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공’과 ‘어공’ 엇박자에 헛도는 靑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4 15:00
  • 호수 15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맥이 빠진다” 청와대에서 자조 흘러나오는 이유

“맥이 빠진다.” 최근 청와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만나면 자주 듣게 되는 한숨 소리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피로감이 누적될 만하다. 사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임기 반환점을 향해 달리는 청와대에 개혁 피로감이 쌓이는 건 자연스럽다. 어떤 정권도 피해 가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집권 3년 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맥이 빠진다”는 자조는 피로감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혁의 피로감, 미진한 개혁 성과, 고용 대란과 경제위기, 지지율 정체 등에서 오는 피로감은 ‘맥이 빠지는’ 핵심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기강해이’ ‘복지부동’ ‘실종된 성과주의’ ‘납득할 수 없는 인사’ 등과 같은 문제들이 청와대 공무원들을 축 처지게 하는 핵심 요인들이다. 늘공(늘 공무원, 직업공무원)들과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무직 공무원)들의 관계에서도 시너지는 나지 않고 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늘공들은 총선과 총선 이후만 바라보는 어공들이 답답하고, 어공들은 개혁에 속도를 내지 않는 늘공들을 갑갑하게 보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 최근 “맥이 빠진다”는 한숨 소리가 자주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복귀하고픈 늘공, 자원자 없는 부처

“파견 나온 늘공들이 부처 복귀만 목 빼고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일이 제대로 돌아가겠나.” 청와대 정책파트에서 일하는 한 어공의 이야기다. 경제부처에서 파견 나온 한 늘공은 기자에게 “지칠 만큼 지쳤고 할 만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분위기는 일시적이거나 일부의 일이 아니다. 최소한 경제정책 파트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겹치고 쌓여 “청와대가 헛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복귀를 원하는 늘공들을 교체해 줄 대타들이 부처 내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늘공 행정관은 “부처 내에서 청와대 파견을 꺼리다 보니 복귀하고 싶어도 대타가 없어 파견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관가에서 ‘청와대 파견=승진’이라는 공식은 오랫동안 통용돼 왔다. 이 공식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처 내 ‘에이스’만 청와대로 파견되고, 복귀할 때는 한 단계 승진이 대부분 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파견을 원하는 공무원들은 점점 줄어드는 모습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시사저널은 최근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늘공들을 집중 취재했고, 몇 가지 공통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청와대 파견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살인적인 업무강도가 계속되는데 업무성과는 크게 나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가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상당수 늘공들이 원대 복귀를 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크게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라는 말로 요약이 가능했다. 의외로 늘공들은 어공들이 비전과 노선을 제시하고 그를 실현할 디테일을 자신들이 뒷받침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에 대해서도 예상 이상의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늘공들은 정작 어공들이 권한만 행사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컸다. 한 늘공은 “정책 성과로 평가받아야 할 어공들이 벌써부터 총선 준비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늘공은 “일례로 일자리 문제에 책임 있는 대다수 꼭짓점(수장)들 상당수가 어공인데 대부분이 총선에 출마한다”며 “오히려 어공들이 대통령에게 부담과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는 예상보다 늘공들을 웅크려들게 만들었다. 정책파트의 한 늘공은 “어차피 몇 달 후면 다시 수장이 바뀐다”며 “우리라고 무한정 새로운 정책과 아이디어가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당분간 ‘잠시 멈춤’ 모드로 있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관가 전체의 ‘소극 행정’을 질타하며 “적극 행정은 문책하지 않고 장려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소극 행정이나 부작위 행정은 문책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라”고 지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도 이런 점을 아예 모르고 있진 않다. 문재인 의원실 출신으로 국정상황실에서 윤건영 실장을 보좌하던 신혜현 행정관을 정책실로 이동 배치해 업무 장악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21일 대통령이 실시한 두 명의 인사에 대한 웅성거림이 청와대를 넘어 바깥까지 흘러나왔다. 언론은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에 위촉된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지만, 정작 청와대 내부에서는 비서관(1급)으로 승진한 고민정 부대변인에 대한 갑론을박이 쏟아져 나왔다. 

청와대는 고 부대변인에 대한 승진 이유를 “대변인실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고 부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인재 영입 1호’로 발탁한 인물로 그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 인사다. 그는 지난 1월 사의설이 돌자 “개인적 이유로 장기간 휴가 중이었다”고 부인한 바 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가 원칙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한다. 고 부대변인이 자신의 승진을 걸고 사실상 사표를 던졌다고 보는 시각에서 나오는 불만이다. 이런 시선에서 보면, 조직의 기강을 해쳤는데 오히려 승진이라는 선물을 받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 내부에서는 고 부대변인이 승진할 만큼 어떤 특출난 성과를 냈느냐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영남권 갈등에 다시 불을 붙인 동남권 신공항 논란이 고 부대변인이 친 ‘사고’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엄청난 휘발성이 있는 사안인데도 충분한 내부 소통과 숙고 없이 브리핑을 해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청와대의 한 행정관은 “고 부대변인 승진에 대해 여러 뒷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게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라 여겨지는 공정, 원칙과 동떨어졌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어공은 “고 부대변인의 인사로 갑론을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최근 청와대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며 “다들 현재의 정책과제에 집중하기보단 승진이나 인사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직 기강이 이완되고, 청와대가 총선 등 외부 스케줄에 시선을 뺏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최근 간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행정관은 “다들 자기 방이라 쉬쉬하고 넘어가서 그렇지 무단으로 결근하거나 승진과 인사에 대한 불만을 갖고 조직 내 기강을 해치는 일들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부 사정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