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5·18 망언에 끓는 광주 민심 “도대체 속셈이 뭐냐”
  • 광주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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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5·18폄하’ 공청회 발언 파문 ‘악화일로’
한국당광주시당, “사지(死地)로 추락 느낌” 침통 분위기
현대판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 신설 목소리 커져

“당원도 오지말라는 광주에 와서 불 질러 놓고 갔어...” 

2월 13일 오전 광주역 앞 택시 승강장에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한 중년 택시기사는 400m 남짓 떨어져 있는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 도당사 쪽을 가리키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전날 당원간담회를 위해 시도당사를 다녀간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린 국회 공청회를 주최해 논란의 중심에 선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광주를 찾았다가 성난 광주민심을 직격탄으로 맞았다. 항의 인파를 피해 뒷문을 통해 당사 안으로 들어간 김 의원은 5·18 유공자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고 쓰레기 투척 봉변을 당했다. 그는 당사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서둘러 광주를 떠났다. 

지만원 씨를 초청한 ‘5·18 공청회’를 공동 개최해 논란의 중심에 선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12일 오전 광주 북구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사를 당권 주자 자격으로 방문했다가 5·18 단체 회원들의 항의를 받으며 광주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만원씨를 초청한 ‘5·18 공청회’를 공동 개최해 논란의 중심에 선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12일 오전 광주 북구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사를 당권 주자 자격으로 방문했다가 5·18 단체 회원들의 항의를 받으며 광주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계속되는 5·18 모욕…뿔난 광주민심 “강력 처벌해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공청회 폄하 발언으로 반감이 고조된 가운데 그 진원지인 광주지역 민심이 들끓고 있다. 항의가 빗발치자 자유한국당은 뒤늦게 대국민 사과로 진화에 나섰지만 한국 민주화의 지평을 연 5·18을 왜곡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면서 지역 민심은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다. 대표적인 극우 보수논객 지만원씨를 초청한 ‘5·18 공청회’를 공동 개최해 ‘망언’ 논란을 일으킨 김 의원의 봉변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광주 민심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중평이다. 

이른바 5·18 폄하 발언 논란은 지난 8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공청회를 열고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폄훼하면서 촉발됐다. 육군 대령 출신인 한국당 이종명(비례대표) 의원은 공청회에서 “80년 광주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됐다”며 “다시 (폭동으로) 뒤집을 때”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같은 당 김순례 의원도 “조금 방심한 사이 정권을 놓쳤더니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가세했다. 지만원씨는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광주지역 각계각층이 즉각 5·18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이라며 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다.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이제는 평화적으로 타협하고 설득해온 방식을 바꿔야 할 때”라며 “전두환·노태우와 싸웠던 분노와 결기를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망언 의원에 대한 제명과 퇴출 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항의 방문한 5·18 단체들은 김 의원 등의 제명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지역 정치권과 대학 교수들도 관련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자유한국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잊을 만하면 들춰내 상처주는 속셈이 뭐냐”

일반 시민들은 5·18 폄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면서 분노로 들끓었다. 2월 13일 오후 광주 상무지구 한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40대 직장인 이 아무개씨는 정치권의 5·18 공청회 발언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씨는 “역사적으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인데 잊을 만하면 들춰내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같은 자리에 합석했던 직장인 장 아무개씨는 해당 국회의원들의 역사의식과 자질을 문제 삼았다. ”5·18의 의미를 알고 그랬다면 천하의 몹쓸 사람이고, 모르고 했다면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역 정치권을 향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북구 용봉동 전남대 사거리 굴다리 부근 한 카센터에서 만난 채익희(59)씨는 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채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일부 극우 논객들의 5·18 모욕 발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그때마다 규탄한다는 성명서만 달랑 내면 뭐하냐”며 “호남이 이런 사람들에게 또 정치를 맡겨야 하는지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원들 “사지(死地)에 떨어진 느낌…끓기는 시민들과 마찬가지”

적막강산(寂寞江山)에 빠진 광주 북구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사.ⓒ 시사저널 정성환
적막강산(寂寞江山)에 빠진 광주 북구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사 ⓒ시사저널 정성환

이날 오전 찾아간 광주 북구 중흥동 자유한국당 광주시당 2층 사무실은 적막강산(寂寞江山)이었다. 5·18 공청회 발언이 터진지 닷새가 지났지만 너무나 엄청난 후폭풍에 두 명의 여직원만이 걸려오는 전화를 나직한 목소리로 받는 등 거의 말을 잃은 채 시종 침통한 분위기였다. 광주민심을 자극하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에 할 말을 잊은 것이다. 5공 시절 민정당 출범 이래 줄곧 써온 당사 분위기가 가장 무거운 모습이라고 한 당직자가 귀뜸했다. 

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은 5·18 공청회 발언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의원들의 현명치 못한 발언에 대해서는 우려의 태도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 통틀어 단 1곳 밖에 자치단체장 후보를 못 낼 만큼 당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5·18 공청회 발언 논란까지 촉발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당심(黨心)도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한국당 광주·전남 시도당원들은 자당 소속 의원들의 5·18 역사왜곡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줄곧 한국당만 지지하고 있다는 한 50대 여성 당원은 ”그렇지 않아도 광주·전남은 험지인데 공청회 발언 이후 사지(死地)에 떨어진 느낌이다“며 ”광주시민들과 더욱 멀어진 결과를 초래해 시민들도 부글부글 끓지만 당원들도 끓기는 마찬가지다“고 했다. 

 

뒷북 정치권에 화살 “규탄 성명서만 달랑 내면 뭐 하냐” 

김진태 의원의 광주행 결정 과정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5·18 공청회 발언 문제로 지역사회 전체가 매우 예민한 상태에서 하필 김 의원이 당원간담회를 이유로 광주행을 강행한 것은 매우 경솔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오래 전 잡힌 공식일정”이라고 했지만 광주에 오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무시하고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당 광주시당 한 당직자는 “엊그제 김진태 의원이 광주에 온다는 일정이 공지된 뒤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며 “광주지역 당협위원장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5·18민주화운동이란 역사적 사실에 여·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이 따로 있느냐”며 “손님이 온다면 참석하는 게 예의긴 하지만 김진태 의원과 함께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에 제발 오지 말아 달라 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날 간담회 자리에는 광주지역 당협위원장 7명 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 

광주 북구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사 ⓒ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북구 자유한국당 광주시·전남도당사 ⓒ시사저널 정성환

‘5·18 망언’으로 성난 민심의 불똥이 지역 정치권으로 옮겨 붙는 기미도 감지됐다. 1차 타깃은 망언을 쏟아낸 의원들이 소속된 한국당이지만, 끊이지 않은 5·18 왜곡·비하에 대해 적절한 법적 제도적 대응책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고 뒷북 대응에 급급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평화당, 바른미래당 등 전체 정치권을 향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날아들고 있다. 금방 소라도 잡을 듯이 달려들었다가 냄비 달궈지듯 금세 돌아서 지역민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건 막말 추문에 만신창이가 된 한국당과 함께 도긴개긴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치권이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 광주 각계각층의 규탄 성명과 집회에서는 이런 민심의 경고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일부에서는 처벌 수위가 낮아 지만원씨 등 일부 극우 논객들이 이런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원 박현민(35)씨는 “지씨가 처벌을 받아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계속 반복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5·18 망언을 계기로 ‘역사 부인죄’, 이른바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 신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국회는 5·18 등 역사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이 몇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몇몇 극우 논객이 5·18을 비하하더라도 정치인들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인다면 역사 부인죄라는 별도의 법적 규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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