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그들의 이별 방법
  •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0 10:17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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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아라시의 2년 시한부 활동 선언과 2년 암 투병한 다카하시씨 부인이 남긴 메모들

지난 1월27일, 일본 내에는 다른 뉴스를 쓰나미가 거둬 가듯 말끔하게 쓸어버린 소식이 있었습니다. 일본 아이돌그룹 아라시(嵐)가 2020년 12월31일 이후 활동 중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많은 팬이 있었기에 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NHK 톱뉴스가 이들의 시한부 활동 발표에 관한 것이었으니 얼마나 큰일로 간주하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다음 날부터 다양한 언론 매체가 여러 음색으로 이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향후 2년만 5명이 함께 활동하는데 그 2년은 그동안 사랑해 준 팬을 위해 보답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뿜어냈습니다. 

지금까지도 기한을 정해 놓고 활동하다 그룹을 해체하거나 개인의 연예 활동이 막을 내린 경우가 드물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라시는 극구 ‘해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함께 활동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기면서 ‘활동 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했지요.  이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뉴스가 나왔으니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일본 사회의 매듭, 끝맺음, 이별에 관해 두 차례에 걸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월27일 기자회견을 통해 2년 후 활동 중지를 선언한 일본 아이돌그룹 아라시
1월27일 기자회견을 통해 2년 후 활동 중지를 선언한 일본 아이돌그룹 아라시

팬들 이해할 수 있도록 2년 시간 들여 마무리

아라시의 시한부 활동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 날, 팬클럽 회원이 10만 명이나 늘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들의 콘서트나 이벤트 티켓을 사려면 먼저 팬클럽 회원이어야 합니다.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내에 그들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지금까지 가입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가입하는 현상을 빚었습니다. 2월 현재 등록된 팬은 270만 명이 넘습니다. 팬들의 연령층은 10대부터 80대까지 아주 넓습니다. 

멤버 5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하고 싶었던 이벤트를 해 나가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아라시가 없는 세상은 상상을 못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너무 요란하게 좋아해서 무심하게 있었는데 2년 후엔 활동을 안 한다고 하니 콘서트에 꼭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회원 가입을 했습니다.” 

시한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동시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라시의 활동 중단에 대한 사례는 그러한 점을 잘 보여줍니다. “4명이어도 6명이어도 아라시가 아닙니다. 이 5명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활동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전한 이 말은 온전한 아라시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렇게 일단 막을 내리겠다는 결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그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태도에 팬들도 함께 부응했습니다.

팬이었던 사람은 더 깊이 아라시를 찾고 탐닉할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음원 관련 매장에 그들의 특별 부스가 안 생긴 곳이 없을 정도였고, 그들 관련 기념품은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까지 길 막고 그들의 행적을 알리기라도 할 기세로 미디어는 지금까지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한결같이 아이돌로서 재능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그룹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2020년 12월말까지 이 기세는 꺾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라시그룹과 팬들의 이별을 향한 행진이 시작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라시 활동 중단을 둘러싼 일련의 상호 반응을 보면서 제가 관찰한 두 가지의 일단락(매듭, 맺음, 마무리, 이별)을 떠올렸습니다. 이번 호에는 그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벌써 25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저는 교토(京都)에서 재일교포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살았던 일본인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민지였던 만주나 한국에 살던 사람들 중 종전 후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을 히키아게샤(引揚者·귀환자)라고 합니다. 1945년 8월부터 1950년대까지 귀환자들은 교토 지역의 마이즈루(舞鶴)항을 통해 들어왔다고 합니다. 조사협조자로 소개받은 사람은 마이즈루시 교육위원회장이었던 다카하시 다쿠로(高橋拓郎·당시 68세)씨였습니다. 제가 한국인 유학생이라고 별날 정도로 환영해 줬습니다. 알고 보니 부인이 마산에서 살다 돌아온 히키아게샤였습니다. 

