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있는 만큼 보여주고 아는 만큼 표현한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5 16:00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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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PMC: 더 벙커》의 주연배우 겸 제작자 하정우

최근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그는 걷기 예찬론자다. 요즘도 하루 평균 3만 보씩 걷는다. 걷는 이유는 간단하다. 걷다 보면 기도하고, 생각하고, 정리되고, 자신감도 생긴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하정우를 만났다. 오늘도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그는, 걷기에 적합한 스웨트 셔츠와 운동화 차림이었다. 조금 피곤해 보이기도 했지만, 일상의 하정우와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정우의 이번 작품은 블록버스터 액션 《PMC: 더 벙커》다. 전쟁도 비즈니스라 여기는 글로벌 군사기업 ‘PMC(Private Military Company)’를 다룬 영화로 마치 게임 화면을 보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블록버스터 오락 액션이다. PMC 내의 팀 ‘블랙리저드’의 캡틴 ‘에이헵(하정우 분)’과 동료들이 미국 CIA 의뢰로 DMZ 지하벙커에서 북한의 최고 권력자 킹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하정우는 이 영화의 제작자 겸 주연배우다. 《더 테러 라이브》(2013)를 함께 했던 하정우와 김병우 감독이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PMC: 더 벙커》는 두 사람이 지난 5년간 동고동락한 결과물인 셈이다.  

© CJ엔터테인먼트
© CJ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고 들었다.  

“지난 5년간 김병우 감독이 고통을 받으며 시나리오를 쓰는 걸 목격했다. 설정부터 시나리오까지 함께 논의하며 바꿔 나갔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영화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감격스러움이 밀려오는 이유다. 무조건 잘됐으면 좋겠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2013)가 끝난 뒤 당시 신인 감독이었던 김병우 감독에게 차기작을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이유가 있나.    

“김 감독만의 강점이 있다. 한 컷씩 촬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보고 어떻게 찍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질지 파악한 뒤 찍는다. 그런 방식은 처음이었다. 그 방식은 연기를 더 집중도 있게 할 수 있게 해 줬다. 게다가 (김 감독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촬영 이전의 준비 과정도 굉장히 촘촘하게 한다. 그때 신뢰를 느꼈고 차기작을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MC》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명찬 프로듀서와 함께 제작사 ‘퍼펙트스톰’도 차리게 됐다(‘퍼펙트스톰’은 이병헌, 공효진 주연의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이번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몸과 눈이 반응하는 영화다. 내가 맡은 ‘에이헵’은 너무 멋있지도 않고 너무 착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인물이다. 어찌 보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극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도덕적인 기준이 흔들리는데, 감독 역시 에이헵이 선인이냐, 악인이냐의 문제보다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고립된 상황에서 여러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에이헵이란 인물이 만들어졌다.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에이헵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영어 대사가 대부분이다. 

“최선을 다해 발버둥쳤다. 극 중 에이헵은 영주권이 없는 용병이다. 감정을 실으면서 자유자재로 영어를 핸들링하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야 했다. 《PMC》에는 많은 외국 배우들이 출연한다. 일정이 워낙 타이트해 내가 영어를 버벅거리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완벽하게 준비하면 외국 배우들도 따라오겠구나 싶었다.”

POV(1인칭 시점) 캠, 프리비즈, 드론 등 여러 촬영기법을 사용했다. 새로운 시도다. 

“소란스럽고 정신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편하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끝까지 타격감 있게 볼 수 있다.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보면서, 1~2분가량 대사 없이 음악만 나오는 걸 보고 놀랐다. 《미스터 션사인》도 영상미가 훌륭하지 않았나. 나 역시도 게임을 많이 하거나 VR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다. 이러한 화면과 형식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시나리오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람이 잘 맞으면 참여하고 싶어진다. 부족한 부분은 함께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사람이 안 맞으면 발전시키기 힘들다.”

‘열일’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휴식에 대한 갈증은 없나.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다만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못 하는 성격이다. 늘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연기라는 게 알아갈수록 어렵다. 걷기를 하면서 기도를 하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다. 그런 성격 때문에 외롭거나 지루할 틈이 없다. 3만 보를 걸으면 오후 10시에 졸음이 밀려온다. 그래서 12시 안에는 무조건 집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꽉 막힌 삶을 살지는 않는다. 촬영을 마치고 저녁식사 시간에 지인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것도 즐기고 끊겠다는 담배도 아직 즐겨 피우고 있다(웃음).”

안티가 없다. 왜 대중들은 하정우를 좋아할까. 

“있는 만큼 보여주고 아는 만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대중들이 내게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 부분일 것이다. 예전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아닌 것도 그럴싸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연기’ ‘설득력 있는 표현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가장 확실한 건, 아는 만큼 표현하는 것이다.”

최근 대작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변명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영화 산업이 변해 가고 있고, 어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트 보이즈》 《러브픽션》 《멋진 하루》 같은 소소한 작품을 통해 성장했다. 그 애정은 변함없다. 《싱글라이더》 제작에 참여한 것도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이선균이 ‘하정우와 친해지고 싶어 출연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참 솔직하다. 그래서 고맙다. 형을 《군도》 시사회 때 처음 봤다. 으레 하는 인사처럼 내게 좋은 말을 건네줬는데, 형을 직접 만나고 보니 그 말처럼 내게 힘이 됐던 말이 없었던 것 같다. 가깝게 지낸 지 1년이 좀 안 됐다. 알아가는 단계다. 최근엔 하와이에 가서 함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둘 다 승부욕이 강하고 농구를 좋아한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하와이에 자주 간다고 들었다. 

“단골집만 주야장천 가는 성격이다. 2012년 1월에 하와이에 처음 갔는데, 여기구나 싶었다. 특히 자연이 좋다. 바람이 좋고, 잠이 잘 오고, 사람들도 밝다. 어떤 곳은 휴양지 같지만 어떤 곳은 미국 다운타운 같은 느낌이다. 오지의 자연 끝자락의 느낌도 있다. 동네에 슬리퍼 신고 모자 안 쓰고 나갈 수 있어 너무 편하고, 바람 맞으면서 지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

“결혼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노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도 얘기한다. 마흔다섯 안에는 하고 싶다. 아이는 많았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카니발이나 12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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