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브렉시트 진행 이후 反이민자 정서 더욱 노골화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2 08: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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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 非신사적인 영국
인종·성별·종교 등과 관련한 증오 범죄 급증

2018년 11월11일, 런던 번화가 중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옥스퍼드 서커스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인종차별적인 폭언과 함께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2018년 10월15일 브라이튼에선 귀가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발언과 함께 백인 3명에게 샴페인 병으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실제로 런던의 번화가를 다니다 보면 동양인에게 ‘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비속어)’라 외치는 영국인들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실제 폭행이 동반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최근 영국 내무성이 발표한 영국 및 웨일스 지역 증오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2017~18년 발생한 증오 범죄 수는 총 9만4098건으로 예년보다 17% 증가했다. 5년 전인 2012년 4만2255건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증오 범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인종 관련 증오 범죄로 2017~18년 기준 총 7만1251건(76%)이 집계돼 성별(12%), 종교(9%), 장애(8%)보다 앞섰다. 이 보고서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2017년 발발한 영국 내 테러 사건들 이후 증오 범죄 발생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내 반이민자 정서가 커지면서 인종·성별·종교 등과 관련한 증오 범죄(Hate Crime)가 급증하고 있다. ⓒ  AP 연합
영국 내 반이민자 정서가 커지면서 인종·성별·종교 등과 관련한 증오 범죄(Hate Crime)가 급증하고 있다. ⓒ AP 연합

증오 가득 찬 영국 이민자 역사

이민자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적대감과 분노, 과연 최근의 일일까. 영국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거부와 반감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엠파이어 윈드러시호를 타고 도착한 캐리비안 이민자들을 시작으로, 영국은 노동력 유입과 외화 유치를 위해 영국연방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을 대거 유입시킨다. 영국인들은 주거지와 일자리 상실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민자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됐다. 결국 1948년 리버풀 폭동을 시작으로 이민자들에 반대하는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195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이민자 수는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영국 국민들의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 또한 높아져만 갔다. 결국 1972년 영국연방 국가 국민들에 대한 영국 이주가 제한됐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여전히 이민자들에 대한 주거지 임대 및 일자리 제공에 차별을 두며 거부감과 불만을 표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에는 2만8000명의 우간다 난민이, 2000년도 들어선 12만5000명가량의 동유럽 국가 출신 난민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됐다. 2004년에는 폴란드, 슬로베니아, 헝가리를 포함한 8개 국가가 유럽연합(EU)의 새로운 회원국이 됐다. 동시에 EU 회원국 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져, 해당 국가 출신의 영국 이민자 유입 수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영국 국민들은 이민자들이 교육, 의료 등과 같은 영국의 복지혜택을 무상으로 누리고, 저임금을 내세워 영국인들의 취업난을 심화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에는 2007년 EU에 가입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민들에 대한 영국 이주 제한마저 해제돼, 이민자 수 급증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졌다. 

2014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유럽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더 이상 영국 복지 시스템에 무임승차하지 못하도록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주장하며 반(反)이민자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이와 같은 영국 내 반이민자 정서는 브렉시트로 이어졌고, 이후 동유럽 국가 출신을 포함한 다양한 국적과 종교를 지닌 영국 내 이민자 전반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증오 범죄 피해자 절반만 “경찰 대응 만족”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반감의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증오 범죄는 비교적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제 영국 경찰이 증오 범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집계하기 시작한 지도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2016년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실행될 ‘증오 범죄 행동강령 계획(Hate Crime Action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교육 및 사회 활동을 통한 인종, 종교, 성별 등과 관련한 증오 범죄 예방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증오 범죄 초기 대응 기관인 영국 경찰 또한 앞선 2014년 ‘증오 범죄 행동 지침(Hate Crime Operational Guidance)’을 발표했다. 이 지침서에 따르면, 증오 범죄는 “피해자 또는 어떠한 사람이 인지하기에 인종, 종교, 성별, 장애적 특성에 근간한 편견이나 적대감에서 기인한 범죄성 공격 모두”로 정의된다.

실제 이 지침서에 따르면, 경찰은 증오 범죄 신고를 받을 경우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를 안심시키고 즉각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증오 범죄에 대해서는 우선 대응을 원칙으로 삼고, 유선상으로 사건을 처리하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증오 범죄에 대한 영국 경찰의 대응과 처치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피해자의 51%만이 경찰의 대응과 관련해 ‘만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는 곧 피해자 2명 중 1명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가해자 검거 및 법적 조치가 취해진 증오 범죄 사건은 신고된 총 사건의 12%뿐이다.

실제 이번 옥스퍼드 서커스 한국인 유학생 폭행 사건 당시에도 영국 경찰의 늑장 대응이 논란을 빚었다. 폭행 후 신고한 지 1시간이 지나도 영국 경찰은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으며, 이후 어떠한 후속 조치나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져 비난을 샀다. 이러한 영국 경찰의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처사다.

앨리슨 손더스 영국 검찰총장은 “일반적으로 증오 범죄는 실제 발생한 범죄 사건 수에 비해 신고율이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경찰 또한 브렉시트와 관련해 인종, 종교 등과 관련 있는 증오 범죄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반감의 정서는 전혀 새롭거나 낯선 감정이 아니다. 다만 꾸준히 발생해 오던 증오 범죄들이 최근 더욱 잦게 조명되고 있으며, 실제 브렉시트라는 명목으로 증오 정서가 구체적인 범죄로 더 많이 표출되고 있어 다시금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오 범죄에 대한 영국 정부의 뒤늦은 노력들이 더는 사후약방문이 돼선 안 된다는 우려와 지적이 영국 사회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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