“그녀는 일본 사람 같지 않았어요. 걸음걸이도 위풍당당하게 보였고 아침이면 창문을 열어젖혔지요. 습도가 높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걸 마치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말이에요. 그리고 아주 가끔 다른 가족 모르게 김치를 담가 먹곤 했습니다.” 


병석에 누워 혼자 남을 남편 위해 수많은 메모 남겨

부인은 암으로 13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인 유학생이 지방 소도시를 찾는 예는 드물었기에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게 처음이라며 반가워했습니다. 다카하시씨는 부인 친구분들을 소개해 주시면서 제 필드워크를 도와주셨습니다. 주로 여학교 동창들을 연락해 줬기에 교사나 간호사로 오래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연령층은 당시 60대 후반에서 80대까지였습니다. 

“조선이나 만주에서 귀향한 우리들은 고생을 많이 했어요. 결혼 차별이 있었거든요. 만주 딸은 4할 처녀, 조선 딸은 6할 처녀라며 업신여겼어요. 집안일 해 주는 사람을 두고 산 사람들이 많아 가사를 잘 못한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면서 결혼기피 현상이 있었어요.” 

그런 사회적 인식 속에서 결혼해 남편이나 시댁의 차별을 받았다며 숨겨놓은 속내를 털어놓는 분도 계셨습니다. 다카하시씨가 들려주는 부인 이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귀환자 여성들의 일면이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분골(分骨·화장한 뼈를 나눠 납골하는 장례문화)이라도 해서 마산에 뿌려주고 싶은 정도입니다. 태어난 고향이라고 마산에 가고 싶어 했거든요.” 

사별한 지 13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애틋함이 묻어나는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에 대한 친절함의 이유도 모두 부인 덕이었음을 느끼곤 했지요. 50대 중반도 되지 않아 혼자됐는데 재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한 후에는 교육위원회에서 보직을 맡고 있었기에 주변에서 재혼을 주선해 주는 사람도 많이 있었을 법도 한데 말입니다. 사무실을 겸한 자택에 자료를 복사하러 들렀을 때 13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이 되는 단서를 봤습니다.

‘여름용 윗옷(다림질 안 해도 되는 옷)’, ‘속옷(1년에 한 번씩 반은 새로 사서 교체하세요)’, ‘이불포(손님이 오시면 사용하고 세탁소에 맡기면 다림질까지 해 줍니다. 그렇게 보관하세요)’, ‘설날에 사용하는 그릇들(설날 이틀 전에 꺼내 진열하고 사용 후에는 완전히 물기를 제거하고 이틀 정도 말린 후에 이 통에 넣어 보관하세요)’.

수많은 수납 상자나 통에 정갈한 손글씨로 메시지가 담긴 메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방은 물론 부엌과 창고(광)까지 그것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쓰여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즐겨 먹고 좋아했다는 음식의 레시피 노트까지 냉장고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2년 동안 그녀가 혼자 남을 나를 위해 이렇게 해 줬어요. 그리고 저세상으로 간 뒤로 난 그녀가 남긴 이 ‘지시’를 이정표 삼아 13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예요.” 

영화나 소설 이상으로 인상적인 기억으로 각인됐습니다. 아이돌그룹 아라시의 시한부 활동 발표를 듣고 떠올린 두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다카하시씨 집에서 본 메모지였습니다. 다카하시씨는 부인이 암 선고를 받자마자 학교를 휴직하고 간병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마산을 그리워했던 것, 걸음걸이가 달랐던 것, 습기가 있는 아침에 창문을 열어젖히는 것, 김치를 몰래 담가 먹던 것, 이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던 건 그녀가 병석에 누워 혼자 남을 남편을 위해 수많은 메모를 쓰던 그 2년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아라시의 시한부 활동은 200만 명이 넘는 팬들이 그들을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헤어짐을 아쉬움만으로 채우지 않도록 그들이 팬들에게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호에서는 일본인의 공동체 해체(이별)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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