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한국 경제에 전환기적 고통의 시대 온다”
  • 송창섭 기자·정리 김민주 인턴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3 14: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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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길을 묻다④
[인터뷰] 이헌재 前 경제부총리 “文정부 경제정책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했다’”

[편집자 주]
혼돈의 시대다. 변화의 시대다. 시사저널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길을 묻다’ 특별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을 만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헤쳐 갈 지혜를 구하는 기획이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 시점에 따라 정해졌다. ① 조정래 작가 ② 송월주 스님 ③ 조순 전 부총리 ④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근 20년간 우리 경제사에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처럼 수식어가 화려한 인사도 드물 것이다. 좀 과장한다면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는 비유가 딱 맞을 것 같다. 여기서 방점은 ‘영웅’이 아니라 ‘난세’다. 이 전 부총리는 우리 정치·경제에 위기가 닥쳤을 때면 언제나 ‘구원투수’처럼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런 다음 선두에 서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이름 앞에 ‘승부사’ ‘저승사자’라는 비장한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래서다. 1998년 은행감독원장에 오른 그는 초대 금융감독원장(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2000년)으로 재직하며 환란(換亂)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을 바꿨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란 헌정 중단 위기 때는 경제부총리로 활약하며 시장 불안을 단숨에 해소했다. 

이 전 부총리가 관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적극적 시장주의자’로서 입지를 튼튼히 다져놓아서다. 이 전 부총리는 ‘관치’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이 때문에 관가에선 이 전 부총리를 가리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 절대 강요하지 않는 관료’라고 평가한다. 

최근 우리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월9일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고용동향’을 보면 2018년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치였다. 반대로 취업자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친 2009년 이후 가장 낮게 나왔다. 장기적인 전망도 불투명하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중국 업체들에 상당수 잠식된 상태다. 최후의 보루라 불리던 반도체마저 실적이 꺾이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조만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불황이 찾아올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어려울수록 몸부림치면 위기 극복 가능하다

상당수 경제 지표들이 IMF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런 와중에 우리 사회의 미래 자산인 출산율은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아직 발표되진 않았지만 2018년 합계 출산율은 1.0명 미만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부총리 역시 지금의 한국 경제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있다는 데 일정 부분 동의한다. 이런 이유로 ‘각자도생’을 올해의 화두로 제시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바라거나 기대하지 말고 각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알아서 생존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냉혹한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여기까지 들으면 비관이 앞선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가질 필요도 있다는 게 이 전 부총리의 설명이다. 이 전 부총리는 이를 ‘밝아오다’는 뜻의 한자 炫(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검을 현(玄)이 암중모색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옆에 쓴 불 화(火)는 ‘변화’를 뜻한다”면서 “엄혹한 환경에 빠질수록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치면 얼마든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1월4일 서울 필운동 이 전 부총리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1999년 1월4일 서울 여의도 청사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창립기념식에 참석, 현판식을 하고 있다. 전철환 한은 총재, 이규성 재경부 장관, 김종필 총리 등이 보인다(왼쪽부터). ⓒ 연합뉴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화두를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정하셨습니다. 추가로 화두를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불 화(火)변에 검을 현(玄)을 붙여 만든 단어가 ‘밝아올 현(炫)’이라는 글자예요. 여기서 말하는 ‘현’은 암중모색입니다. 그렇기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불 화(火)’죠. 엄혹한 환경에 직면할수록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아마 그건 각자도생의 형태로 움직일 겁니다. 우리 민족은 어려움에 빠졌을 때마다 그걸 극복하는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다들 우리나라가 곧 망할 거라고 했는데 어땠습니까. 살아났죠. 2008년 금융위기도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가지 않았나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시 말해 변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정부와 국민, 기업이 생각과 힘을 모을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너무 정부보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 자기가 위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각자도생인 겁니다.” 


“각 경제주체, 자신 강점으로 각자도생해야”

