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트럼프가 하는 건 싫어, 북한은 더 싫어”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2 17:00
  • 호수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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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주당 지도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불편한 기색
대놓고 반대 못 하지만 ‘냉소적’

“김정은이 게임을 하려거나 비핵화에 진지하지 않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시간 낭비이고, 김정은만 중요하게 보이는 자리로 만들 뿐이다.” 2월11일(현지 시각) 미국 민주당 소속 의원인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엥겔 위원장은 이날 “북한이 핵무기 전부를 완전히 포기한다면 정상회담이 그나마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김정은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누가 알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소 극단적인 견해로 보이지만, 엥겔 위원장의 이러한 시각은 현재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이다. 민주당 소속 에드 마키 상원 외교위 동아태위원회 간사도 2월14일 한 토론회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관해 “김씨 일가의 각본에 당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역시 “검증 조치가 포함되지 않은 비핵화 합의는 환각”이라면서 “북한은 미국에 양보만 얻어내려고 할 뿐”이라며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선 지지한다는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도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의 약속만 믿어서는 안 된다”며 “핵시설 사찰과 검증 등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줄 증거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5일(현지 시각) 미 의회에서 신년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5일(현지 시각) 미 의회에서 신년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미 의회, 정당·정파 떠나 “북한 못 믿겠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반(反)트럼프 진영에 서 있는 민주당 인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북정책을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워싱턴의 한 외교전문가는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에 대해 제기하는 불신의 강도는 김정은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북한에 관해 쉽게 풀 수 없는 엄청난 불신이 쌓여 있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방미한 한국 국회 대표단이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예정 시간을 넘겨 논쟁을 벌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국회 대표단에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기대하는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한참의 논쟁 끝에 겨우 “사실 나는 (북·미 정상회담에 관해) 낙관적이지만은 않지만,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말해 준다. 

워싱턴의 또 다른 한 전문가는 “민주당이든 트럼프의 공화당이든 대북정책에 있어 불신(distrust)은 최고의 공통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민주당 정권이나 현 공화당 정권을 불문하고 뿌리 깊은 북한 불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확고한 대북 합의를 이뤄낸다고 해도 쉽게 해소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소속인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도 2월14일 한 토론회에서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히려 “지금이 북한에 최대한 압박을 더 가해야 할 시기”라며 경제적인 제재는 물론 군사적인 압박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공화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이 북한 정권 전복도 불사하는 강경 대북파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에 관해 또 다른 한 전문가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만 상대하려는 ‘톱다운(Top-down, 하향식)’ 방식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도 염두에 두고 북·미 관계 개선이나 핵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제로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미 의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왼쪽)이 2월12일(현지 시각)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왼쪽)이 2월12일(현지 시각)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차 회담 후 트럼프와 본격적인 논쟁 펼 듯 

그는 또 “단기적인 제재 완화에서만이 아니라, 비록 추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미 의회의 법적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그만큼 북한도 미국 조야를 휘감고 있는 대북 불신 해소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는 성과 과시에 주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 등 외교적인 상황을 급속하게 처리했다가는 오히려 이후 정권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미국 일각의 우려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현재 미국 사회에서는 워싱턴 정가 전체에 걸쳐 대북 불신 강도의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속 의원들의 이런 불신 기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대북 문제에 있어 집단적인 공격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분위기다. 대북 외교 전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점당하는 것도 싫기는 하지만, 미국민의 근본적인 안보 우려가 달린 문제에서 오히려 강하게 나갔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북·미 협상을 지나치게 비난했다가 상황이 악화하면 공화당과 함께 책임론에 빠질 수도 있고, 그렇다고 북·미 관계 개선을 마냥 나 몰라라 했다가는 자칫 평화 무드에 낙오자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견제용으로 가벼운 잽만 날리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게임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최근 펠로시 하원의장 측이 한국 국회 대표단을 만난 이후, 이와 관련해 공식 트위터에 관련 사진도 하나 게재하지 않고 또 보도자료 한 줄도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다만 지난해 중간선거 결과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대북 외교를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의회의 힘을 십분 활용, 자신들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겠다는 목적은 확실하다.

따라서 민주당은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직후 이에 따른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이 나오면 이를 검토한 후에 트럼프 대통령과 본격적인 힘겨루기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관중의 반 이상은 장악하고 있지만 행정부 권력에서 밀려나 현재는 무대에 설 수 없는 전임 주인공이 2부 드라마의 결과를 보고 다시 현 주인공과 본격적인 싸움에 나서겠다는 속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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