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대·기아차 내부문건으로 본 세타2엔진 결함 은폐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7 09:3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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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로 세타2엔진 결함 문제 수면 위로…내부문건에 은폐 정황 다수 포착

현대·기아차가 최근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세타2엔진 등 차량 제작결함을 은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세타2엔진은 그랜저와 쏘나타, K5 등 현대·기아차 주력 차종에 탑재된 엔진이다. 이번 수사는 국토교통부(국토부)와 시민단체의 고발에서 비롯됐다. 국토부는 2017년 5월 세타2엔진 등 제작결함 5건에 대한 강제 리콜을 명령하면서 의도적인 결함 은폐가 의심된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같은 시기 YMCA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을 자동차관리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현대·기아차는 주력 차종에 적용되는 세타2엔진의 결함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현대차 제공
현대·기아차는 주력 차종에 적용되는 세타2엔진의 결함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현대차 제공

세타2엔진의 결함은 사실 해묵은 논란이다. 국내에선 2010년 처음 문제가 제기됐다. 주행 중 시동꺼짐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면서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당시 결함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타2엔진 결함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이슈화된 것은 2015년 미국에서 소음과 진동, 시동꺼짐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서다. 그 원인으로는 ‘콘로드 베어링’ 불량이 지목됐다. 현대·기아차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미국도로교통안전국(NHTSA)과의 협의를 통해 2011년과 2012년 생산된 쏘나타(YF)의 리콜을 결정했고, 쏘나타 소비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에서도 차량 수리비용 전액을 보상키로 합의했다.

 

현대차 내부 문건에 결함 은폐 정황 다수

반면, 동일한 엔진이 적용된 국내 차량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미국 엔진 생산공장의 청정도 관리 문제로 콘로드 베어링에 이물질이 들어가면서 발생한 불량으로 국내 차량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세타2엔진이 탑재된 국내 차량에서도 시동꺼짐 등의 현상이 계속되면서 현대·기아차의 엔진 결함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그 베일이 벗겨진 것은 2016년 9월 현대차의 한 엔지니어가 세타2엔진 결함 은폐·축소 사실 등을 공익제보 하면서다. 국토부는 제보 문건을 토대로 품질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세타2엔진의 결함과 현대·기아차의 결함 은폐 가능성을 파악했다.

현대·기아차는 줄곧 결함 은폐는 없었다는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공익제보 과정에서 국토부 등에 제출된 현대차의 ‘YF 세타 콘로드 베어링 고장(YF Theta Con-rod bearing Failure)’ 문건에는 결함을 인지하고도 숨기려 한 정황이 담겨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자료에는 우선 현대차 쏘나타(YF)의 미국 내 콘로드 베어링 불량률이 0.10%로 명시돼 있다. 반면 같은 차종의 국내 불량률은 0.15%로 미국보다 높았다. 기아차의 K5(TF)도 미국과 국내의 불량률이 각각 0.12%와 0.10%로 큰 차이가 없었고, 세타2엔진이 탑재된 전체 차종의 불량률에서는 한국(0.13%)이 미국(0.12%)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가 국내에서 생산된 세타2엔진의 결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료상 콘로드 베어링의 사용 기간과 주행거리별 불량률을 봐도 ‘이물질에 의해 미국에서만 발생한 불량’이라는 현대·기아차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자동차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물질에 의한 베어링 소착 문제는 사용 초기 1만 마일(1만6093km) 이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료에는 주행거리 1만 마일 이내 불량률은 전체의 9%에 불과한 것으로 적혀 있다. 6만 마일(9만6560km) 이상 구간의 불량률이 22%로 가장 높았고, 전체 불량률의 79%가 평균 5만 마일(8만467km)에서 발생했다.

2013년 1월 이물질 제거를 위한 ‘스프레이 분사 방식(Wet Blast)’을 미국 내 생산공장 공정에 추가한 이후의 불량률 추이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3년 생산 차량의 2년 사용 기준 불량률은 0.011%로 이물질 제거 공정 추가 전인 2011년(0.013%)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2014년 생산된 차량의 사용 기간 1년 이내 불량률(0.023%)은 2011년(0.010%)과 2012년(0.018%)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물질 제거가 불량률 해소에 이렇다 할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세타2엔진 결함이 국내 차량과는 무관하다는 현대·기아차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문건에는 현대·기아차가 결함 조사를 회피하기 위해 노력한 정황이 담겨 있다. 먼저 2013년 12월 기아차 K5 엔진이 파손됐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정식 결함 조사 차단하기 위해 유니크 불량으로 대응’이라고 적시돼 있다. 또 2014년 11월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이 엔진 고품 합동조사를 요청한 데 대한 대응이 ‘사전 고품 조사 결과 동일 문제 확인해 조사 차단함’이라고 나타나 있다. 현대차의 주장대로 국내에서 생산된 세타2엔진에 결함이 없다면 정식 조사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현대·기아차는 2월20일 차량 제작결함을 은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 연합뉴스
현대·기아차는 2월20일 차량 제작결함을 은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결함을 숨겨서 현대·기아차가 얻게 될 이득은 무엇일까. 답은 ‘막대한 비용 절감’이다. 결함이 확인돼 리콜을 실시할 경우 투입이 예상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문건 내 ‘현장 행동 전략(Field Action Strategy)’ 항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파트에는 미국 내 엔진 결함에 따른 대응별 투입 예상 비용이 명시돼 있다. 현대차는 세타2엔진 탑재 전체 차종에 대해 서비스 점검을 실시해 문제 발견 시 엔진을 교체하면 1100억원이, 보증기간을 연장해 문제가 발생한 차량만 엔진을 교체할 경우 2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리콜을 실시해 모든 차량의 엔진을 교체할 경우 비용은 한없이 치솟는다. 문건에 명시된 현대차의 예상 리콜 비용은 무려 2조원에 달한다. ‘보증기간 연장’보다 100배 많은 액수다. 국내에서 엔진 결함 의혹과 관련해 현대·기아차가 처음 내놓은 대책도 바로 보증기간 연장이었다. 가장 ‘저렴한’ 대응을 선택한 셈이다. 현대·기아차가 기존의 주장을 뒤집어 엔진 제작결함을 인정하고 17만 대 규모의 자체 리콜 계획을 발표한 것은 국토부가 리콜 여부 심사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다. 이후 국토부는 엔진 품질조사를 거쳐 23만8000대 규모의 강제리콜 명령을 현대·기아차에 내렸다.

 

리콜 비용, 보증기간 연장 비용의 100배

이번 수사 결과, 결함 은폐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현대·기아차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자동차관리법에는 결함을 은폐·축소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은폐가 적발돼도 최대 1억원만 내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사실상 ‘솜방망이’다. 이처럼 낮은 처벌 수위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결함 은폐가 빈번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실제 현대차 엔지니어 출신의 공익제보자는 세타2엔진 외에 30건의 리콜 미신고 사례를 제보했다.

현대·기아차가 유독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배경도 처벌 수위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결함을 인지한 후 5일 이내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5-Day Rule’ 등 리콜 관련 법규를 위반하면 최대 1억500만 달러(1174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인한 손해배상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실제 일본 도요타와 미국 GM은 미국 내에서 차량 급발진과 엔진 점화장치 결함 사실을 은폐했다가 각각 6조원과 30조원에 달하는 추정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엔진 결함 은폐 의혹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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