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범은 가해자이자 피해자, 전명규 떠나야 변화 온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1 08: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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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 “대한체육회·교육부도 책임회피 안 돼”

“가해자다. 다만 그도 피해자일 수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지낸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35)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여 대표는 최근 젊은 빙상인을 대표해 ‘체육계 적폐청산’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인물이다. 반면 조 전 코치는 한국 쇼트트랙계의 파렴치한 지도자라는 오명을 썼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인 심석희 선수를 때려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최근에는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런 조 전 코치를 바라보는 여 대표의 심정은 복잡하다. 조 전 코치에게만 여론의 ‘돌팔매질’이 집중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전명규, 조재범 선에서 묻히길 바랄 것”

여 대표는 “조 전 코치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조 전 코치가 처벌받더라도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 살아남는다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추가 폭로할 용기조차 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빙상계의 ‘썩은 가지’가 조재범이라면 그를 길러낸 ‘썩은 뿌리’는 전명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 전 코치뿐 아니라 전 전 부회장이 쇼트트랙계에서 추방당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1월1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여 대표를 만나 한국 쇼트트랙계의 문제와 해결책 등에 대해 물었다.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보도를 보고 알았다. 당황스러웠다. 조 전 코치가 지도자가 돼서 폭력을 휘두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런 짓(성폭력)까지 할 줄은 몰랐다. 선수 시절 조 전 코치는 누구보다 맞는 걸 싫어했다. 그랬던 사람이….” 

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회가 1월14일 조재범 전 코치의 영구제명을 확정했는데.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조재범 하나 사라진다고 빙상계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누구보다 이(조재범) 선에서 문제가 묻히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 전 코치도 피해자일 수 있다.”

조 전 코치가 폭력을 가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어째서 그가 피해자란 말인가. 

“난 누구보다 조 전 코치와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나를 대표팀에서 내쫓으려 했다. 감쌀 이유가 없다. 조 전 코치는 분명 잘못했고, 그만큼의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조 전 코치의 그런 행동을 사전에 막지 않고 방관하고, 나중에는 조 전 코치에게 모든 잘못을 전부 덮어씌우려 했던 사람이 있다. 코치 한 명 물러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다. 그가 한국 쇼트트랙을 장악해 왔는데, 지금 폭로되고 있는 일들을 몰랐을까. 오히려 어떤 일들은 그가 숨기려 했다는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실제 조사 과정에서 조 전 코치에게 ‘네가 다 했다고 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증언도 있다. 결국 그 사람이 떠나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 조재범을 비롯해 한국 쇼트트랙을 망친 교수, 코치, 심판, 연맹 임원들 다수가 전명규의 지시를 받았으며, 지금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2018년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참석한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 연합뉴스
2018년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참석한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 연합뉴스

“대한체육회·교육부도 무거운 책임 져야”

젊은빙상인연대는 심석희 선수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더 있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추가 성폭력 가해자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는데.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피해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이래 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불안해한다. 전 전 부회장이 연맹을 떠났어도 아직 ‘그의 사람들’이 쇼트트랙판에 있다. 과거에도 성추문 사건이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나니 묻혀버렸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야만 바뀌겠지만, 용기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대한체육회가 체육계 가혹행위 및 (성)폭력 근절 실행대책을 발표했다. 

“언제는 대책이 없어서 문제가 발생했나. 이제 대중 앞에 허리만 굽힌다고 해결될 수준을 넘어섰다. 대책을 실행하고 감시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사유화하고 자기 사람들을 감싸면서 피해자가 계속 나온 것이다. 가해자들이 해당 분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실제 지금도 직무정지를 받았던 가해 코치나 임원들이 여전히 개인 레슨 등을 하며 이 바닥에 남아 있다. 사설업체라도 관련 분야라면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하는데, 이걸 막을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책임지고 내려와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관리와 운영 실태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정부에 추가적으로 요구할 사항은 없나.

“개인적으로 문체부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 이 일들이 터지고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체부는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포츠계에 일어난 일들이 비단 문체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일례로 심석희 선수는 조 전 코치가 한국체대 빙상장 지도자 라커룸 등에서도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럼 빙상장을 관리하는 대학 역시 감사 대상이 돼야 하는데, 교육부는 이에 대한 입장조차 내지 않고 있다. 문체부에서 자기네(교육부)로 일이 넘어오는 걸 바라지 않는 눈치다. 교육부도 이제 나서야 한다.”

앞으로 연대 차원의 활동계획이 있나.

“일단 피해자 실태 조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또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의원실과 연대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일정은 없다”

피해자들을 대리해 수뇌부와 다투는 일이 버겁지는 않나. 

“실제 젊은빙상인연대에 가입한 코치들과 일하지 않겠다는 빙상장이 적지 않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스포츠는 공정함이 기본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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