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폭식가’ 유럽연합 의회…인건비만 年 5조↑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1 08:55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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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 운영 비판에도 요지부동

영국의 ‘브렉시트’ 합의 난항으로 유럽연합(EU) 전체의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유럽연합의 예산 낭비 논란이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 해에 수조원의 예산이 불필요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 ‘오성 운동’의 대표 루이지 디 아이오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유럽연합 의회가 있는 곳)는 돈 낭비”라며 공식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의 예산 논란은 이미 10년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지난해 공영 프랑스3 방송은 이 사안에 대해 1시간30분 분량의 특집 탐사보도를 방영하기도 했다. 방송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총 예산 규모는 매년 1500억 유로(192조원) 선이다. 이 중 약 1400억 유로는 다시 유럽 각국을 위해 사용되고, 남는 약 100억 유로(1조2500억원)가 유럽연합의 순수한 운영자금으로 집행된다. 바로 이 부분이 오랜 예산 낭비 논란의 주인공이다.

751명의 유럽의회 의원들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왼쪽)와 벨기에 브뤼셀 의사당을 오가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이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만 1년에 약 320억원이 소요된다. ⓒ 연합뉴스
751명의 유럽의회 의원들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왼쪽)와 벨기에 브뤼셀 의사당을 오가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이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만 1년에 약 320억원이 소요된다. ⓒ 연합뉴스

한 달 한 번씩 대이동, 나흘 예산 6% 지출

유럽연합의 방만 운영은 ‘유럽연합 본부’와 ‘유럽연합 의회’가 각각 벨기에 브뤼셀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나뉘어 있는 구조에서 출발한다. 브뤼셀에 의원실을 두고 있는 751명의 유럽의회 의원들은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에서 진행되는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매달 이사를 간다. 의원뿐 아니라 보좌관을 비롯한 의원실 직원은 물론, 유럽연합 관리인과 식당 종사자까지 총 2500여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대이동을 한다. 

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프랑스 테제베(TGV) 고속열차가 매달 두 차례씩 운행한다. 각 의원실에서 쏟아져 나온 서류와 각종 기자재만 해도 박스로 2000개가 나온다. 8대의 대형 트럭이 브뤼셀에서 500km가량 떨어진 스트라스부르까지 이들을 실어 나른다. 매달 단 나흘 회의를 위한 이 이사에 소요되는 비용만  1년에 약 2500만 유로(320억원)다.  

프랑스 녹색당 출신의 유럽의회 의원 파스칼 뒤랑은 최근 프랑스3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바보 같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 감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매달 진행되는 이 이사 행렬만 멈춰도 1년에 1억1400만 유로(1460억원)를 절약할 수 있었다. 유럽의회 전체 예산의 6%에 해당하는 액수다.

유럽연합 본부와 의회가 양분된 구조가 이사 비용만을 낳는 건 아니다. 스트라스부르의 의회 의사당 건물은 20층 높이에, 22만m² 규모로 이뤄져 있다. 한 달에 나흘 사용하기 위해 연중무휴 냉난방을 한다. 

유럽연합 의원의 세비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751명 전 의원에게 동일한 기본 세비(세금 공제 후 실수령액)로 약 6611유로(848만원)가 지급된다. 여기에 의원실 운영을 위해 지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반경비’로 약 4320유로(554만원)가 따로 나온다. 끝이 아니다. 의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의원회관에 출석을 증명하기만 하면 하루에 307유로(40만원)가량의 출석수당이 별도로 지급된다. 즉, 주 5일 빠지지 않고 한 달을 출석할 경우 6000유로(770만원) 이상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유럽 각지에서 오는 만큼 각 나라에서 유럽연합 본부까지의 교통편도 제공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차 혹은 비행기 1등석이 무료로 지급되며, 별도의 해외출장의 경우 1년간 최대 4236유로(약 540만원)까지 지원 가능하다. 

의원들만 이런 고혜택을 누리는 건 아니다. 유럽연합은 전 세계 각국 정상들의 외교 현장이니만큼, 의전과 격식 또한 단연 최고급으로 갖춰져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위해 유럽연합 의사당엔 연미복 차림의 ‘집행관(Huissier·의회 관리인)’이 상주한다. 엄격한 시험을 통해 선발된 이들의 한 달 평균 임금 또한 약 5000유로(641만원)로 고임금에 속한다.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회의 때 필요한 동시통역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28개국이 모여 있는 유럽연합은 공식 언어만 23개에 이른다. 회원국 간 평등을 위한 조치다. 회의 한 번에 투입되는 동시통역사만 최소 40명이다. 유럽연합엔 전체 250여 명의 동시통역사가 소속돼 있으며, 이들의 평균 급여는 3500유로(450만원) 선에서 시작해 9000유로(1150만원)대까지 올라간다. 

동시통역사를 포함, 유럽연합에 종사하는 직원은 총 4만4000명가량 된다. 이들에겐 모두 1년에 6주씩 휴가가 제공되며, 은퇴 후 마지막 급여의 70%에 해당하는 연금 혜택 또한 주어진다. 인건비로 들어가는 돈만 한 해 45억 유로(5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들 전 직원은 자녀교육과 주거에 있어서도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직원들의 자녀는 전액 무료로 유럽연합 산하 국제학교에 보내진다. 약 1만5000명 정도의 학생들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1년에 2억 유로(2566억원)에 달한다.


유럽의회는 은퇴 정치인 ‘실버타운’

그렇다면 이러한 최고 수준 대우의 유럽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 실적도 최고 수준일까. 의원들은 모두 의회 내 각각의 상임위원회에 속해 있다. 그러나 별도의 상임위 출석 체크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유일한 의무사항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매달 나흘 열리는 본회의에 참석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투표시간은 낮 12시에서 13시까지 단 1시간이다. 이 본회의에마저 잦은 결석을 할 경우, 세비의 절반까지 차압을 당하는 제재사항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나흘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의원들은 전혀 통제되지 않는다.

유럽연합 의회의 감시 단체 ‘보트 워치’가 의원 1인당 연간 보고서 제출 건수를 조사한 결과, 핀란드 의원이 1년에 약 1.13개의 보고서를 제출해 1위에 올랐다. 나머지는 1년에 단 한 건의 보고서도 채 제출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 평균 0.27건으로 하위에 기록됐다. 이 같은 저조한 활동에 대해 유럽의회 15년 차인 프랑스 알랭 라마수 의원은 “자국의 주요 언론으로부터 유럽의회 활동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관심을 못 받으니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유럽의회 회기 중 텅텅 빈 각 상임위 회의장 모습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되레 각국의 정치무대에서 낙선했거나 이전 정부에서 활동하고 물러난 인사들이 유럽의회 의원으로 포진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의회 74석을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중앙 정계에서 은퇴하거나 지방 선거에서 낙선한 중량급 정치인들이 유럽의회 의원 자리를 차지해 ‘실버타운’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5년마다 돌아오는 유럽연합 의원 선거 때마다 늘 그들이 과연 5년간 무엇을 했는지 갖은 비판이 쏟아지곤 한다.

유럽연합은 오는 5월 또다시 의원 선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제 곧 닥칠 영국의 탈퇴 이후 각국으로부터 거둬들이는 분담금이 수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야 할 시기지만, 유럽연합의 긴축 조짐은 아직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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