이 전 부총리는 현재 여시재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여시재는 국가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를 지향한다. 그는 촛불 정국이 한창이던 2017년 3월 전환기적 시대에 놓인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공저)를 펴냈다. △국가 △각종 정책 분야 △리더십 등을 분석한 이 책에서 이 전 부총리는 “이 시점에서 ‘국가의 일’에 대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미래 동력을 찾기는커녕 다음 세대에 크나큰 재앙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특정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이 전 부총리의 관심은 단순히 경제 한 분야에 집중돼 있지 않다. 그보다는 산업 흐름과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 등 좀 더 거시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금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보시나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지칭) 때하고는 상황이 다르죠. 우선 매크로(거시경제) 상황이 다른 게, 중국이라는 거대 경쟁자가 나왔잖아요. 그런데다 미·중 관계가 나빠지면서 중국 수요가 줄고 있어요. 앞으로 더 계속될 텐데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외국에서 축적된 기술만 들여왔을 뿐 우리 자체 기술은 별로 없는 게 현실입니다. 내부에 핵심 기술이나 인력은 뒷받침되지 못했는데 소위 디지털혁명, 4차 산업혁명이 나오면서 산업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이 모든 게 중첩돼 있는 전환기적 상황입니다. 중국 시장은 점점 나빠지고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시장은 불확실성이 확대돼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내부 파악이 안 돼 있거든요. 서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시장은 개방돼 있고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해외로 나아가니 국내 일자리는 자꾸 줄고 있어요. 일자리가 줄면 연쇄적으로 후방효과로 일어나는 서비스업의 소비나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전반적으로 경기가 다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지금은 구조적 문제와 경기 순환적 문제가 겹쳐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내부를 정밀하게 진단해 봐야 합니다. 각자가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느냐를 살펴봐야 해요. 기업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진단하고 판단하며 미래를 설계할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지 않고서는 전환기적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요.

“솔직히 국가가 나서서 할 일은 없어요. 기본적으로 국가의 역할은 대한민국 국민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망을 깔아주는 일뿐이죠. 국가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힘과 재원을 공급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기회 제공이라는 게 인허가 업무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규제완화를 통해, 좀 더 기회를 넓혀줘야 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 경제가 침체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이디어와 기술 등을 가진 사람이 기업을 만들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약받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대기업 집단에 의한 경제력 집중에 있어요.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할 일의 핵심은 시장원리에 따라 작동되는 기업지배구조를 정립하는 겁니다.” 

2005년 2월15일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국가정책도 민간처럼 R&D 해 보자”

규제를 완화하면 대기업만 혜택을 보는 게 아닐까요. 

“대기업들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라이선스(사업면허)를 제한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경유착이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놔버리면 누구든 시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대기업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불공정하게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경제적 힘이 없는 개인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놀이터를 넓혀주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당장 금융 라이선스를 제한하니까 우리나라에선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어요?” 

현실적으로 대기업이 재원도 많고 인적 능력도 풍부한데, 시장에서 과연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그럴수록 오히려 풀어줘야 판가름 납니다. 만약 대기업이 관료화돼 있으면 적응력이 떨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는 데 굉장히 몸이 무거울 거고, 그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들 거예요. 반대로 몸을 가볍게 변신할 수 있으면 좀 더 활발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 구도가 만들어져야 큰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대기업 중심 경제체제 대안을 중소기업, 벤처기업, 스타트업 육성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이런 정책 흐름이 맞는 걸까요. 

“대기업을 죽이기보다 중견기업이나 개인들을 키우는 데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경쟁력 있는 기업,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을 골라내야 합니다.”

대기업 오너들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이 문제를 두 가지로 봅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정부가 방조한 측면이 커요. 또 하나는 기업 내부가 관료화돼 있어 이걸 떠받치는 구조가 된 겁니다. 지금처럼 변화가 빨리 일어난다면 이런 시스템은 오래 못 갈 겁니다.”  

대기업 스스로도 자신들의 경쟁력이 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삼성을 예로 들자면, 앞으로 가전에서 크게 이익을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통신 장비, 스마트폰으로 이익을 내는 시대는 끝나가고요. 최근 반도체 시장도 도전받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삼성은 반도체든 통신장비든 미래에 생존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한때 가전시장을 지배하던 소니나 내쇼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LG하고 삼성이 차지하지 않았나요. 변신하면 경영권이나 조직은 유지되겠지만 반대로 변신이 어려우면 시장에서 힘을 잃어갈 겁니다.”

일각에선 중국 경제권에 우리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후장대형 우리 제조업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중후장대 제조 산업이 우리 고유 산업은 아닙니다. 일본에서 받아온 거죠. 그리고 일본은 미국에서, 미국은 영국에서 받아왔어요. 지금은 우리가 받아온 걸 내놓을 때가 된 겁니다. 축적된 기술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찾을 분야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장이 결정할 겁니다.”

평소 ‘작은 기득권’의 저항을 걱정하셨습니다. 노동계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현 정부가 고용조정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를 기존 틀에 놓고 논의하면 양쪽 모두와 마찰을 빚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해법을 찾기 위해 ‘정책 실험’이 필요하다고 봐요. 각종 실험실에서 화학적, 생물학적, 물리학적 실험을 하잖아요. 기업도 R&D(연구·개발)를 하고 경영 부문도 인사다 해서 실험해 보지 않습니까. 국가정책도 규제를 푸는 방법을 작은 곳에서부터 실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 인력도 흡수하고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하는 거죠. 그걸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해 보는 겁니다.”

하지만 노동계와의 관계 설정은 애매한 듯 보입니다. 

