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디어 담론의 역설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3 10:55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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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문제 다룬 《SKY캐슬》, 오히려 사교육 필요성 불안감 가중시켜

‘놀 테면 놀고 잘 테면 자라! 서울대는 너를 버려도 서울역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級訓)이라 한다. ‘하늘(SKY)을 날자!’는 급훈도 있다는데, 하늘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영어 표기의 첫 글자를 모은 것이자, 대학 서열의 최상위를 상징함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되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탑시다’란 급훈 또한 인상적이다.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 주변엔 대학과 연결된 역이 즐비하니 말이다. 예전 ‘성실, 정숙, 책임’ ‘독립심, 모험심, 자긍심’ 등의 급훈을 바라보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세대로선 변화된 급훈 앞에서 세태의 눈부신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SKY캐슬》의 파장이 적지 않은 듯하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를 주제로 가족 이기주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 탓에 시청자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한 동질감, 상류사회의 속물성을 훔쳐보는 쾌감 등을 느끼며 드라마를 향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으리란 평가가 이어졌다.

ⓒ  jtbc
ⓒ jtbc

드라마의 본래 취지인즉, 명문대 입학에 목숨 거는 부모의 욕망과 집착, 그런 부모의 불안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사교육 시장의 불합리성과 비상식성, 나아가 이 모든 광기의 근원에 자리한 한국식 학벌주의의 폐해를 고발하고 이에 경종을 울리고자 함에 있었을 것이다. 한데 주목할 만한 사실인즉, 드라마 시청 소감 중 “우리도 내신성적 관리를 위한 코디를 물색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들딸만 입시 광풍(狂風)에서 소외되고 있는 건 아닐까?” “입시는 학생의 실력이 아니라 부모의 관리와 학원의 전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등등 불안과 불만이 가감 없이 표출되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지금도 생각나는 해프닝이 있다.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한’ 엄마들과 함께 ‘엄마의 북 클럽’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던 적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 끝났으니 5년여 동안 만났던 셈이다. 당시 엄마들과 함께 읽었던 책 목록 중엔 강준만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서울대의 나라》는 서울대 출신이 정부 고위직에서부터 법조계는 물론이요 언론계와 기업 등을 장악하면서 배타적 학벌주의에 기반한 부정적 폐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한데 정작 엄마 독자들의 반응은 “우리 아이도 필히 서울대에 보내야겠다”는 것으로 모아져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해 보면 드라마 《SKY캐슬》이 그린 세계는 극히 소수의 극단적 스토리임이 분명하다. 물론 개연성 있는 스토리에 극적 장치를 위해 과장과 부풀리기가 더해졌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부모의 관리와 전략에 힘입어 입시에 성공한 사례 못지않게 실패한 사례 또한 넘쳐난다. 사교육 광풍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으면서 소신껏 자녀를 교육하고 있는 부모들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자녀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 생각해 학원비에 투자하는 대신 방학마다 자녀들과 세계 일주를 하는 부모도 만나보았고, 공부 체질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된 아들딸을 위해 일찌감치 자녀의 적성에 맞는 기술을 찾기 위해 다양한 현장을 찾아 나서는 부모들 이야기도 들었다. 다만 미디어는 재미도 없고 자극도 적은 밋밋한 이야기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속물스러운 속성을 인정한다 해도 미디어의 메시지 속엔 사회를 정화하고 성숙시켜 가기 위한 노력도 필히 포함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교육에 관한 한은 미디어가 부모의 불안감을 부추기기보다 부모의 소신을 인정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길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 바람만은 아니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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