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금괴가 일본 부흥에 쓰였다고? ‘M자금’에 물어봐
  •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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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24화 - ‘M자금’을 아십니까?
2차 세계대전 후 도쿄의 연합군총사령부가 일본은행에서 압수한 금괴와 보석을 총칭

지난해 여름 150조 원 보물선 소동을 일으킨 '돈스코이호' 사기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투자금 약 90억 원을 거둬들인 이 인양업체는 이름만 바꿔 투자자를 계속 모집해 왔다고 한다. 여기에다 지난해 9월 충남 공주에서 일제 금괴를 발굴 작업하던 인부가 목숨을 잃는가 하면, 직원 갑질과 폭행 등 엽기적 행각으로 구속된 '음란물 대부'란 사람도 일제 금괴를 찾는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직원들에게 금속 탐지기까지 들려 전국을 누비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제 보물 캐기는 한반도 바다, 육지 가릴 것 없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안타깝게도 보물 소동이 인질극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 부산 문현동의 지하시설에 일본군 금괴 수백 톤이 묻혀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2015년 연말,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의 부산 사무실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흉기를 든 범인이 직원을 제압하고 "문현동 금괴사건 도굴범 문재인을 구속하라"는 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내걸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괴 발굴을 방해한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일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 또한 폭로 기자회견과 재심 청구 소송이 벌어지는 등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대박인가, 쪽박인가?…증거 없이 실화처럼 부풀려진 '일제 보물 찾기' 열풍

해외에서도 지난해 미얀마·태국·필리핀에서 일제 금괴와 관련된 보도가 잇따랐다. 먼저 ‘미얀마로드 뉴스’는 5월 24일 "북부 몬주의 민브라산에 있는 옛 일본 군부대 터에서 금괴가 발견되어 트럭에 싣고 갔다"고 보도했다. 양곤의 '로열 이글' 개발회사가 몬주 지방정부와 함께 금괴를 찾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수량 등 정보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 다음날인 5월 25일에는 미얀마와 접경 지역인 태국 매소트 지역에서 국영 고무농장을 개간하던 중에 일본군 금괴 수 톤을 발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지역은 일본군이 태국과 미얀마 간 철도를 건설한 공사 현장이었다.

미얀마 언론이 보도한 발굴 금괴와 구일본군 부대 터. 후속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미얀마 언론이 보도한 발굴 금괴와 구일본군 부대 터. 후속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두 사건과 같은 시기인 5월 20일에는 "필리핀 카포네스섬에서 일본인 4명과 현지인 14명이 ‘야마시타 보물’을 찾느라 땅을 파헤치다가 체포됐다"라는 일본 산케이 신문의 보도가 이어졌다. 야마시타 보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점령군 사령관이던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약탈한 보물과 금괴를 땅속에 묻었다는 '전설'을 말한다. 그 가치는 무려 1경 원 정도라고 전해진다. 1경 원은 1조 원의 만 배에 달하는 규모다. 희한한 일은 필리핀 정부가 아예 '보물 배분율'까지 정해 놓은 사실이다. 국공유지에서 발견될 경우 정부와 발굴자가 3:1 비율로 나눠 갖고, 개인 땅이면 정부가 30%를 갖는다는 식이었다. 워낙 발굴 사고가 잦아 규제 조치를 취한 것이란 설명이었지만, 정부가 되레 금괴 탐사를 부추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유독 미얀마와 필리핀에서 일제 보물 소동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본군이 이 두 나라에서 가장 악랄하게 수탈을 한 탓으로 여겨진다. 일제는 미얀마인 수만 명을 '죽음의 철도' 건설 현장으로 내몰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또 인도 침략에 쓸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미얀마 농촌을 초토화시켰다. 필리핀 역시 일본군 침략으로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3년 남짓한 점령기간 중 물가가 100배나 뛸 정도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다 보니 피어스 켈리라는 인류학자는 "야마시타 금괴는 필리핀 사람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꾸며낸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제의 약탈과 착취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로 있지도 않은 금괴 얘기를 지어냈다는 것이다.

