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체육계 지도자들, 폭력 심각성 몰라”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7 10:00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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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허구연 MBC 해설위원 “공부하는 운동선수 더 늘어나야 한다”

2018년 KBO리그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는 횡령·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선수들의 일탈과 승부조작의 그림자도 사라지지 않았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금메달 획득은 영광보다 진한 상처만 남겼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자진 사퇴했고,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가대표) 전임 감독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고 ‘소신 발언’을 한 정운찬 KBO 총재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고 2019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은 일찌감치 스프링캠프지로 떠났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허구연 MBC 해설위원(68)은 지난 시즌 야구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38년을 해설위원으로 살고 있는 그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KBO리그 현안들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허 위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 이영미 제공
ⓒ 이영미 제공

2018년 KBO 총재 고문직을 맡아 활동했었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정운찬 총재의 행보를 지켜봤고 조언했을 것 같은데 정 총재의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나.

“KBO 총재 자리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매우 힘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전과 달리 지금은 총재의 독단적인 결정 자체가 어렵다. 많은 의사 결정과 구단의 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사회, 단장회의, 야구실행위원회 등을 거친 후 안건들이 동의를 얻고 추진되는 터라 정 총재로선 운신의 폭이 좁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정 총재 취임 이후 KBO에 대형 사건·사고들이 잇달아 터졌다. 정 총재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봤다. 아쉬운 면도 많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정 총재를 이해해 줘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 총재의 지난 1년은 공보다 과가 많았다. 그래서 2019년이 더 중요하다. 그 과를 공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선수 선발과 관련해 선동열 전 감독, 정운찬 총재가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상황이 안타깝게 비춰졌을 것 같다.

“자존심이 상했다. 난 아시안게임 때 현장에서 중계하며 국내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물론 선수들이 고생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국민들은 그 금메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자카르타에서 만난 정 총재에게 선수단과 함께 귀국하게 되면 공항 귀국장에서 팬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물론 정 총재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선동열 감독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선 감독은 누구한테 청탁을 받고 선수 선발을 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오지환 등 일부 선수의 대표팀 선발에 의구심이 있다면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발 배경을 설명하고 소통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다. 레전드로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야구인이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씁쓸히 물러나는 모습은 정말 속상했다.”

야구인들은 KBO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전에는 KBO가 프로야구를 리드하는 단체였지만 최근에는 그 역할이 상당히 축소됐다. KBO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처럼 구단들 사이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지금보다 힘이 더 생겨야 한다. 팬, 야구인, 구단 등을 아우르는 데 KBO의 힘과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KBO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해외 장기 연수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KBO 직원들이 전문성을 갖춘다면 구단들의 이해 충돌 사이에서 완급 조절을 하며 KBO 방향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 10개 구단 사장들 중 야구단 사장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이가 누가 있는지 살펴봐라. 모기업 임원들이 야구단 사장을 맡게 되면 2, 3년 있다 인사발령 나면서 또 다른 사장이 취임한다. 이런 반복된 상황들이 프로야구 행정을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악순환 속에서 누군가는 이들을 끌고 가야 하는데 KBO 직원들이 전문성을 갖춘다면 기업에서 내려온 사장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오히려 리드할 수 있다고 본다.”

선수 출신 단장이 KBO리그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실제 단장의 권한과 역할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이나 일본은 단장이 스카우트, 육성 등 모든 걸 총괄하는 반면 일부 KBO리그 단장들은 운영팀장에 가까운 업무만 맡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선수 출신이다 보니 행정, 마케팅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공부해야 한다. 배워야 한다. 선수 출신 단장이 현장과의 소통에는 유리하겠지만 구단의 전반적인 운영, 육성, 스카우트에도 남다른 식견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두산 베어스가 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두산은 돈을 많이 쓰는 구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장수 단장인 김태룡 단장, 이복근 스카우트 팀장의 조화가 선수단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NC 다이노스도 창단팀이었지만 야구기자 출신인 이태일 전 사장이 현장과 적극 소통하면서 빠르게 팀을 안정화시켰고 단기간에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이뤄냈다. 즉 야구를 잘 알고, 야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물이 야구단 운영에 참여했을 때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지금의 단장들은 야구단의 전체적인 발전을 논하기보다는 너무 선수들 전력 구성에 치우쳐 있다. 중심을 잘 잡고 조율해 나가야 한다. 장·단기 계획 중에서 장기간 마스터플랜 구성도 중요하다.”

체육계가 (성)폭력 사건으로 어수선하다. 

“앞으로 (성)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오랜 관행인 데다 지도자들이 선수 시절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고, 문제의 심각성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어야 법이 개정되고 관심을 받는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제발 즉흥적으로 하지 말고 길게 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엘리트 스포츠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국제대회 메달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은 학원 스포츠가 정상화돼야 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팀을 해체하고 축소시키는 근시안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교육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운동선수들이 수업을 받고 스포츠 활동을 하려면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기 때문이다. 수업 받고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훈련하고, 야간 운동을 위해 조명 시설도 구비돼 있어야 한다. 이런 인프라 없이 학교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정책은 단계별로 진행시켜야 한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돼야 한다고 선수들을 무조건 책상에 앉혀 두면 그들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허 위원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마이크 무시나를 예로 들었다. 통산 270승 153패, 평균자책점 3.68을 올린 무시나는 명문 스탠퍼드대학을 나온 수재로 1992년부터 2008년까지 1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린 꾸준함의 대명사다. 그는 스탠퍼드대 경제학부에서 줄곧 장학금을 받았고,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했다. 허 위원이 주목한 부분은 무시나의 명석함보다 그런 무시나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스탠퍼드대학의 환경이었다. 아침에 연습하고 낮에는 수업 듣고 저녁에 다시 훈련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됐기 때문에 무시나가 대학 졸업 후에도 최고의 투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16년 2월24일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제리 디포토 단장과 함께한 허구연 위원. ⓒ 연합뉴스
2016년 2월24일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제리 디포토 단장과 함께한 허구연 위원. ⓒ 연합뉴스

