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재채기하면 유럽이 감기 걸린다”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3 18:03
  • 호수 15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佛 ‘노란조끼’ 유럽 확산…벨기에·이탈리아 등 유사 시위 발생

12월10일 저녁 8시, 마크롱 대통령은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 앉았다. 11월 중순부터 4주간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노란조끼’ 시위의 수습책을 제시하기 위한 대국민담화였다. 이날 담화는 프랑스 국민 3명 중 1명꼴인 23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13분의 짧고 차분한 연설에 대해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 외신은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사태 초기부터 줄기차게 요구돼 온 ‘부유세 폐지’는 끝내 거부했지만, 중재안으로 이미 거론된 유류세 인상은 완전 철회했다. 또한 월 소득 2000유로 미만 정년퇴직자에게 부과했던 사회분담금을 폐지하고, 추가 노동에 대한 세금을 없애는 등 기존 입장에서 대폭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최저임금 100유로 인상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당근’을 제시했다는 점도 마크롱의 ‘통 큰 양보’로 평가됐다.

그럼에도 이번 대통령의 담화가 즉각적으로 사태를 진정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표 이튿날에도 이미 예고됐던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며 도로를 점거한 노란조끼 시위대들의 강경발언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담화로 적어도 시위에 대한 찬반양론이 명확히 형성된 것은 분명했다. 프랑스 보도채널 LCI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오피니언 웨이’에 의뢰해 대통령 담화 직후 4시간 동안 여론을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54%의 응답자가 “노란조끼 시위를 멈춰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프랑스 우파 일간 르피가로 사이트의 설문조사에서도 ‘대통령의 담화를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의견이 54%를 기록했다. 마크롱 담화 이전 노란조끼 시위대 쪽으로 기울었던 여론이 반으로 나뉜 것이다. 정치권도 양분됐다. 프랑스 극좌정당 ‘앵수미즈’와 극우정당 ‘국민연합(RN)’ 등 야권의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담화가 미흡하다며 노란조끼 시위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여당은 대통령을 엄호하며 즉각 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노란조끼 파동의 여파로 나타난 경제적 손실 규모는 심각하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제시한 수습책을 실현하는 데 드는 예상 액수만 최고 100억 유로(1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미 발생한 피해액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푸앙은 12월1일 과격시위로 하루 동안 파리 지역에서 입은 피해액만 300만~400만 유로(38억~51억원)라고 보도했다. 재경부 장관인 브뤼노 르메르는 12월3일 프랑스 라디오 RTL에 출연한 자리에서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결과, 4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12월9일(현지 시각) 프랑스 곳곳에서 ‘노란조끼’ 시위대 12만5000여 명이 참가해 네 번째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 AP 연합


마크롱 ‘통 큰 양보’, 효과는 미지수

당장 파리 중심가 상권은 한 달여 동안 이어진 이번 사태로 강한 직격탄을 맞았다. 연말 대목이 시작되는 11월 중순, 그것도 매주 토요일마다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가 이어져 상점들의 피해는 더욱 컸다. 프랑스 대형 백화점들의 매출은 이 기간 약 30% 감소했으며 마르세유와 리옹, 보르도 등 노란조끼의 기세가 이어진 지방도시들까지 같은 수준의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모든 촉각은 이번 파동이 프랑스 정부의 수습책으로 완전 진화될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유럽의 주요 외신은 대통령의 유화책이 나왔다는 점과 시기가 연말연시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시위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는 이유 등을 꼽으며 노란조끼 시위가 이미 정점을 찍고 점차 잦아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시위의 기세가 다소 꺾인다고 해도 시민들의 불만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만큼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68혁명 50주년인 올해 일어난 노란조끼 시위는 정부 퇴진운동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에서 68혁명의 연장선으로 비교되곤 한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프랑스 정치학자인 캐롤 롤랑은 “이번 움직임은 68혁명보다 ‘푸자드 운동’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다. 푸자드 운동은 1953년 프랑스 중부지방인 생 세레의 서점 주인이었던 푸자드가 과도한 세금에 반발해 시작한 ‘납세 거부 운동’이다. 당시 납세 거부 외침으로 시작한 시위는 점차 반(反)엘리트 사회 운동으로 확대됐다. 실제 이번 노란조끼 시위대의 분노에 마크롱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계층에 대한 반감도 크게 담겼다는 점에서 푸자드 운동과도 상당부분 오버랩된다. 당시 푸자드 운동이 상공인옹호조합(UDCA)으로 발전해 1956년 선거에서 하원 52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프랑스 정부·여당이 기억해야 할 역사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미 11월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이 여당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LREM)’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까진 노란조끼 시위대가 정치 세력화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정치권과의 거리두기가 이번 시위대의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들의 불만이 제대로 진화(鎭火)되지 않고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동할 경우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의 돌풍은 정점에 이를 수 있다.


노란조끼 시위는 反엘리트 운동

시위의 불씨는 이미 경제난에 허덕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로 옮겨 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저마다 노란조끼 시위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이미 11월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300여 명의 노란조끼 시위대가 등장했으며 네덜란드 일부 지역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나타난 바 있다. 프랑스 유명 영화배우 자비에 마티유는 노란조끼의 ‘유럽 연대’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며 여론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브렉시트 등 난제에 부딪혀 힘을 잃고 있는 유럽연합(EU)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시민들은 노란조끼 사진을 걸고 EU 탈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독일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이었던 메테르니히는 “파리가 재채기를 하면 유럽이 감기에 걸린다”고 말한 바 있다. 유류세 인상 반대라는 작은 태풍으로 시작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 운동’이라는 허리케인으로 발전한 이번 사태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노란조끼 시위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