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이야기 펴낸 요리사 박찬일 “공연 완성 무대 그 자체를 맛보시라”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7 16: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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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요리사, 발품으로 오사카 술집 찾아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출판

지난 1월 중순 《수요미식회》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일식 ‘스시’부터 일본의 미식 트렌드 ‘혼밥’, 일본식 디저트까지 다양한 일식을 소개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박찬일 요리사는 일본 출신 트로트계 아이돌 강남과 함께 일본 전통 가정식을 함께 먹으며, 일본의 가정식 상차림과 일식의 음식 문화 및 역사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강남은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일본을 배우다니 신기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 음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박 요리사는 최근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를 펴낸 것으로 대신한다. 이 책은 오사카 사람들의 술과 미식에 대한 이야기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박찬일 지음│모비딕북스 펴냄│360쪽│1만8000원 ⓒ 시사저널 임준선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박찬일 지음│모비딕북스 펴냄│360쪽│1만8000원 ⓒ 시사저널 임준선

오사카 여행객들 위해 발품 팔아 엮은 미식 안내서

“오사카는 술집 천국이다. 내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인정한다. 좁은 골목마다 술집이 바글거린다. 경쟁이 심하고, 당연히 값이 싸다. 낮술 손님이 많은 것으로는 세계에서 으뜸갈 것이다. 웬 낮술파가 그리 많을까. 대낮 변두리 주택가에도, 시내에도 낮술꾼들이 득실득실하다. 양복쟁이, 회사원으로 보이는 여성들, 할아버지들(집에서 시내까지 나와서 마신다), 심지어 학생 같은 젊은이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술 마시면서 사귀고, 서로 인사 트고, 논다. 정말 희한하다. 팔십 노인과 20대 젊은이가 친구가 돼 술을 마신다. 기가 막힌다.”

술을 참 좋아한다는 박 요리사도 왕년엔 엄청 마셨더랬다. 지금은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처지가 됐지만 여전히 그는 애주가다. 술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오사카의 애주가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그들이 문득 만나고 싶어졌다. 아침 8시부터 술집에 줄을 서는 사람들, 평일 대낮에 양복 입고 혼술하는 노신사들, 매일 밤 힙한 바에서 술 파도타기를 하는 청춘들…. 이 오사카의 애주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시도 때도 없이 마실까? 박 요리사는 그 답을 찾고 싶었다. 

“오후 4시가 되면 사람들이 몰리는데, 좁디좁은 부엌에서 온갖 요리가 보물처럼 쏟아진다. 인기 최고인 육회는 물론이고, 그날그날 물 좋은 생선으로 회든 구이든 만들어내는데, 모든 조리 장면을 손님이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부러 보여준다기보다 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좁다. 생선을 두 마리쯤 전용 그릴에 넣어 구워가며, 계란말이(다시마키)를 신나게 부치고, 동시에 오늘의 회 네댓 종류를 썰고, 육회에 간장을 뿌리고, 온갖 다양한 종류의 술을 따라서 손님에게 내어주고 계산도 한다. 이런 동작들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이들의 협동과 인내, 일하는 즐거움은 어떤 면에서는 안쓰러움과 경이를 느끼게 한다.”

전직 기자인 박 요리사는 ‘먹다라는 문화 행위’에 대한 기록자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펴낸 여러 책들은 단순하지가 않다. 그는 미식 기행을 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이며 자영업의 현실이며 노포의 강점을 파헤쳐 전한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에서 그가 ‘발과 혀와 가슴으로’ 찾아낸 술집과 밥집들은 ‘패키지 관광’으로는 찾아가기 힘든 곳들이다. 오사카의 술꾼들과 ‘가슴을 나누며’ 술과 음식을 매개로 오사카의 미식 세계를 들여다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맛있고 저렴한 밥집이 많은 이유

“오사카는 온통 콘크리트 숲이다. 개미굴 같다. 그 굴 어디선가 다들 끊임없이 마시고 있다. 삭막한 길, 골목 안쪽 술집에 등이 켜지면 사람들이 들어선다. 오사카 사투리가 퍼지고, 술기운으로 불콰해진 사람들이 2차를 위해 떠난다. 나는 그 틈에서 마셨다. 마시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음주를 조장하는 거대한 그물에 갇힌 것 같았다. 이 도시에서 술은 윤활유다. 그렇게 이 도시가 돌아간다. 오사카 사람들은 기꺼이 서서 마신다. 싸고 빠르고 더 많은 이들과 어깨를 부딪칠 수 있다. 이것이 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박 요리사는 사라져가는 술꾼들을 찾는 심정으로, 배고픈 나그네의 심정으로 술집과 밥집을 고르고 평가했다. 비싸고 잘나가는 집보다는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맛있고 저렴한 집들을 고르고 골랐다. 음식도 아는 만큼 먹을 수 있고, 식재료를 알면 미식의 기쁨이 두 배가 되는 것을, 15년 경력의 요리사답게 경험과 지식을 충분히 살려 전한다. 

“라멘은 이제 작은 우주다. 이 집에 와서 이런 나의 해석과 가설은 더욱 힘을 얻었다. 도리소바자긴. 소바라는 전통적 명칭을 쓰고, 고급의 대명사인 도쿄 긴자를 비튼 것으로 보이는 위트(자긴이라니!), 심지어 크림소스 같은 국물을 뽐낸다. 어디까지가 라멘인가. 우리는 그것을 규정할 수 있는가. 신사이바시에 있는 이 가게에서 이런 생각이 더 짙어졌다. 물론 이곳은 닭이 메인이다. 니보시라고 부르는 마른 멸치를 강조한 니고리 라멘도 있다. 니고리는 진하다는 뜻이다. 육수를 우려낸 멸치를 갈아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자기 색깔이 선명한 이 가게가 라멘 마니아들을 잘근잘근 씹어버린다. 단언컨대 우리도 이 가게에서 갈려버릴 것이다. 주인이 의도한 대로.”

오사카의 외식산업은 완전경쟁 시장이다. 소비자들의 입맛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고, 그 치열한 시장에서 맛없는 밥집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오사카에 맛집이 많은 이유라고. 그런 저렴하고 맛있는 밥집들이 박 요리사에겐 하나하나 색다른 미식의 공연장이다.

“후쿠시마 나나초메에서 손님들의 평균연령이 가장 높고 음식값 싸고 인정 있는 집. 주인아저씨가 일하면서 가끔 기합을 넣는데, 이것이 묘하게 가게 분위기의 흥을 살린다. 이런 술집은 하나의 무대다. 주인, 안주, 술 그리고 손님. 이에 더해 일부러 만들 수 없는, 시간이 만든 낡은 공기가 하나의 공연을 완성한다. 매일, 어떤 배우가 실수를 하더라도 야유가 없는. 나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가게 밖 저물어가는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아직 해가 짱짱한데, 취기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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