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행방불명 여고생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0 11:00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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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 가능성 높지만 생사 불투명
속 타는 부모들 “내 딸 찾도록 도와 달라” 호소

기해년 황금돼지띠의 새해가 밝았다. 너도나도 새해 덕담을 주고받으며 복 있는 한 해를 기원한다. 하지만 해가 바뀌는 것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실종자 가족들이다. 이들에게 ‘새해’는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작이다. 나무옹이처럼 가슴속에 세월의 응어리가 하나 더 생긴 탓에 긴 한숨만 내쉴 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매년 1만 명이 넘는 실종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장기 실종자’로 남아 있다. 이들이 살아 돌아오거나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 ‘영원한 실종’으로 남게 된다. 실종자의 부모는 자식이 실종된 날 시간이 멈춰버린다. 혹시 살아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찾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 실종자 중에는 단순 실종이 아니라 ‘범죄피해 가능성’이 높은 실종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여고생 3대 실종’으로 불리는 평택 송혜희양(당시 3학년), 천안 박수진양(1학년), 청주 이다현양(3학년)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여전히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생사가 불투명하다. 여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단서’를 찾는 것은 가족들의 몫이 됐다. 이들은 “내 딸을 찾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 회장은 “세 여고생의 실종은 가출이 아니다. 당시 가출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시신이 확인되지 않는 한 가족들은 찾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 여고생이 실종될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봤다. 
 

ⓒ 시사저널 박은숙·pixabay
ⓒ 시사저널 박은숙·pixabay

■1. 평택 송혜희양 실종

베일에 싸여 있는 의문의 남성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 살던 송혜희양(18)은 송탄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자매 중 막내인 송양은 전교 1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1999년 2월13일 겨울 찬 바람이 가시지 않은 날이었다. 송양은 이날 학원 수업이 끝나고 친구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다. 밤 10시쯤 학교 앞에서 집으로 오는 막차를 탔다. 얼마 후 마을 인근인 도일동 하리 입구에서 내린 송양은 집 쪽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과 야산뿐인 한적한 농로다. 희미한 가로등만 비추고 있어 밤에는 으스스하다. 

집에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딸이 귀가하지 않자 부모는 왠지 불안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다. 밤 11시쯤 부모는 막내딸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혜희 못 봤니?” “오늘 함께 버스를 타지 않았어?”라고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버스 타고 집에 갔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다음 날 송양의 부모는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부모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아버지 송길용씨는 경찰서에 찾아가 실종신고를 한 뒤 버스 회사로 갔다. 전날 밤 운행했던 운전기사를 수소문해 목격자를 찾았다. 한 운전기사가 실종 당일 송양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밤 10시15분쯤 도일동 하리 입구에서 내렸는데, 30대 초반의 남성이 송양을 따라 내렸다.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고 덧붙였다. 아쉽게도 얼굴이나 생김새는 기억하지 못했다. 버스기사의 말대로라면 송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한 남성이 따라 내렸다는 것이 된다. 이것이 송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송양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이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양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함께 내렸다는 남성은 인상착의 등을 통해 알아본 결과 동네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 송씨는 지금도 “경찰이 조금만 더 일찍 수사에 들어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송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따라 내린 30대 초반의 남성은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당시 버스정류장 주변에는 중장비학원과 합숙소가 있었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그가 중장비학원 수강생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송양이 범죄에 희생됐다면 그를 유력한 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송양의 아버지 송길용씨는 올해까지 20년째 1톤 트럭을 타고 전국을 다니며 딸을 찾고 있다. 그는 “이제 혜희를 찾는 것이 내 생활이 됐다. 지금도 틈나는 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이동하는 곳에 현수막을 걸고 있다”며 “혜희의 생사를 확인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2. 천안 박수진양 실종

유흥가 밀집지역에 버려진 소지품들

천안 복자여고 1학년이던 박수진양(16)은 내성적인 성격에 공부도 잘했다. 2004년 10월9일 박양은 토요일 특별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선 후 실종됐다.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밤늦은 시간에도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끊기자 가족들은 동네 주변부터 찾아 나섰다. 그러나 박양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모는 실종 다음 날인 10월10일 오전 천안경찰서 쌍용지구대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가출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같은 날 오전 10시30쯤 유흥가 밀집지역인 천안시 성정동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정아무개씨가 길에 버려진 복자여고 교복과 여성 속옷 등을 발견했다. 정씨는 물품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지켜보고 있다가 아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자 오후 1시3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이 물건들은 다름 아닌 실종된 박양이 갖고 있거나 착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본부’를 꾸려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박양의 소지품이 놓인 형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길에 버려진 소지품은 복자여고 교복 상의, 교복 조끼, 교복 치마, 블라우스, 러닝셔츠, 브래지어, 팬티, 양말, 구두, 머리핀, 안경, 휴대전화, 가방이었다. 

