’으로 대변되는 성공과 신분상승에 더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그 많은 신데렐라와 왕자님들이 등장했고, 성공과 신분상승이 단번에 이뤄지는 코드로서 지상과제가 된 결혼을 반대하는 양가 부모들의 갈등이 드라마의 주된 구조로 반복됐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황금’이 대변하는 성공보다는 ‘내 인생’이 말해 주는 ‘행복’에 포인트를 맞춘다. 재벌가에 들어갔지만 전혀 행복해하지 않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결국 그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그는 그곳을 나와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소소해 보여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목공일을 하며 그는 만족할 만한 ‘내 인생’을 찾는다.

이것은 1990년대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동시에 꺼져버린 개발시대의 ‘성공신화’와 함께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개인적 행복’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말해 준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가족주의 시대의 가치는 ‘가족’을 마치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사용한 바 있다. 가부장제의 부당함도 가족 전체를 위한 일이라며 받아들이게 했고, 이런 가치는 사회에서도 고스란히 ‘가족경영’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됐다. 하지만 가족주의가 표방하는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한 감당은 그 신화가 거품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나면서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 됐다.

대신 고개를 든 건 합리적 개인주의의 가치다. 이제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됐다. 결국 공동체도 개인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고, 공동체의 행복이란 개개인이 행복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게 우리 시대 대중들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힐링, 욜로, 소확행, 워라밸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많은 라이프스타일의 질문은 한 가지다. “(개인으로서) 당신은 행복한가?”

드라마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그 성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당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야다. 그런 점에서 우리네 드라마의 시대적 변천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 KBS 제공



‘가족’에서 ‘개인’으로 라이프스타일 변화

197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던 신파극의 전통이 말해 주는 건 가부장적 가족 체계에 대한 소극적인 고통의 토로와 그 시스템에 대한 내면화였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가족드라마는 혈연공동체로서의 가족이 결혼 같은 걸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던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1991년 방영돼 큰 화제가 됐던 《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또한 가족드라마와 쌍두마차로 한 시대를 이끌어온 멜로드라마 역시 최근까지도 신데렐라나 캔디가 변주되는 신분상승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그 신분상승은 결국 결혼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들 멜로드라마는 가족드라마와 맞닿는 면이 있었다. 1978년에도 방영됐고 1999년에 또 리메이크됐던 《청춘의 덫》 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는 남자의 성공을 뒷바라지했지만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 전통을 이끌어온 김수현 작가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 가족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직업 등이 중요해진 장르드라마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 이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서 질문해 보자. 과연 여전히 가족드라마는 유효할까. 가족이 등장하는 것이 우리네 드라마의 중요한 특징인 건 그만큼 가족주의 시대의 잔상이 얼마나 드라마 전체에 미친 영향이 컸던가를 말해 준다. 그래서 쉬 가족이 사라지진 않을 듯싶지만 가족이 최고라거나, 아니면 결혼이 지상과제라는 식의 이야기는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는 시대적 유물이 돼 가고 있다. 그 비어가는 자리를 조금씩 채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개인의 위대한 가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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