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결렬’ 막 내린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막전막후
  • 하노이(베트남)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1 13: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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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평화를 향한 여정, 화려함 뒤의 냉혹함 일깨워
회담 결렬 후, 트럼프와 통화한 문재인 대통령의 다음 카드 주목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의 충돌, 결론은 일단 보류, 해답은 다음(Next)에….” 

한반도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갑작스러운 비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아쉽게 막을 내렸다. 현재로선 다음번 회담조차 예상하기 힘들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까운 미래에 정상회담이 또 열리냐’는 질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오늘 합의안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만족하지 못해 잠시 보류했다”고 말했다.  

‘톱다운’(Top-Down·하향식) 협상에 있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됐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다. 정상국가 간 회담의 경우 실무진들이 합의안을 거의 마련하고 정상 간의 만남은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반면, 북·미 회담은 정상 간 일대일 담판 성격이 강했다. 선순환 구조가 된다면 진행속도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이번 하노이 회담은 애초부터 기대감이 남달랐다. 미국 등 서구 언론들은 1차 회담 때를 떠올리며 ‘소문만 요란한 잔치’가 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장에서 진행된 북·미 양측의 실무회담은 생산적인 만남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의제 설정부터 회담 진행방식이 일반적인 국가 간 정상회담의 형식을 갖췄다는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2월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 PEA 연합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2월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 PEA 연합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이상 기운 감지

공식 회담이 시작된 2월27일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모든 사람이 반기는 결과를 만들겠다”고 말해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에 화답하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처음 싱가포르에서 만난 것처럼 이번 회담도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믿는다. 첫 번째 회담만큼 또는 더 큰 성공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뭔가 성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이 있을 경우 대규모 경제 지원이 있을 것으로 말한 것도 긍정적인 대목이었다. 

하노이 현지에서 이를 바라보는 북핵 전문가들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월26일 하노이 국제미디어센터(IMC) 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이 비핵·평화 프로세스라는 터전을 잡은 것이고,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이 4개의 기둥(4개 합의사항)을 세운 것이라면 이번 회담은 지붕을 올리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차 회담의 경우 회담이 열리기 전 미국 측이 워낙 기대감을 높여 결과가 예상치를 크게 빗나갔지만, 국가 간 협상이라는 프로세스에서 보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소장도 “64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기차를 타고 김정은 위원장이 온다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부터 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할 거라면 회담 자체는 열리지 않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전문가들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양 정상의 화려한 수사와 달리, 회담장 분위기가 100%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2월27일 저녁 만찬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얼굴은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말해 1차 회담 직후 합의안 이행을 놓고 북·미 간 갈등을 빚었음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이때만 해도 프레스센터를 비롯해 회담장 주변에서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 미 의회나 주류 언론을 향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전까지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언론들은 미국을 향해 합의 이행을 요구하면서도 대화 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을 감싸는 대신 민주당 등 의회나 언론들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2차 회담에 첫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의 외모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엿보였다. 1차 회담 때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나온 것과 달리 이날 김 위원장은 평상시처럼 안경을 벗은 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안경을 쓴 김 위원장은 다소 어색해 보일 수 있다. 북한 주요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김 위원장은 대체로 안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다. 따라서 1차 회담 때 다소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안경을 썼다면 이번 2차 회담에서는 자신의 평소 모습으로 ‘뭔가 확실한 보상을 받으러 왔다’는 의미를 연출하고자 했다고 봐야 한다. 

이상 기운이 감지된 것은 2월28일 오전 9시(이하 현지 시각)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 전 진행된 모두발언에서다. 이 자리에서 표면상으로 두 정상은 서로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회담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일부 발언에서 양측의 시각차가 있었음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예가 ‘속도’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트럼트 대통령의 발언 뒤에 김 위원장은 “우리에겐 시간이 제일 귀중한데 편안한 시간을 주셔서…”라고 말을 흘렸다. 김 위원장으로선 대북제재 해제가 뒤로 밀리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 차례 “(협상에) 서두를 생각이 전혀 없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 협상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1차 회담 직후 “우리가 그들에게 준 게 없다.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고, 핵실험도 없었다. 그런데 제재는 여전하지 않은가”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2월28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대북제재를 해제하기는 힘들다”고 밝혀 한반도에 경색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 연합

구체적 이행 방안 두고 이견

오전 실무자들이 배석한 확대회담에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맞은편 북한 측 실무자석이 빈 것이 확인된 순간부터 하노이 현지에서는 불안한 기운이 감지됐다. 볼턴 보좌관은 비핵화 협상에 있어 ‘슈퍼 매파’로 불리는 미국 측 인사다. 1차 때 볼턴 보좌관 맞은편에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앉았다. 1차 회담 때를 참고한다면,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이 참석했어야 했다.  

