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폭풍과 함께 돌아온 미스터 손샤인(SONshine)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6 16:14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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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골 감각 되찾은 손흥민…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기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맞은 네 번째 시즌은 쉽지 않았다.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약 400억원)를 기록하며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한 그는 첫 시즌에 발바닥 부상으로 고전하며 8골을 넣는 데 그쳤다. 그 뒤 두 시즌 동안은 21골과 18골을 각각 넣으며 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지난해 11월까지 3골밖에 넣지 못했다. 2015~16 시즌이 연상됐지만 부상이 없었기에 좀 더 심각하게 다가온 부진이었다. 

원인은 혹사로 인한 체력 저하였다. 월드컵을 소화하느라 여름에 충분히 쉬지 못한 손흥민은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즌 개막 후 토트넘을 떠나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사실상 지난 시즌부터 제대로 된 회복 기간을 갖지 못하며 컨디션이 떨어졌고, 경기력도 이전 같지 않았다. 

11월 A매치 기간에 꿀맛 같은 휴식이 왔다. 손흥민은 대표팀의 호주 원정에 참가하지 않고 런던에 남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의무차출 조항이 없는 아시안게임에 손흥민을 보내는 대가로 토트넘이 내건 조건이었다. 아시안컵 조별리그도 3차전인 중국전 직전 차출하기로 했다. 이 휴식이 손흥민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2주간 휴식과 컨디션 조절을 마치자 손흥민은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골잡이로 돌아왔다. 

2018년 12월26일(현지 시각) 토트넘 손흥민이 본머스와의 2018~19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
2018년 12월26일(현지 시각) 토트넘 손흥민이 본머스와의 2018~19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

“놀랍다, 믿을 수 없다”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12월26일 본머스와의 리그 19라운드에서 5대0으로 승리한 뒤 손흥민을 평가하며 찬사를 보냈다. 이날 손흥민은 멀티골을 터트렸다. 사흘 전 열린 에버턴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2골 1도움을 기록해 이번 시즌 첫 2경기 연속 멀티골을 쐈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활약을 앞세운 연승 행진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따돌리고 리그 2위로 올라섰다. 

12월의 손흥민은 경이로웠다. 프리미어리그는 12월말부터 1월 중순까지 휴식기를 갖는 유럽 내의 다른 리그들과 달리 오히려 더 많은 경기를 치른다. 정점은 ‘박싱데이’로 불리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의 일정이다. 이날을 기준으로 일주일 동안 3경기를 치른다. 토트넘은 리그 6경기, 챔피언스리그 1경기, 리그컵 1경기로 총 8경기를 치렀다. 

체력 소진이 극심할 만하지만 손흥민은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았다. 8경기에 모두 출전해 7골 3도움의 경이로운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2017년에도 그는 4경기 연속골을 포함해 7경기에서 5골을 터트렸지만 이번 시즌의 기세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새해 첫 경기인 카디프 원정에서도 1골 1도움을 올렸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이 중요도가 높은 경기에서 골을 넣는 강렬한 활약을 펼친 적은 있지만, 손흥민처럼 꾸준히 공격 포인트를 폭발시킨 경우는 없었다.  

영국 언론들의 칭찬 릴레이도 이어지는 중이다. 리버풀의 선두 질주를 이끈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12월 EPL 이달의 선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EPL 이달의 선수를 두 차례나 차지한 바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축구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는 손흥민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아스널의 레전드인 명수비수 마틴 키언은 “시즌 초반 토트넘의 부진은 손흥민의 부재 탓이었다. 그는 아직 환상적인 능력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실제로 손흥민의 출전 여부에 따라 토트넘의 승률은 20% 이상 오르내린다. 

아시안게임 참가로 인해 리그 3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손흥민의 결정력과 효율성은 최고 수준이다. 16경기에 나선 손흥민은 997분을 뛰며 8골을 넣었다. 124.5분당 1골을 터트렸는데 이는 아스널의 오바메양(117.6분당 1골), 맨유의 앙토니 마샬(120.9분당 1골) 다음으로 높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공격수라는 해리 케인과 살라보다 앞선다.  

지난해 12월5일 사우샘프턴과의 경기에서는 유럽 통산 100골 고지도 밟았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유럽 빅리그인 분데스리가(함부르크, 레버쿠젠), 프리미어리그(토트넘)에서만 뛰었다. 차범근 전 감독이 보유한 121골 기록을 깨는 건 시간문제다. 최근 차범근 전 감독은 인터뷰에서 “손흥민의 시대다. 후배의 활약을 보면 기쁘다”며 자신의 기록을 깨줄 것을 부탁했다. 

절정의 골 감각을 되찾은 손흥민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1월7일부터 아시안컵 조별리그 일정을 시작하는 벤투호는 에이스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다. 아시안게임 차출 대가로 중국전 하루 전날 합류하는 손흥민은 사실상 토너먼트부터 뛸 수 있다. 벤투 감독은 취임 후 주장 완장을 손흥민에게 맡겼다. 팀 내 위상이 특별함을 인정했다.

 

손흥민의 다음 미션은 아시아 정복

영국 현지에서는 손흥민의 아시안컵 참가가 여러모로 화제다. 불과 7개월 사이 세 차례나 장기 차출(월드컵, 아시안게임, 아시안컵)되는 상황이 낯설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손흥민의 공백은 토트넘에 직격탄이다. 보강이 필요하다”며 우려하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은 “다른 준비된 선수도 있다. 하지만 손흥민이 특별한 건 사실”이라며 그런 시선을 인정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아시안컵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륙별 대회인 아시안컵은 월드컵 다음 가는 비중의 대회지만 정작 한국은 1960년 이후 59년 동안 정상에 서지 못했다. 2011년과 2015년 대회에 참가했던 손흥민이지만 3위, 2위를 각각 기록했다. 특히 연장 접전 끝에 1대2로 패해 우승을 놓친 지난 대회 결승전 후 오열하던 손흥민의 모습이 국민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대표팀의 주장이 된 뒤 한층 성숙해진 손흥민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부터 아시안컵 우승을 외쳐왔다. 그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에야말로 아시아 정상에 서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는 중이다. 

프리미어리그 타 팀이 손흥민에게서 느끼던 공포는 이제 아시아의 각국 대표팀에 전이됐다. 일본, 호주, 이란에도 유수의 유럽파가 뛰고 있지만 손흥민은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 중에서도 최고 스타다. 한국과 함께 C조에 속한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팀들이 슈퍼스타의 활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언론은 “손흥민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이다”며 토트넘의 소식을 전하기 바쁘다. 일본 언론도 “손흥민의 골 행진이 멈추지 않는다”며 경외감을 보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치른 마지막 평가전에서 벤투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유효슈팅 1개 없이 0대0 무승부에 그쳤다. 한국 언론도 손흥민의 놀라운 골 감각을 반가워하며 합류를 고대한다. 

아시안게임에서 손흥민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황의조, 황희찬 등 공격진은 아시안컵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부를 존재다. 선배인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은 마지막 아시안컵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골에 대한 자신감을 채운 에이스는 59년을 기다린 숙원을 자신의 슈팅처럼 시원하게 뚫을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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