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정치 1번지’ 목포, 극심한 정체성 혼란
  • 전남 목포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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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목포 스캔들’에 반(反)손혜원과 옹호 기류 혼재
‘작은 손혜원’ 부쩍 증가, 젠트리피케이션 겪은 주민도
孫, 내년 총선서 목포의 터줏대감 박지원과 ‘맞짱’ 뜰지 관심

“불꺼진 목포거리를 밝혀줬다.”

“까도까도 나오는 ‘양파손(孫)’이다.”

“내년 총선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손혜원 국회의원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전남 목포가 정초(正初)부터 부동산 문제로 시끄럽다. 손혜원 의원의 추천으로 지인들이 산 목포의 수십 채 부동산 때문이다. 투기 의혹이 불거진 손 의원이 20일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이후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최근 열흘 남짓만큼 목포의 심장은 시청이 있는 연산동이 아닌 목포시 대의동 근대역사문화거리였다. 그 중심은 단연 손 의원의 조카 등이 소유주로 알려진 대의동 1가 창성장과 손소영카페였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1월 23일 오후 목포 현장에서 의혹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1월 23일 오후 목포 현장에서 의혹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목포 만호동·유달동 일대 ‘근대역사문화 공간’은 2018년 8월 면(面) 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이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사업 대상지로 선정한 것이다. 이곳은 모두 602필지다. 손 의원은 가족, 조카, 보좌관들에게 이곳 부동산을 사게 했다. 손 의원 측이 소유한 12곳, 그리고 다른 외지인이 소유한 25곳이다. 손 의원 측이 샀다는 건물들과 근대문화역사공간까지 거리는 불과 6~7분 정도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손소영갤러리앤카페’나 ‘창성장’은 목포역에서 7~8분, 목포근대역사관에서 출발해도 5분밖에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손혜원 논란’에 창성장’과 조카 카페 ‘북적’

1월 23일 오후, 평소 저녁 6시만 되면 사람 구경하기 힘들고 빈집에 고양이들만 북적인다는 숙박업소 창성장 앞 골목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인적이 드물어 적막하기까지 했던 닷새 전에 비하면 개벽이었다. 손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낳은 기현상이다. 이날 논란의 중심이 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찾아온 내방객들은 손 의원의 조카 등이 매입한 ‘창성장’ 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거나 닫힌 창문 너머 내부를 들여다보며 저마다의 생각을 털어놨다. 강원도 원주에서 관광차 왔다는 김은중(68)씨는 “자신이 잘못이 없다면 과연 탈당했겠느냐”며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가려질 것이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부동산 업계 종사자라고 소개한 박아무개(65)씨는 “직접 와서 살펴보니 투자라기보다 투기라는 생각이 든다”며 “탈당이 아니라 의원직 사퇴를 해야 맞다”고 거들었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지역의 한 카페에손 의원을 지지하는 메모지가 붙어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지역의 한 카페에 22일 오후 손 의원을 지지하는 메모지가 붙어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창성장으로부터 3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손 의원의 또 다른 조카가 운영하는 ‘손소영갤러리앤카페’도 10여석의 자리가 종일 가득 찼다. 손 의원 탈당 기자회견 이후 카페 통유리창에는 손 의원을 응원하는 쪽지가 다수 붙어 있다. 쪽지에는 ‘너희가 아무리 투기라고 해도 우리한텐 은인이다’ ‘까놓고 투기라고 치자. 니네들은 투기라도 해줘 봤나? 눈길이라도 한번 줘 봤나요!’ ‘싸워서 꼭 이기길 바란다’는 등 손 의원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목포시 연산동에 사는 김미경(43)씨는 “손 의원 조카가 하는 카페를 한번 가볼까 해서 왔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 꺼진 동네였는데 누군가 관심을 갖고 동네가 살아나는 건 좋은 일이다.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 원도심 사람들은 대체로 손 의원을 두둔한다. 이곳 대의동 1가 주민들은 손 의원이 매입하기 전에는 쇠락하는 원도심의 상징 같던 곳이었다며 ‘손 의원이 은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창성장 인근에서 40년째 오토바이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성열(78)씨는 “골목을 돌아보라, 귀신이 나올지 쥐가 나올지 모른다. 암흑의 도시에 불을 밝힌 사람이 손혜원이다”며 “이 동네는 60년대 이후로 집값이 떨어지기만 했다. 손 의원이 아니면 누가 여기 와서 건물을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목포 근대문화역사공간에 대한 언론의 집중 조명 탓인지 현지 여론은 다소 손 의원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하지만 부동산업계 사람들은 전형적인 투기 수법으로 보고 있다. 땅과 건물 모두 2~3배쯤 올랐다고 한다. 부동산 중개사 채익희(61)씨는 대의동 일대를 ‘손혜원 타운’이라고 규정하고 “가만히 보유하고만 있어도 언젠가는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며 투기 쪽에 무게를 뒀다. 손 의원이 이곳을 홍보한 2017년 이후 건물 매입을 알아보는 ‘작은 손혜원’이 부쩍 늘어났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로 인해 이곳 원주민들은 밀려나기도 했다. 벌써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가운데 손 의원 측의 부동산 매입 규모가 과도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목포시 하당동에 거주하는 김영호(45)씨는 “굳이 투기로까지 보지는 않지만 손 의원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인과 측근이 20여채 넘게 집중적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모양새가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인근 만호동 횟집 골목에서 사는 최성민(52)씨 부부도 “우리도 이 지역에 살기 때문에 개발되면 좋지만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됐다”고 맞장구쳤다. 