“필요하다면 치열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그보다 앞서 법치질서를 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걸 법률의 틀 안에서 판단하면 됩니다. 이 정부가 지난 정부를 비판한 게 법률 적용을 불공정하게 한 것 때문 아닌가요. 법률 적용을 엄격히 하면서 치열하게 논쟁해 지속 가능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퇴임 후 이헌재 전 부총리는 국가 어젠다를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3월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 연합뉴스
퇴임 후 이헌재 전 부총리는 국가 어젠다를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3월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 연합뉴스

“정부 역할은 ‘공정한 놀이터’ 만드는 일뿐”

현직에 있을 때 이 전 부총리는 시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여기에는 관료 출신이지만 민간기업 생활을 두루 경험한 경력도 일조했다. 1968년 재무부 사무관(행시 6회)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 전 부총리는 금융정책과장 시절부터 ‘8·3사채동결조치’ ‘부실기업정리’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1979년 율산그룹 사건 여파로 억울하게 공직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그 뒤로는 민간으로 건너가 ㈜대우 상무를 거쳐 한국신용평가 사장을 지냈다. 

아쉽게 끝마쳐서 그런지 이 전 부총리의 나랏일에 대한 열망은 민간에 와서도 꺾이지 않았다. 1997년 12월25일 성탄절에 이 전 부총리는 1974년 1차 오일쇼크 때 재무부 장관으로 모신 김용환 전 자민련 부총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으니 태스크포스팀(비대위)을 만들자.” 

20년 만에 이 전 부총리는 그렇게 화려하게 관가로 컴백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거시적으로 경제가 나빠지는 건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다만 몇 가지 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 있어 정교하지 못하다 보니 책임까지 다 뒤집어쓰게 된 거예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최저임금제, 52시간제 등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타이밍과 정교함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아마 촛불 현상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겁니다. 촛불이 준 국민적 염원, 변화에 대한 욕구, 이거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뿐 아니라 경제정책에도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건 용어로선 존재할 수 있지만 검증은 안 된 겁니다.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들고나올 가치가 있는지는 생각해 봤어야죠. 지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순환론적 모순에 빠진 것 같아요. 정부 정책이 ‘정밀’하고 ‘치밀’하지 못한 한마디로 ‘정치’하지 못한 겁니다.”  

사회보장망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증세(增稅)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신지요. 

“필요하면 해야죠. 사람들은 자기한테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증세를 반대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세금도 당당하게 올려야 합니다. 일본도 소비세 인상을 몇 년간 끌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에 제정해 그 이듬해부터 시행됐으니까 40년이 넘었어요. 40년간 10%였죠. 그런데 선진국인 독일 같은 데서는 15~18%가량 됩니다. 지금까지는 성장경제여서 세원이 늘어났기 때문에 10%를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성장속도가 정체됐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인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올해도 일자리 늘지 않고 경제성장 없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빅 플레이어들을 곁에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야 할까요.  

“지금은 전 세계가 초연결사회예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넛크래커 이론을 말하는데 솔직히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왔어요. 중국이라는 시장이 없을 때도 살았죠. 지금 위기는 중국이라는 시장이 만만한 시장이라고 여기고 변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시장이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죽기 살기로 경쟁해야 산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달라질 겁니다. 지금 세상은 반도체 칩 하나에 세계 각국의 기업이 다 연결돼 있습니다. 한·중 관계는 의존과 경쟁이 공존하는 사이입니다.” 

올해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당장 오늘(1월4일) 주가가 애플 때문에 부서졌잖아요(미국 뉴욕 시각 기준 1월3일 애플 주가는 하루 만에 10% 가까이 폭락했다). 6% 성장을 위해 중국은 몸부림쳐야 할 겁니다. 만약 중국 시장이 어려워지면 우리 수출도 타격을 입겠지요. 그리고 올해도 계속해서 일자리는 많이 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성장이 되더라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시대거든요. 최근 미국 증시가 부서진 건 이를 상징하는 겁니다. 투자자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시사저널 독자들에게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나름 적응해서 다 극복해 온 겁니다. 여기까지.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헬조선이라 하지만, 우리만큼 잘사는 나라, 우리만큼 사회제도가 정비된 나라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리에게는 세계가 전부 외면했던 시장을 2년 만에 정상적인 국가로 돌려놓은 저력이 있어요. 우리만큼 변화 적응력이 뛰어난 역동적인 국민이 없을 겁니다. 얼마 전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자신의 책에서 우리 민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더군요. 

‘끈질긴 생존본능, 승부사 기질,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경쟁을 빠르게 취득해 나갔다. 강한 집단의지가 있다. 리더십이 확립되면 집단 목표에 몰입한다. 어떻게 보면 쏠림현상이라고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쉽게 국민적 단합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번 위기는 전환기면서 현상학적으로 엄혹하긴 하지만 극복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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