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심비’ 흥행몰이 달라진 금융 재테크 트렌드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8 09:00
  • 호수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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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do it’ 스스로 세운 목표 달성하면 우대금리

한동안 ‘가성비(價性比)’의 시대였다. 고객들은 불황기에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0.1%포인트라도 금리가 높은 은행을 찾았다. 은행들이 내놓는 예·적금 특판 상품은 완판 행진을 이어갔고, 높은 금리의 상품 가입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새벽부터 긴 줄을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제1금융권은 물론 저축은행과 인터넷 전문은행의 금리를 꼼꼼히 비교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루를 맡겨도 조금이라도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이 은행 저 은행을 넘나드는 풍경도 생겨났다. 머물 곳을 찾는 시중자금을 유치하려면 경쟁사보다 무조건 금리가 높아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금융권에서는 ‘가심비(價心比)’가 적시타를 치며 뜻밖의 흥행몰이를 펼치고 있다. 가심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에 ‘마음 심(心)’을 더해 변형한 말이다. 즉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이 중요해진 것이다. 예를 들면, 더 높은 금리의 금융상품이 있음에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가 광고하는 금융상품에 기꺼이 가입하는 현상이다. 남들이 보기엔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이지만 내 마음에 들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금융상품을 고르는 것에서도 가성비만큼이나 내 마음이 얼마나 흡족한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소확행(작고 확실한 행복)’, ‘나심비(내가 좋다면 가격 안 따짐)’, ‘탕진잼(돈을 마구 써서 기분이 좋아짐)’ 같은 흐름의 연속인 셈이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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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운동 등 목표 달성하면 금리 덤으로

가심비는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인구변화에 따른 소비시장 신풍경과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인구변화가 가져온 소비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어르신 시장 확대, 나홀로 소비 증가와 함께 꼽은 ‘가치소비 확산’과 일맥상통한다. 작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선정한 10대 소비 트렌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대한상의는 “가심비, 소확행과 같은 신조어에서 확인되듯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소비를 거부하고 나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 불황기 마케팅 전략이었던 ‘작은 사치’가 젊은 세대에서 고령 세대까지 확산되고, 소매유통업에서 체험형, 견학형, 인스타그램형, 시간체제형 경험소비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금융권도 가심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최신 성향에 맞춘 ‘독특한 가치와 감성 제공’ 등과 같은 대응전략을 내놓고 있다. 최근 은행들은 소비자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 달성에 성공할 경우 금리 혜택을 주는 상품을 잇달아 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른바 ‘Do it yourself형 상품’으로 금연이나 다이어트 등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천하면 우대금리를 적용받는 식이다. 여기에 은행들은 상품에 ‘재미있는 저축(fun saving)’이라는 전략도 포함시켜 소비자들의 자발적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출시한 ‘NH올원해봄적금’이 대표적이다. 이 상품은 고객이 금연, 다이어트, 커피 줄이기 등 자신만의 도전 목표를 설정한 뒤 매일 성공할 때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올원뱅크에 마련된 버튼을 누르면 입금이 가능하도록 했다. 목표 달성률 등에 따라 최대 1.0%포인트의 우대금리가 더해져 성취감과 금리 혜택을 모두 잡을 수 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목표 설정이 가능한 고객맞춤형 상품으로 효율성을 높인 데다 고객이 심리적 만족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다이어트나 금연 등 가입자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금리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우리은행의 ‘위비 꾹 적금’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납입금액은 월 최대 30만원으로 납입기간은 6개월 또는 12개월 중 선택할 수 있다. 가입도 우리은행 모바일 앱인 ‘위비뱅크’에서 가입 가능하며 로그인과 인증서, 비밀번호 입력도 필요 없다. 미리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했거나 적금 생각이 날 때 ‘꾹’ 버튼만 누르면 로그인이나 인증서 없이도 자동 적립된다.

KEB하나은행의 ‘도전 365적금’은 고객들의 활동량에 기반을 둔 이색 적금상품이다. 가입 후 11개월 동안 스마트폰 앱으로 측정한 걸음 수가 200만~300만 보면 연 1.0%포인트, 300만~350만 보 이상이면 연 2.0%포인트, 걸음 수 350만 보 이상은 연 2.35%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월 적립 최대금액은 20만원이고, 걸음 수에 따라 최고 연 3.75%의 금리를 적용받는다. 가입일 기준 만 65세 이상 고령자는 연 0.1%포인트의 우대금리가 추가로 주어진다. 

 

걸을 때마다 우대금리…게임하듯 저축도

쌈짓돈을 차곡차곡 모아 불린다는 기존의 취지는 살리면서 가입 부담은 줄이고 재미와 참여는 더해 금융상품 가입에 소극적이던 젊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금융상품들도 있다. 

