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름의 ‘노선영 폭언’ 주장과 노선영의 전명규 고소 움직임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3 11: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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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빙상계는 ‘기-승-전-명규’인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김보름과 노선영의 갈등

김보름 선수는 노선영 선수와의 진실 공방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파문을 몰고 온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의 이른바 ‘왕따 사건’은 문체부가 대한빙상경기연맹을 특정감사 한 결과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보름 선수가 지난 1월 한 케이블TV 방송에 출연해 노선영 선수에게 ‘7년여 동안 자신에게 계속해 온 언어폭력 등’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노선영은 “지금은 대답할 때가 아니다”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보름, 노선영 왕따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보름과 노선영의 주장 가운데 누구의 말이 맞는지 여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시점에 그런 얘기가 나왔느냐는 것이다. 김보름이 왕따 주행 논란으로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고의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고, 이제 김보름을 바라보는 시선도 작년처럼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김보름도 열심히 훈련을 해서 2019 시즌 월드컵 시리즈 매스스타트에서 메달을 땄고, 2월22일 막을 내린 동계체육대회에서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m와  3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해 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김보름의 한국체대 4년 선배인 노선영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그런데 김보름이 느닷없이 ‘폭언설’을 터트린 것이다. 과연 김보름 선수 혼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지금 많은 국민들은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야기된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 사건의 재판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조재범 전 코치의 심석희에 대한 성폭행은 심 선수의 메모 등으로 확인되었지만, 과연 재판부가 조 전 코치의 강제성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강제성이 인정되면 10년 이상의 징역은 물론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2018년 2월24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보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2월24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보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폭행’ 조재범 코치의 형량에 관심 많아

빙상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김보름-노선영 간의 진실공방’보다는 네덜란드 보프 더용 코치의 재계약 불발과 폭행설에 휘말린 이승훈 선수의 잠적을 더 궁금해한다. 보프 더용 코치는 스피드스케이팅 종주국 네덜란드에서 21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4차례나 올림픽 무대에 출전해 금메달 1개를 포함해 총 4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종목별선수권에서도 1만m 5차례와 5000m 2차례의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장거리 간판스타 출신이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에서 ‘노선영 왕따 논란’이 일어났을 때도 한국 선수단 가운데 유일하게 노선영에게 다가가 어깨를 도닥이며 위로해 주기도 했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역대 최다인 7개(금1, 은4, 동2)의 메달을 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보프 더용 코치는 2017년 4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해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10개월 동안 있었는데, 연임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평창 여행이 끝났다”고 사실상 결별을 통고한 바 있다. 보프 더용은 한국에서의 코치 생활이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고 말한다. 집행부와의 갈등이 심했던 모양이다. 보프 더용은 결국 중국 빙상연맹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계약을 했다. 한국 빙상계가 유능한 코치를 놓친 것이다. 

당시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전락한 대한빙상연맹의 집행부는 사실상 전명규 전 부회장이 통괄했었다. 한국체대 출신의 빙상선수 가운데 맏형 격인 이승훈 선수는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내며 전설을 쌓아 나가고 있는 선수다. 

그런데 문체부가 지난해 특정감사를 통해 이승훈이 여러 차례 후배를 폭행했다는 의혹을 공개했다. 노태강 차관은 “이승훈 선수의 후배 선수들이 ‘2013년 독일 해외 훈련 도중 이승훈 선배가 머리를 때렸다, 2016년 네덜란드 4차 월드컵 때는 식당에서 밥알이 자신에게 튀었다는 이유로 머리를 내리쳤다’는 등 상세하고 일관성 있게 진술하고 있어 대한빙상경기연맹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 마라톤’에 출전한다며 네덜란드로 떠난 이후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혹시 누가 이승훈 선수에게 잠잠해질 때까지 ‘잠수를 타라’고 조언한 것은 아닐까?

2월20일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500m에 출전한 노선영이 경기를 마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2월20일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500m에 출전한 노선영이 경기를 마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승훈은 어디 갔을까

노선영 선수는 지난 2월21일 자신의 동생 노진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전명규 전 부회장을 고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자 쇼트트랙의 최고 유망주였던 노진규는 지난 2013년 골육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 2년여 만인 2016년 4월 사망했다. 노선영은, 전 전 부회장이 2013년 9월 당시 노진규 선수가 월드컵대회에서 골절상이 있었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게 했고, 종양 판정을 받은 뒤에도 강압적으로 월드컵 출전을 강요했으며, 증상이 악화됐는데도 강도 높은 훈련을 강요해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1996년 5월19일, 평소 체중 77kg인 정세훈 선수는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65kg급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체중을 맞추려고 사우나실을 드나들어야 했다. 정 선수는 마지막 1kg을 남겨놓고 사우나실에 들어갔다가 끝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태릉선수촌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사건이었다. 당시 정세훈 선수가 들어간 사우나실을 막아서며 독려했던 안병근 코치는 나중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세훈 선수, 안병근 코치의 전례로 볼 때 이번 노선영의 전명규 전 부회장 고소 건은 무혐의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전 전 부회장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그동안 노선영이 현역선수라서 고소를 미뤄왔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노선영은 지난 2월말 은퇴했기 때문에 이제 자유롭게 고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선영의 이 같은 행동이 전 전 부회장이 차지하는 빙상계에서의 비중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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