낮 12시45분 세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의 메시지가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전달되면서 회담장 주변의 분위기는 일순간 바뀌었다. “협상이 30분 안에 마무리된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호텔로 돌아가 2시에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다.”

당초 확대회담을 끝마친 뒤 두 정상은 오찬에 들어가 오후 2시경 합의문 서명식을 갖고 오후 4시에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었다. 1시25분 두 정상은 각자의 차량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오찬 및 합의문 조인식이 전격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숙소로 출발한 직후 샌더스 대변인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협상팀은 추후 다시 만나길 희망하며, 2월27일부터 1박2일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만남이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회담은 왜 깨진 것일까. 스티븐 비건이 평양에 다녀와 의제를 마련하고 종전선언을 의미하는 발언을 할 때까지만 해도 북·미 사이에는 장밋빛 기대감이 많았다. 그런데도 회담이 다음 약속도 정하지 못한 채 끝난 것은 여러 면에서 궁금증이 남는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회담 결렬 직후 CNN에 출연해 ‘준비 부족’을 꼬집었다. 1차 실무 회담에서는 향후 가능성을 보고 기초만 다지는 선에서 합의했지만 2차 회담 때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양측이 이견을 보였다는 것이다. 

비핵화 이행 방안과 대북제재 해제는 양측이 가장 큰 이견을 보인 사항이다. 회담장 주변에서는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 등 진전된 비핵화 이행 방안을 받고 북한에 종전선언과 부분 제재 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선물로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회담 직후 공개된 내용을 보면 양측은 이 부분에서 한 발자국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제재조치가 완화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없애는 거였는데, 현재 수준에서 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대북제재가 완전히 해제되길 바라지만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걸 없애야 한다”고 말해 북한의 추가 조치 없이는 당분간 대북제재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화 순서에 대한 합의점조차 찾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비핵화 순서에 대해서도 완전히 합의하지 못했다. (신고)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해 미국의 비핵화 협상에서 신고가 우선됐음을 설명했다.

그동안 일부 외신은 미국의 비핵화 순서가 ‘신고→사찰→검증’에서 ‘사찰→검증→신고’ 순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신고’ 우선인 미국의 전통적 방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했다. 북·미 간 협상이 앞으로도 쉽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차 회담 기간 동안 미국이 비핵화 선행 조치에 따라 대규모 경제 지원을 약속한 것에 대해 북한이 선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것은 해외 자본에 의한 경제 개발보다는 북한 주도적인 경제 재건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26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평양역에서 출발한 김 위원장은 중국을 종단해 65시간40분 만에 베트남에 입성했다. ⓒ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26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평양역에서 출발한 김 위원장은 중국을 종단해 65시간40분 만에 베트남에 입성했다. ⓒ 연합뉴스

예상 밖 상황, 문재인 대통령의 카드 주목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 관계도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전망이다. 당초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여세를 몰아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현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구체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재자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1차 싱가포르 회담 직후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 돌파구를 마련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당시는 협상 대리인 간 견해차였다면, 이번은 최고지도자 간 이견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가 주목된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력이 훼손돼선 안 된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왔다. 이런 기조에서 볼 때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를 뛰어넘어 선행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문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 이유는 ‘돈’ 때문인데, 수억 달러를 들여서 이 훈련을 하는 건 불공평하다. 한국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해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강하게 밀어붙일 의사를 내비쳤다. 중국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에) 많은 지원을 했다. 북·중 국경에서 북한 무역의 93%가 진행된다. 김 위원장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해 우회적으로 중국의 대북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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