신한은행은 ‘작심삼일도 여러 번 반복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쏠편한 작심 3일 적금’이란 상품을 내놔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상품은 자유적립식 적금이지만 고객이 최대 3개 요일을 지정해 자동이체를 할 수 있고, 자동이체 등록 요일 수에 따라 우대금리가 0.1%포인트씩 가산되게 설계됐다. 요일 지정으로 저축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1~3년간 저축해야 했던 적금 대비 6개월이라는 짧은 만기로 문턱을 낮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적금 경과 일수에 따라 웹툰을 제공해, 만기까지 웹툰을 보며 재미있게 돈을 납입할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요일별 소액 이체로 부담 없이 적립할 수 있도록 했고 웹툰과 결합해 재미까지 더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적금 상품을 ‘게임’처럼 구현해 젊은 층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KB SMART 폰 적금’은 매일 습관처럼 쓰는 소액의 돈을 게임하듯 모으도록 했다. 즉 해당 상품 앱에서 커피 값과 택시비 등 습관적으로 나가는 지출을 표기한 아이콘을 누르면, 해당 금액이 바로 통장에 입금된다. 이렇게 모인 통장의 잔액현황은 가상의 농장으로 구현돼 자신도 모르게 나가는 소소한 돈을 재미있게 모을 수 있게 했다.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은 저축하는 재미를 키워줄 수 있는 ‘26주 적금’이라는 상품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10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1만원 가운데 하나를 첫 주 납입금액으로 선택한 뒤 매주 그 금액만큼 증액해 돈을 모으는 방식이다. 만약 첫 주 월요일에 1000원을 선택하면 다음 주 월요일에는 2000원, 셋째 주에는 3000원, 마지막 주차 월요일에는 2만6000원을 납입하게 된다. 매주 납입에 성공하면 보유할 수 있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가 하나씩 늘어난다. 도전 현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할 수도 있다. 대부분 6개월, 12개월, 24개월로 돼 있는 적금 공식을 깨고 26주 적금을 선보인 점도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들은 광고 전략도 새롭게 바꾸고 있다. 기존에는 고객의 돈을 다루는 만큼 신뢰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중·장년층 모델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아이돌 마케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는 동시에 보수적 이미지를 벗고 미래 핵심 고객인 청년층들의 ‘가심비’를 겨냥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민은행이 선보인 ‘KB X BTS 적금’ 통장 ⓒ KB국민은행
국민은행이 선보인 ‘KB X BTS 적금’ 통장 ⓒ KB국민은행

‘아이돌 마케팅’으로 미래고객 사로잡기 

농협은행은 최근 신인 걸그룹 ‘공원소녀’와 ‘농가소득 올라올라 캠페인’ 및 자사 SNS 광고모델 계약을 맺었다. 농업과 농촌 연관 이미지가 강한 농협은행이 아이돌 모델을 기용한 건 처음이다. 농협은행은 “10대와 20대에게 농업 및 농촌에 대한 관심을 높일 방안으로 젊고 통통 튀는 신인 아이돌을 광고모델로 위촉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걸그룹 ‘블랙핑크’와 광고모델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은행은 “세계적 걸그룹으로 성장한 블랙핑크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은행으로 성장하려는 우리은행의 이미지와 부합해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5월부터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 《고등래퍼2》 우승자 김하온을 광고모델로 두고 있다. 이전 광고모델은 배우 안성기였다. 하나은행은 “래퍼로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김하온의 인생 스토리에 주목했다”며 김하온의 이미지와 혁신 금융을 연결 지었다. 

은행들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초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방탄소년단, 워너원을 모델로 기용하면서 본격화됐다. 아이돌은 충성도 높은 수십만 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어 상품 판매로 이어지거나 마케팅 효과도 높다. 

지난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 덕에 국민은행이 작년 6월 출시한 방탄소년단 적금 상품은 지금까지 총 23만 좌가 넘게 판매됐다. 한시 판매형 적금은 초반에 가입자가 몰리다가 후반에는 인기가 떨어지지는 것이 특징이지만, 방탄소년단 적금의 경우 첫 석 달간 12만 좌가 팔린 데 이어 꾸준히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적금은 최근 젊은 세대가 중시하는 가심비가 금융상품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을 받고 있다. 분명 더 좋은 조건의 금융상품이 있지만, 적금 가입 시 방탄소년단 이미지가 담긴 통장을 받을 수 있고 방탄소년단 데뷔 날짜와 멤버별 생일에 적금을 납입한 경우 0.1%포인트 우대금리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 등에 고객들의 마음은 분명히 움직였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국민은행은 지난달 방탄소년단과 재계약을 맺었다. 이 적금 상품의 판매기간도 2월말까지로 연장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2월 통합 앱 ‘쏠’을 출시하면서 워너원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덕분에 800만여 명이 가입했다. 지난해 11월 워너원과 계약이 만료된 신한은행은 ‘워너원 히트’를 이어갈 후속 홍보모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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