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藥투’ 낳은 약물거래, 마약밀매와 흡사하게 이뤄진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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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약물 브로커 활동했던 기해남 전 보디빌더 “거래 원천 차단은 불가능”
“근육 키우려고 약물 썼다” 스스로 고백하는 ‘약투’ 활동 나서  

2007년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가수 노사연을 번쩍 들어 올린 백인 남성이 있었다. 큰 키의 근육질 몸매를 자랑했던 그는 당시 방송에서 헬스 트레이너로 소개됐다. 

“TV에 나왔으니 잘 알 겁니다. 그 사람이 서울의 약물 딜러였어요. 전국에 약물을 공급하는 소수의 총책이 있다면, 그 중 한명이겠네요.”

이란 출신의 이 딜러는 스테로이드와 남성호르몬제 등을 불법 유통한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운동경력 33년의 프로 보디빌더 출신 기해남씨(50)의 말이다. 그는 최근 ‘약(藥)투’를 선언하고 나선 피트니스 업계 종사자들이 어떻게 약물을 구했는지 기자에게 상세히 들려줬다. 약투란 “근육 키우려고 약물을 썼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걸 미투에 빗댄 신조어다. 

2월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카페에서 기해남 머슬앤피트니스 편집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촬영을 하고있다. ⓒ 고성준 기자
2월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카페에서 기해남 머슬앤피트니스 편집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촬영을 하고있다. ⓒ 고성준 기자

 

마약 밀매와 흡사한 스테로이드 유통 경로

약투에 대해 기씨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돼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딜러에게 약물을 직접 공급받는 1차 브로커였다. 구입한 약물을 본인이 사용하거나 팔았다. 2014년 약사법 위반 혐의로 적발되기 전까지 1년 간 거래한 약물 규모는 약 1억 원어치(판매수익 포함)에 달했다고 한다.

기씨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초범이고 약물을 직접 복용한 부분은 처벌하지 못한다는 점이 감형 이유로 작용했다. 현재는 약물을 끊고 약물학과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보디빌딩 전문지 머슬앤피트니스의 편집장도 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약물 유통 경로는 범죄조직의 마약 밀매 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딜러들이 중국과 태국 등지에서 약물을 밀수해온다. 감시망이 허술한 과거엔 정상적인 물품 속에 숨겨 들여오는, 소위 ‘알박기 수법’을 썼다고 한다. 이후엔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거래가 시작된다. 

거래는 카카오톡을 통해 이뤄졌다. 기씨는 “지금은 텔레그램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한다”고 했다. 약물 유통에 직거래란 없다. 주로 오토바이 택배를 이용해 물건을 건네고 돈을 받아온다. 딜러가 약물을 보낼 땐 본인 주소지가 아닌 다른 지역의 우체국이나 편의점에 물건을 맡겨 둔다. 우편물 역추적을 막기 위해서다. 발신인의 이름이나 연락처는 모두 가짜다. 거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계좌이체도 하지 않는다.  

ⓒ 고성준 기자
ⓒ 시사저널 고성준

 

3만원이면 구하는 스테로이드… “원가는 더 쌀 것”

기씨는 딜러의 약물 공급가가 적힌 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초보자에게 추천되는 스테로이드제 ‘디아나볼(디볼)’은 3~4만원,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애용했다고 알려진 ‘프리모볼란’은 13~15만원 꼴이다. 원래 유방암 치료제이지만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막아주기도 하는 ‘놀바덱스’는 2만원 내외로 구할 수 있다. 

단 이는 원가가 아니다. 기씨는 “언더랩(underground lab·불법 제약단체)에서 만들기 때문에 원가는 훨씬 더 쌀 것”이라고 했다. 모든 약물은 국내 판매허가를 안 받았거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었다.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온 모든 약물을 딜러 한 명이 단독 공급하는 건 아니다. 기씨는 “딜러마다 취급 분야가 다르다”고 했다. 서울 딜러는 스테로이드제, 부산 딜러는 흥분제를 각각 판매하는 식이다. “국내 제약사가 만든 제품을 빼돌려 공급하는 딜러도 있다”고 기씨는 덧붙였다.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다. 일망타진이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 기해남씨
ⓒ 기해남씨

 “150만원에 팔았다는 얘기도 있다”

브로커는 딜러에게 약물을 받아 수수료를 붙인 뒤 다른 사람에게 되판다. 기씨는 “구매자는 대개 보디빌딩 선수였다”며 “현재 협회장 위치에 올라와 있는 저명한 선수들도 있다”고 했다. 이들 중엔 2차 브로커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약투를 고백한 김동현 전 보디빌더는 2월1일 유튜브를 통해 “유통 단계가 많을수록 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며 “인터넷상에서 (디볼 등 스테로이드제를) 150만원에 팔았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구매자 중엔 간혹 일반 직장인이나 학생들도 있다고 알려졌다. 

약물 유통에 뛰어든 딜러나 브로커 중엔 얼굴이 잘 알려진 보디빌더도 적지 않다고 한다. 육체미가 뛰어날수록 거래 약물의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만큼은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이뤄지는 마약 거래와 다르다. 

 

“이젠 정부가 중독자 관리해야”

지난해 10월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스테로이드제 불법판매 적발 건수는 최근 3년 꾸준히 늘었다. 2016년 272건, 2017년 344건, 2018년 451건 등이었다. 기씨는 “약물 거래를 원천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근육을 보여주며 얻는 관심에 대한 집착은 끊을 수 없는 중독과도 같다”는 이유에서다. 도핑테스트가 없거나 허술한 보디빌딩 대회가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해결방법은 없을까. 기씨가 말을 이었다. “스테로이드 자체는 죄가 없다. 문제는 그것의 오남용이다. 이젠 정부가 나서 스테로이드 중독자를 관리하고 상담해줘야 한다. 술이나 담배처럼. 중독자를 위한 사후 치료 프로그램도 양성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에선 정부기관인 ‘약물남용 및 정신건강기구(SAMHSA)’가 스테로이드 등 약물 중독자에 대한 재활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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