야마시타 대장과 그가 만들었다는 금화. 오른쪽은 일왕 히로히토와 윌리엄 마케트 소장
야마시타 대장과 그가 만들었다는 금화. 오른쪽은 일왕 히로히토와 윌리엄 마케트 소장

이와 같이 일제가 약탈한 보물에 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증거가 발견되거나 공식 확인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종전 이후 일본군 또는 일본의 은닉 보물에 관해 실체가 드러난 것은 두 가지다. 이른바 'M자금'을 관리하던 미군 장교가 체포된 사실과 '엣츄지마' 보물 인양 사건이다. M자금이란 전후 도쿄에 설치된 연합군총사령부(GHQ)가 일본은행에서 압수한 금괴와 보석을 총칭하는 말이다. 'M'은 이를 총괄하던 총사령부의 경제과학국장 윌리엄 마케트(1894~1960) 소장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M자금', 일제 보물의 끝판왕일까? 또 다른 음모론의 산물일까?

마케트가 지휘하는 경제과학국은 전후 일본의 경제 회복을 위해 ‘부흥금융금고’를 설립했다. 이 금고의 재원은 일본은행이 채권을 찍어 마련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M자금’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데 이 자금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경제과학국에서 일본은행 금고를 조사하던 에드워드 머레이 대령이 500개의 다이아몬드를 숨겼다가 적발된 사건이 벌어졌다. 2004년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펴낸 《일본의 검은 안개》란 책에 따르면, 머레이는 군사재판에 넘겨져 10년 형을 받았고, 그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 가운데 여러 명이 횡령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체 은행 금고에 보물이 얼마나 있길래 관리자가 그토록 많은 다이아몬드를 빼돌렸을까"란 의문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M자금 규모는 다이아몬드 30만 캐럿 이상, 금괴 수백 톤 등 현재 가치로 볼 때 약 500조 원 정도로 추산되었다. 아울러 야후재팬에 들어가 'M자금 GHQ'를 키워드로 치면 무려 18만 건이 넘는 내용이 검색된다. 이 자금의 실체에 대한 내용으로는 대부분 동남아 점령지에서 가져온 금괴이며 그 중 일부는 운반이 간편한 다이아몬드로 바꿔 미리 본국으로 옮겨 놓았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각국에서 벌어지는 금괴 발굴 소동은 헛물을 켜고 있는 셈이다.

 

"약탈 보물이 전후 일본의 부흥 자금으로 쓰였다"는 주장도 나와

또 1946년 4월 도쿄 앞바다의 섬 '엣츄지마'의 해저에 숨겨진 보물이 미군에 의해 발견된 적도 있다. 이 소식은 4월 19일 일본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일본군의 금괴 은닉이 사실로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금괴 54톤과 백금·은괴가 발굴되었는데, 이를 매장한 일본 군인들이 포상금을 노리고 제보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나 연합군사령부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엣츄지마'와 '다이아 횡령' 두 사건은 M자금이 실재했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 거기에다 "식민지에서 약탈한 보물을 기반으로 조성된 이 자금이 전후 일본의 경제 부흥에 쓰였다"라는 주장에도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엣츄지마 금괴 발굴을 보도한 일본 《아사히 신문》 기사와 발굴 장소 항공 사진. 오른쪽은 M자금을 소재로 한 영화《인류자금》포스터
엣츄지마 금괴 발굴을 보도한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와 발굴 장소 항공 사진. 오른쪽은 M자금을 소재로 한 영화 《인류자금》 포스터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M자금의 존재는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고, 이를 둘러싼 사기 사건도 끊이질 않는다. 2013년에는 일본 영화 《인류자금》의 소재로도 등장했는데, 아무리 영화라지만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었다. M자금의 보물은 일본군이 약탈한 게 아니라 필리핀 주둔 미군에게서 빼앗은 것이며, 인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사용할 목적이었기에 '인류(mankind)'란 단어의 이니셜을 따왔다는 설정이었다. 침략 전쟁을 인류 평화를 위한 성전(聖戰)으로 둔갑시킨 셈이다.

이처럼 일제 보물 얘기는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그들이 침략했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심하면 보물선 사기극, 인질극, 발굴 사망사고 등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일제 금괴로 상징되는 식민지배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운동 선수들이 "한일전 만은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듯, 식민지 수탈의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의식이 방어기제로 작용해 금괴 사기에 쉽사리 빠지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덧 3.1운동이 일어난지 꼬박 한 세기가 지났다. 분명히 역사는 기억하되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는 사고를 떨쳐내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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