 

나경원-손혜원, 하루 간격으로 목포방문 숨가쁜 ‘大戰’

1월 2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손혜원 랜드 게이트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한선교 의원 등이 전남 목포시 역사문화거리를 찾아 창성장 등 주변 건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1월 2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손혜원 랜드 게이트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한선교 의원 등이 전남 목포시 역사문화거리를 찾아 창성장 등 주변 건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창성장이 있는 대의동 골목은 수많은 취재진과 지역주민, 사복경찰들로 2차선 도로가 꽉 찰 정도로 붐볐다. ‘손혜원 목포 문화재 투기 의혹’을 직접 규명하겠다며 급히 목포를 찾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이윽고 오후 3시30분께 갑자기 서쪽 진입로인 구 초원호텔 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나 원내대표가 정용기 정책위의장, 한선교 손혜원랜드게이트 진상규명TF 위원장 등 당 지도부를 이끌고 ‘창성장’이 있는 근대역사문화거리로 들어섰다. 운집한 시민들은 박수로 환영했고 일부 시민은 “나경원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한쪽에서는 “평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다가 이런 일로만 목포를 찾는다”는 불만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잰걸음으로 창성장 앞에 도착한 나 원내대표는 손 의원을 정면으로 저격했다. 그는 “공직자로서의 처신을 생각한다”며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메지 말라고 하는데, 이 사건은 ‘오얏나무 밑에서 오얏나무를 다 가져가려고 한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했다. 

손 의원도 뒤질세라 다음날(23일) 기자간담회를 갖기 위해 목포로 움직였다. 손 의원이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창성장 골목을 지나가자 시민들은 손 의원 이름을 연호했고, 그는 환한 얼굴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간담회는 손 의원이 나전칠기박물관 설립을 위해 남편이 이사장인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 명의로 사들인 폐공장에서 열렸다. 1시간30분여 간담회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 100여명은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손 의원이 간담회장 밖으로 나오자 환호했다. 지역정가 일각에선 이날 손 의원 목포방문을 두고 대선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포역전 유세에 버금하는 열기가 느껴졌다는 관전평을 내놓기도 했다. 손 의원은 “제가 나이가 몇인데 또 (국회의원을) 하겠냐”며 탈당 기자회견에서 밝힌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재확인했다.

 

‘마음은 벌써 콩밭’ 박지원-손혜원, 내년 총선 빅매치 이뤄지나

일부에서는 손 의원의 거듭된 내년 총선 불출마 천명에도 불구하고 ‘박지원-손혜원 목포 대결’이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지역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고경석 민주평화당 전남도당 사무처장은 “그것은 말 그대로 호사가들이 지어낸 입방아에 불과하다”며 “목포를 핫바지로 취급하지 않은 이상, 손 의원의 목포출마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손 의원이 끝내 불출마를 고수한다하더라도 목포발 정치지형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가 목포를 떠나지 않는 한 손혜원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고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또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손 의원에게 목포 시민의 지지가 모아진다면 그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손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목포를) 떠나길 바라는 목포(지역 내) 음해 세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로 목포를 떠나지 않고 남아서 재단 일을 할 것”이라면서 불씨를 남겼다. 앞서 손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도 박 의원을 상대할 정치인이 눈에 띈다면 그분의 유세차를 함께 타겠다며 박지원 의원과의 ‘일전불사(一戰不辭)’ 의지를 분명히 했다.

지금 목포는 ‘폭풍전야’다. 손혜원 논란은 예선전이고,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말이 나온다. 마음은 벌써 콩밭(총선)에 가 있는 호남정치 1번지 목포는 숨가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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