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관리 30년 특집①] “수돗물의 오해는 연탄보일러에서 시작됐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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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수돗물은 생수·정수기 물보다 안전하고 미네랄 풍부”···물관리 30년 조명 

1900년대 초까지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장티푸스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인구 10만 명당 장티푸스 발병률이 연간 500~600명이던 것을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뜨린 것은 백신이 아니라 정화된 수돗물이었다. 영국의학저널(BMJ)은 2007년 의사 3000명을 포함한 전문가 1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 저널이 발간된 1840년 이래 인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의학계의 중요한 업적을 물었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항생제, 마취, 백신, 유전자 이중나선 구조 발견과 같은 노벨상 수상 업적을 제치고 ‘상·하수도’가 1위를 차지했다. 상·하수도는 인간의 수명을 30년이나 연장한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라는 것이다.

 

연탄보일러·수세식 화장실을 위한 물탱크 관리 엉망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1908년 수돗물이 탄생했다. 서울 왕십리 길에 '뚝도 정수장'이 생기면서 주로 사대문 안에 공동 수도가 들어섰다. 단순한 정수 처리만 한 수돗물이었지만, 한강·우물·개울에서 물을 긷는 수고는 물론 수인성 전염병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후 가정마다 수도가 설치됐다. 그러나 '설거지나 씻을 때는 쓰지만, 마시지는 못하겠다'는 것이 수돗물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거나 녹이 발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연탄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의 보급된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1970년대 중반부터 기와집이 2층 양옥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아궁이가 사라지고 연탄보일러가 공급됐다.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는데, 당시엔 단수가 빈번했다. 그래서 옥상마다 물탱크가 설치됐다. 수돗물을 그 탱크에 받은 후 연탄보일러와 식수로 사용했다. 또 아파트엔 수세식 화장실이 생겼고, 거기에 쓸 물을 지하에 있는 저수조에 보관했다. 그러나 물탱크와 저수조엔 각종 먼지와 죽은 쥐 등이 있을 정도로 관리가 엉망이었다. 그러니 그 물에서 냄새가 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는데, 그 틈을 생수가 비집고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수돗물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1989년 상수도사업본부가 설립됐다. 한마디로 정부가 수질을 관리하겠다는 움직임이었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수돗물 생산·공급, 수질 관리·검사, 수도관 교체 등의 일을 한다. 특히 서울시는 2004년 수돗물에 아리수라는 브랜드까지 붙여 인식 변화를 꾀했다. 아리수는 고구려 시대에 한강을 부르던 말로, 큰물이라는 뜻이다. 서울시 수돗물의 수원은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발원해 강원도·충청북도·경기도·서울시를 통과해 서해로 흐르는 514km의 한강이다. 2008년 수질분석기관인 UL(미국보험협회 안전시험소)과 NSF(국제위생재단)가 수질을 검사한 결과, 미국 EPA(환경보호청)의 먹는 물 수질 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와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2018 수돗물 축제'에서 참석한 사람들이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와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2018 수돗물 축제'에서 참석한 사람들이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수돗물

그러나 수돗물 정수에 사용하는 염소와 수도관의 노후 등에 대한 우려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2년 취수부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까지 관리하기 위한 물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서울시 수돗물의 수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항목보다 많은 170개 항목(먹는 물 수질 기준 60개 항목과 서울시 감시 110개 항목)으로 관리한다. 수질 기준 수치는 보통 사람이 하루에 2리터의 물을 70년 동안 마실 경우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양으로 설정한 값에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의 안전율을 고려해 정한 값이다. 2016년 서울 수돗물은 ISO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했다. 한마디로 수돗물이 '먹는 물'로서 안전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본 오사카, 스페인 아그바, 호주 멜버른 등 일부 국가가 이 인증을 받았다. 

2018년 450곳(일반지역 434곳과 노후지역 16곳) 수도꼭지에서 받은 물도 모두 '적합' 판정 결과가 나왔다. 잔류염소는 0.1~0.34mg/L(먹는 물 기준은 4mg/L 이하), 탁도는 0.05~0.17NTU(기준 0.5NTU 이하), pH(수소이온농도)는 7~8.4(기준 5.8~8.5)로 측정됐다. 일반 세균과 대장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는 2019년 유네스코 수돗물 국제인증을 추진 중이다. '수돗물 국제인증'이란 유네스코가 세계 각국 도시의 수돗물 신뢰성과 음용률을 높이기 위해 수돗물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국제인증제도다. 

 

"수원 관리가 남은 숙제"

한강 물을 정수해서 먹기 시작한 지 111년, 수질을 관리한 지 30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비율은 5% 정도다. 이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영국 70%, 프랑스 66%, 미국 56%, 일본 47% 등이다. 서울시는 이를 문화적 차이라고 해명한다.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는 않지만, 물을 끓여 마신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2017년 서울시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다. ‘수돗물을 끓여서 먹거나 차나 음식에 사용’하는 비율이 50.4%로 집계됐다. 

이덕환 교수는 "나는 수돗물을 마신다. 염소 소독은 인류가 고안한 최고의 위생기술이다.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에도 염소는 있다. 그러나 물을 잠시 받아두거나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끓이면 쉽게 사라진다. 수도관 내부는 압력이 높아 이물질의 침범도 쉽지 않다. 수돗물에 대한 나쁜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돗물을 마신다고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셔도 건강에 해가 없다. 서양처럼 칼슘과 같은 무기질이 많으면 문제지만, 우리 물은 그렇지 않다. 일부 지역의 수도관 부식이 문제이긴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노후 상수도관을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관 등으로 교체하고 있다. 서울시 전체 상수도관의 길이는 1만3587km인데, 이 가운데 99%를 교체했고, 나머지 1%를 2022년까지 교체할 예정이다. 

지난해 대구 등 영남권 수돗물에서 화학물질이 검출돼 화제가 됐다. 다행히 인체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물 박사로 통하는 김현원 연세대 원주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20년 전만 해도 수돗물에서 염소 냄새가 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수 과정에 사용하는 오존도 금세 사라져서 문제가 없다"면서 "문제는 수원 관리다. 한강을 수원으로 하는 서울은 괜찮지만, 낙동강은 페놀 유입 가능성이 있어서 어느 지역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지자체와 환경부는 수원지 관리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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