그동안 수차례 ‘운동선수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고교 야구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는 확률이 10%도 채 안 되는 현실에서 나머지 90% 학생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몫을 하려면 공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정확히 봤다. 2011년부터 고교야구가 주말리그로 운영되면서 평일에는 선수들이 오후까지 수업을 받고 있는데 조명 시설을 갖추지 못하는 고교 팀은 훈련을 할 수 없다. 그건 감독이, 학교 교장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지원해야 한다. 얼마 전에 성남고 2학년 때까지 엘리트 야구선수로 활약하다 야구로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해 수학능력시험과 사법고시를 패스해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를 거친 후 현재 판사로 일하는 이종훈 판사 인터뷰를 감명 깊게 읽었다. 학원 스포츠에서 이종훈 판사와 같은 스토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선수로서 대성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고교 시절에 판가름 난다. 되지도 않을 일에 ‘올인’ 하는 건 사회적인 손실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동열 전 감독이 물러나면서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기술위원회가 부활됐고 기술위원회를 통해 감독이 결정되는 걸로 알고 있다.

“구본능 총재 시절 기술위원회를 없앤 가장 큰 이유는 병역 면제 혜택을 놓고 구단의 입김이 기술위원들한테 영향을 미치면서 잡음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동열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 때 선수 선발을 감독, 코칭스태프에서 결정한 것이다. 사실 그때부터 걱정이 들었다. 감독, 코치들한테 선수 선발권을 맡길 경우 그 객관성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겠냐는 부분이다. 결국에는 오지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그로 인해 국정감사까지 실시되고. 이미 기술위원회는 부활됐고 김시진 위원장이 이끌고 있다. 대표팀 감독 후보들도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리더십, 도덕성, 청렴성에서 문제가 없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어려운 질문만 한 것 같은데 분위기를 바꿔보자. 허 위원은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38년을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야구와 동고동락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방송하면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인가. 

“방송 사고를 냈을 때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과 대만의 야구 예선전 중계를 마치고 헤드셋을 내린 후 캐스터랑 대화를 나눴는데 그 내용이 고스란히 생중계된 것이다. 당시 윤석민이 잘 던진 터라 내가 ‘윤석민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했냐’는 등 경기 관련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내가 그 자리에서 감독이나 선수 흉을 보거나 욕을 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우리 대화가 약 5분간 오디오로 방송됐다. 화면은 탁구 경기장이었고. 그날 한국이 대만을 9대8로 이겼지만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는 승부를 벌였고 윤석민이 안정적인 마운드 운영을 보이며 1점 차 승부를 지켜낸 터라 캐스터와 경기에 대해 주고받는 내용이 전달된 것이다. 자칫 엄청난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야구 해설을 하기 전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걸로 알고 있다. 야구 해설과 강의를 병행하다 결국에는 해설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MBC에 미친 척하고 전속 제안을 했다. 대학 강의를 포기하는 대신 MBC 전속 해설위원으로 계약을 맺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방송 출연료가 회당 3만5600원이었을 때다. 난 MBC에 전속 해설위원 계약을 제안하며 1년 연봉으로 2200만원을 요구했다. 박철순 등 특A급 선수가 2400만원, A급 선수가 2200만원을 받았다. 2200만원이면 강남의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방송국이 난리가 났다. 내가 요구한 금액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런 조건이 아니면 나도 안 하겠다고 버텼다. 결국 오랜 대화 끝에 연봉 1400만원에 계약을 맺었고, 부족한 부분은 해외출장과 자료 수집비 등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다. 서른한 살에 MBC와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 발음 때문에 많은 지적을 받기도 했다. 

“현대를 ‘핸대’로, 김현수를 ‘기멘수’로 발음하는데, 발음에 신경 쓰면 중계가 안 되더라. 발음 고치려다 화면을 놓치고 말도 못 한 채 경기를 지켜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한번은 PD한테 내 발음이 문제가 되면 그냥 나를 자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PD가 국민들이 모두 이해하는 발음이라 더 이상 문제 될 게 없다고 하더라. 처음에 해설을 시작할 때 교정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서 하려니까 잘 고쳐지지 않았다.”

허 위원이 꼽는 해설 잘하는 야구인이 누구일지 궁금하다. 

“지금은 LG 단장인 차명석씨가 해설을 잘했다. 해설은 박학다식해야 한다. 차 단장은 평소 독서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 점들이 해설에 잘 나타난다. 타고난 화술도 좋고. 차 단장이 떠난 지금, 각 방송사별로 눈에 띄는 해설위원들로는 MBC스포츠플러스에서는 정민철·박재홍, SBS에서는 이종열·최원호, KBSN에서는 장성호 위원 등이 눈에 띈다. 특히 이종열·최원호는 야구를 깊게 파고드는 편이다.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고. 선수 시절의 경험만 갖고 와서 말로 하는 해설은 시간이 지나면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난 지금도 서너 시간 하는 야구 중계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야구장으로 향한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선 인정받기 어려운 곳이 방송 해설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영원한 라이벌’로 불렸던 고 하일성 위원의 부재 후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후배들과 경쟁하는 삶의 연속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가 후배들과의 경쟁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허 위원의 한마디.

“실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공부한다. 후배들도 나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공부하길 바란다.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는 게 세상의 진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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