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발롱도르, 여자축구라면 한국도 가능하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1 10:54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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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만에 신설된 여자 발롱도르 화제

‘발롱도르(Ballon d’Or·황금공)’는 축구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의 개인상이다. 1956년 프랑스의 축구잡지 ‘프랑스 풋볼’이 창설한 발롱도르는 의미 그대로 그해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황금공 모양의 트로피를 안긴다.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전신)과 월드컵에 최우수선수가 존재하지만, 수상자가 우승팀에서 나오는 만큼 개인의 실력과 업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이 필요하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1991년 ‘올해의 선수’ 상을 신설했지만 발롱도르의 역사와 권위를 따라가진 못했다. 2010년부터는 FIFA의 제안으로 양대 개인상이 FIFA 발롱도르로 합병됐으나, 6년 만에 분리됐다. 실제 선수들도 올해의 선수보다 발롱도르 수상 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2018년 발롱도르는 큰 화제를 낳았다.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루카 모드리치(레알마드리드)가 지난 10년간 발롱도르를 양분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 선수 자리에 올랐다.

또 다른 이슈도 있었다. 남자 선수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 체제에서 탈피해 62년 만에 ‘여자 발롱도르(Ballon d’Or Feminin)’를 신설했다. 2016년 FIFA가 ‘올해의 여자 선수’를 만든 데 이어 발롱도르도 여자 축구에 문호를 열었다. 세계 최고의 여자 선수가 누군인지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시상식이 마련된 것이다.

 

2018 여성 발롱도르 수상자 아다 헤게르베르그 선수 ⓒ AP 연합

 

여자 발롱도르 탄생, 젠더 이슈를 넘어서

초대 여자 발롱도르 수상자는 노르웨이 대표팀과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 여자팀에서 뛰는 공격수 아다 헤게르베르그였다. FIFA 올해의 여자 선수 상에서는 브라질의 마르타(올란도 프라이드), 팀 동료인 독일의 제니퍼 마로산(리옹)에 밀려 3위에 그쳤던 헤게르베르그는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136표를 받으며 황금공을 차지했다.

1995년생인 헤게르베르그는 지난 시즌 25경기에서 42골을 넣는 놀라운 득점력을 자랑했다. 소속팀인 리옹은 간판 공격수의 놀라운 활약 속에 2017~18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결승전에서 독일의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3대1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을 터트린 것도 헤게르베르그였다.

이미 지난 2016년 UEFA 올해의 여자 선수, 2017년 BBC 선정 올해의 여자 선수에 선정됐던 헤게르베르그는 여자 축구의 슈퍼스타임을 만방에 알렸다. 그는 “여자 발롱도르를 신설한 프랑스 풋볼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여자 축구가 내디딘 큰 발걸음”이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91년 탄생한 여자 월드컵을 중심으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대된 21세기 들어서도 꽤 긴 시간 거론되지 않던 여자 발롱도르가 갑자기 신설된 것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젠더 이슈와도 연관이 있다. 2017년 분 미투(MeToo)운동으로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 피해와 잘못된 사회적 관행과 사고를 바꿔 나가는 상황에서 발롱도르도 양성 평등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이미지는 시상식 당일 발생한 해프닝으로 더 크게 비화됐다. 시상식 진행자였던 유명 DJ 마르탱 솔베이그가 헤게르베르그에게 자세를 낮춰 엉덩이를 흔드는 섹시 댄스인 트워크(twerk)를 함께 추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거부 의사를 밝힌 헤게르베르그는 상황이 무안해지자 솔베이그와 가벼운 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섹시 댄스를 제안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격해지자 솔베이그는 자신의 SNS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가디언을 비롯한 주요 언론은 헤게르베르그가 수상 소감 마지막에 “세상의 모든 소녀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 너 자신을 믿어라”고 당당히 말한 것이 묘하게 대조됐다고 보도했다. 1999년 월드컵에서 미국이 정상에 오를 때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상의를 탈의해 스포츠브라를 노출한 브랜디 채스테인의 셀레브레이션이 우승보다 더 화제였던 여자 축구에 대한 시선과 자의식이 20년 사이 달라졌음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한국 남자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높았던 세계의 벽을 넘어섰다. 박지성을 필두로 한 유럽파 2세대가 인상적인 성공을 거뒀고, 현재 손흥민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강인, 정우영 등 유럽파 3세대는 유소년 단계에서 빅클럽의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차례로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가 팀의 일원으로서 성공하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이 높게 인정받는 것은 한계가 있다. 월드컵 4강에 다시 드는 것보다 발롱도르 최종 후보에 드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인식이다. 설기현과 박지성이 과거 발롱도르 1차 후보인 50인 명단에 든 적이 있지만, 한국에 발롱도르는 너무나 먼 세상의 이야기다.


지소연·이민아도 도전할 수 있을까

여자 선수라면 얘기가 다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위치에 가 있다. 현재 한국 여자 축구는 FIFA랭킹 14위로 53위의 남자 축구보다 훨씬 세계 정상에 근접했다. 2010년에는 U-20 월드컵 3위, U-17 월드컵 우승의 성과도 낸 바 있다. FIFA 주관 대회 우승은 그때가 유일하다.

간판선수들의 위상과 경쟁력도 더 우위다. ‘지메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여자 대표팀의 에이스 지소연은 현재 잉글랜드 여자 세미프로리그인 WSL의 첼시 우먼스에서 뛰고 있다. 지소연은 2014년 유럽 진출 후 올해의 선수에 두 차례 뽑혔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WSL이 미국 여자프로축구, 독일 여자 분데스리가, 프랑스 디비전1 여성부에는 밀려 있지만 유럽 무대에서 긴 시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긴 쉽지 않다.

지소연의 뒤를 이으며 여자 축구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는 이민아(아이낙 고베)도 국제 경쟁력을 지녔다는 평가다. 일본 여자 축구리그인 나데시코 디비전은 유럽과 미국 수준에 근접해 있다. FIFA랭킹 8위인 일본 여자 축구는 최근 두 차례 월드컵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민아가 지소연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 무대에 진출했던 조소현, 전가을 등 선배를 본받아 도전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실력으로는 가능성을 지녔다.

내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2019 FIFA 여자월드컵은 중요한 기회다. 4년 전 캐나다에서 열린 대회에서 16년 만에 월드컵에 나서 16강에 올랐던 한국은 사상 첫 2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당분간 나오기 힘든 황금세대의 마지막 월드컵인 이번 프랑스 대회에서 한국은 16강을 넘어 역대 최고 성적을 쓴다는 각오다. 공교롭게 한국은 우승 후보인 개최국 프랑스, 그리고 헤게르베르그가 버티는 노르웨이와 맞대결을 펼친다. 발롱도르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의 경우 그 대회에서 활약한 선수를 높이 보는 관례가 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내년 여자 발롱도르 경쟁에서 한국 선수의 이름을 볼 가능성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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