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냐 제재완화냐’ 다시 262일 전으로 돌아간 北·美(종합)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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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발목 잡은 원론…트럼프 “불만족스런 합의 하느니 결렬”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동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현지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동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합의문에 서명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 단상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특유의 자신감과 유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실망스런 회담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말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회담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인 2월28일 오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확대회담장에서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의 답"이라고 치켜세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북·미 양 측은 '핵 포기냐 제재 완화냐'라는 원초적인 논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북한)와 '대북 안전 보장 제공'(미국)이란 두루뭉술한 공약을 맞교환한 지난해 6월12일 1차 정상회담 때로 회귀한 것이다. 이후 262일 동안 서로 신경전을 이어가며, 때론 실무회담을 통해 의견 차를 좁혔던 모든 과정을 무색케 하는 허탈한 결과물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회담장인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호텔에서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은 채 각각 숙소로 복귀했다. 오찬 일정도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인 JW메리어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회담 결렬 이유에 관해 "(대북) 제재가 쟁점이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북한이 제재 완화를 요구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면서 "합의문에 서명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최악의 상황 앞에선 회피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회담 결렬이 본인의 의중인 지'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로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완화는 굉장히 큰 것이나, 우리가 원하는 걸(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이루기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한 기자가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α)를 북한에 원했던 것 아니냐"고 질문하니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더 필요했다"고 답했다. 이어 "(핵과 관련해 그간)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게 있었다"라며 물증을 들어 추가 비핵화 조치를 북 측에 종용했음을 시사했다. 영변 이외 지역의 비공개 우라늄 농축시설 존재를 거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알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이 놀랐던 듯하다"며 북한에 대한 불신감도 나타냈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다면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었을 지'를 묻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핵시설이 있다"면서 "미사일이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 체계도 빠져 있었다. (핵)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들을 오늘 합의하지 못했다"며 북 측의 미비한 태도에 대해 부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 북한과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며 향후 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차단하진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앞으로 몇 주 이내에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회담 첫 날인 2월27일 오후 단독회담과 만찬을 진행한 데 이어 이날도 오전 8시55분께 부터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을 이어갔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지난해 6·12 싱가포르 1차 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구체화해 합의문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이날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시간이 앞당겨질 때부터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백악관은 확대회담 도중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시간이 오후 4시에서 오후 2시로 변경됐다고 돌연 밝혔다. 공식 발표도 아닌, 백악관 풀기자를 통해서였다. 합의문 서명식 개최 여부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방증이다.

낙관하던 우리 정부도 당혹감에 휩싸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결렬 직전 정례브리핑 때만 해도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 대변인은 당시 "오늘 회담 결과에 따라 남북 간 대화의 속도·깊이가 달라지겠지만, 잠시 휴지기에 있었던 남북 대화가 다시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 연기와 합의문 서명식·오찬 취소, 회담 결렬 소식이 뒤따른 상황을 청와대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합의문 서명식을 TV 생중계로 주요 참모들과 함께 지켜볼 계획이었다. 

한편,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등 미국 내 진보진영의 '북·미 대화 회의론'에 강력 반발하며 핵 담판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빈 손으로 돌아가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국 내 정치 상황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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