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될 듯 말 듯, 죄가 되지 않는 것들
  • 남기엽 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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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밖의 무죄] 1회
운 좋게 죄가 된다는 법관이 더 많으면 죄가 되고, 아니면 죄가 안 돼

[연재에 앞서]

‘법대로 생각해야 하는 시민들’ vs ‘생각대로 법을 다루는 법조계’ 이 둘의 인식 차이는 생각 외로 큽니다. 사법불신, 판사성토로 점철된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게 어떻게 무죄인가?” “저게 왜 유죄인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간극을 당사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취재를 하다 보면 많은 시민들이 의외로 “이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라며 억울해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필자인 남기엽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의 상식과 형법, 그 경계에 있는 현실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어떠해야 한다’라기 보다 현실이 ‘어떠하다’는 것을 짚어 독자 여러분들에게 법률적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과 형법 그 경계에 있는 현실을 다루고자 한다.

어떠해야 한다기보다 어떠하다고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살다 보면 화날 때가 있다. 운전하는데 갑자기 끼어 들 때, 말없이 나를 치고 사과 없이 갈 때, 뭘 노려보냐며 취객이 쌍욕을 날릴 때 우리 모두 참아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참지 못할 땐, 행동한다. 이때에도 기준은 있다. 형사처벌 받지 않는 정도로만 (신사적으로는) 이의제기를, (솔직하게는) 화풀이를 하고 싶다.

뭐가 죄인지 대충은 안다. 죽이거나 신체를 더듬으면 안 된다. 남의 것을 훔쳐도 안 된다. 이건 다 안다. 그런데 길가다 떨어진 물건을 주웠다가 한 달 뒤 돌려주면 처벌받는지는 의외로 모른다. 차 안에서 운전자에게 온갖 욕을 해도 처벌 안 받을 수 있음도 의외로 모른다.

국가엔 형법(刑法)이 필요하다. 형법은 어떠한 행위가 범죄이고, 이를 어떻게 처벌할지 기술(記述)한다. 그런데 우린 형법을 읽어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죄가 안 된다고 믿는다. 근데 실상은 다르다. 당연히 죄가 될 것 같은 것도 막상 죄가 안 되고, 안 될 것 같은 것은 또 된다. 설령 되더라도 처벌이 약한 경우, 악질 범죄자 뉴스 댓글 창의 절반은 판사 욕, 절반은 법관 욕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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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아무개군은 등록금을 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할머니에게 받은 돈을 술값으로 흥청망청 다 썼기 때문이다. 간혹 통장에 장학금 혹은 할머니의 용돈이 입금되는 때가 있어 연명했지만 이번엔 심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체크카드 내역을 보니 모르는 이름으로 400만원이 입금되었다. 장학금인가? 할머니가 주신 돈인가? 들뜬 마음에 인출하여 등록금에 보탰다. 김군은 행복했다. 경찰에서 소환장이 올 때까지는. 이 돈은 부산에 사는 여대생 이아무개양이 부모님에게 송금할 돈을 착오로 김군에게 잘못 송금한 돈이란다. 아찔했다. 김군은 당장 부모에게 사정하여 400만원을 마련해 송금한 사람에게 되갚았다.

이윽고 출석. 경찰은 말했다. 당신은 횡령죄로 처벌받는다고. 김군은 펄쩍 뛰었다. 누군가 멋대로 입금해서 쓴 것뿐이고 내 통장에 입금하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다 갚았는데? 그러자 경찰은 말했다. 그래도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거라고.

김군은 경찰과는 말이 안 통한다 생각했는지 검사에게 호소했다. 검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왜 누가 보내준 돈인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썼냐는 것. 김군은 평소 그렇게 돈이 들어온 사정이 있었기에 써도 된다고 생각했고 설령 남의 돈이라 하더라도 갚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 믿을 건 법원뿐인데,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착오로 송금된 경우 김군과 이양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한다 했다. 김군 학교의 법과대학 교수님은 ‘이 사안은 사무처리의 위임조차 없으므로 위탁신임관계가 없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어려운 말로 김군 편에 섰지만 결국 김군은 횡령죄로 처벌받았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꿈인 김군에게 '횡령'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경력은 꽤나 뼈아플 것이다.

죄가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이는 1차적으로 입법자(국회)가 결정하고 2차적으로 해석자(사법부)가 결정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해석이 들어가니 주관이다. 주관적이니 일관될 리 없다. 대법관들끼리도 죄가 되네 안 되네 다툰다. 운 좋게 죄가 된다는 법관이 더 많으면 죄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죄가 안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상식과 형법 그 경계에 있는 현실을 다루고자 한다. 어떠해야 한다기보다 어떠하다고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당신은 죄를 정말 안 짓고 살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글을 보아야 한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비보호 좌회전 룰’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지, 적극 나서 바꿀지 정도는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남기엽 변호사
남기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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