이 물품들은 골목길 한쪽과 맨홀 뚜껑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물품이 놓인 형태로 봐서는 마구 버린 것이 아니라 마치 전시하듯,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발견된 옷가지들은 물에 젖은 흔적이 있었다. 속옷은 세탁을 한 것처럼 많이 젖어 있었고, 개천의 수초가 묻어 있었다. 블라우스는 손으로 비틀어 짠 형태로 놓여 있었다. 교복 조끼는 양쪽 어깨 부위에 흙이 묻어 있었다. 

가방 뒷부분에도 흙이 묻어 있었고, 구두에서는 모래가 발견됐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인근 감나무 아래에는 감 5개가 마치 제사상 차림을 하듯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안경을 착용한 박양의 시력은 -0.3으로, 안경을 끼지 않고는 사물을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박양 스스로 이런 것들을 길가에 놓아뒀다고는 볼 수 없었다. 경찰은 박양의 소지품을 누가 놓았는지, 이 일대를 탐문했으나 목격자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경찰은 납치와 감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납치 사건의 경우 피해자 가족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하는 것이 수순인데, 박양 가족에게는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박양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채무나 원한관계도 조사했으나 범죄와 연관될 만한 것이 없었다. 또 박양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분석 등을 통해 통신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박양이 실종 전 마지막 통화한 사람은 엄마였다. 박양이 가입한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접속기록도 확인했으나 실종 이후 접속 기록은 없었다. 경찰은 신고 보상금까지 내걸었으나 결국 미제로 남고 말았다. 
 

ⓒ 이다현·송혜희·박수진양 가족 제공
ⓒ 이다현·송혜희·박수진양 가족 제공

■3. 청주 이다현양 실종

용의자 자살로 수사는 원점으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사는 이다현양(18)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2014년 1월29일 오후 12시10분쯤 이양은 친구를 만난다며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됐다. 하루가 지나도 귀가하지 않자 부모는 다음 날 오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수사전담팀을 꾸려 이양을 찾기 시작했다. 

이양은 실종 당일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청주의 한 고시텔에 머물던 한아무개씨와 만나기로 한 것이 확인됐다. 이 고시텔은 이양이 2013년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생활했던 곳이다. 

경찰은 한씨가 이양 실종과 깊게 관련됐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두 사람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시텔과 주변 폐쇄회로(CC)TV를 샅샅이 뒤졌다. 이양의 모습은 고시텔 인근 커피숍 앞 CCTV에 마지막으로 포착됐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시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양이 고시텔로 갔던 것이라면 한씨를 만나러 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양은 고시텔에 있으면서 고양이를 키웠고, 나가면서 고양이를 한씨에게 맡겼었다. 이양이 고시텔 쪽으로 가는 모습은 있었으나 나오는 모습은 없었다. 

경찰은 이양이 택시에 두고 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하지만 통화나 문자메시지 기록이 모두 삭제돼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이양이 삭제한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이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경찰이 택시 운행기록을 통해 이양의 동선을 파악했으나 행동반경과 일치하지 않았다. 누군가 경찰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휴대전화 기록을 삭제한 후 일부러 택시에 두고 내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경찰은 이양의 체크카드 사용 내역도 확인했다. 실종 이후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이양의 동선이 파악된 것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한씨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돌발변수가 생겼다. 한씨가 2월12일 오전 6시10분쯤 인천의 한 공사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유서는 없었다. 한씨의 휴대전화에는 이양 실종 당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용이 남아 있었다. 이로써 한씨와 이양 실종의 연관성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한씨가 자살하면서 이양 실종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그가 이양과 실제 만났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한씨의 죽음으로 수사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실종 5년째인 지금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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