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 간파 당한 김정은, 데드라인 공개도 치명적 실수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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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협상 전략으로 되돌아본 2차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8개월 만에 베트남에서 다시 만났을 때 두 정상의 협상이 결렬로 끝날 것이라고 예측한 국내외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정상회담 전부터 미국과 북한의 실무진이 지속적으로 만나며 수차례 협상 안건을 다듬고 조율했다. 2월28일 단독 확대 정상회담 이후 두 정상이 서명할 합의문까지 이미 준비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타결이 아닌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공식적인 인터뷰를 통해 이를 대내외에 알렸다. 가히 전 세계를 당황하게 만든 긴급 속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의 단독 회담을 마치고 회담장 주변을 거닐며 얘기하고 있다. ⓒ AP/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의 단독 회담을 마치고 회담장 주변을 거닐며 얘기하고 있다. ⓒ AP/뉴시스

정상회담이 진행된 2월28일 오전만 하더라도 협상 결렬을 예측한 이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여러 차례 두 정상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실무진과 대통령 간의 유쾌한 모습이 언론사의 카메라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함께 산책하던 중 일명 ‘비스트(BEAST)’라고 불리는 미국 대통령 전용 리무진 캐딜락 원의 내부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날 만찬 회담 이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캐딜락 원 자동차 내부에서 웃음을 보이며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언론사에 노출되어 모든 이들도 순조로운 협상을 예견할 수밖에 없었다. 실무진의 막판 조율과 친교만찬까지 시종일관 우호적인 분위기로 진행됐다.

두 정상이 협상 회담 전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결렬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상회담이 진행되기 전 실무진과의 협상 조율 과정에서 북한이 공언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서 미국과 북한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협상 타결을 기대하고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선언하기 위해 준비할 정도였다. 그러나 협상 결렬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또 다시 난관에 봉착되었다. 

협상에 치명적인 데드라인 공개한 김정은 

수많은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협상 결렬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전하며 두 정상의 협상 타결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단 김 위원장은 협상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두 정상이 공식적으로 대외 인터뷰에 응했을 때 김 위원장은 ‘우리에게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올바른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있다’는 점을 수차례 반복 강조하며 북한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협상에서 가장 유명한 전략 중 하나는 시간 전술(지연 전술)이다. 시간과 협상력은 정비례 관계에 있다. 중요한 협상에 마주한 두 당사자는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충분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력을 총동원한다. 상대의 데드라인을 알고 있을 때 시간으로 이를 압박한다. 초조함과 당황을 유발하면 협상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기에 시간 전술은 국제 협상에서 종종 활용된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몸이 편치 않은 관계로 빨리 정상회담을 끝내고 싶어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회담을 질질 끈 점은 시간 전술의 유명한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스탈린은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상당한 양보를 받았다. 이후 수많은 협상 관련 학술논문에서도 상대에게 자신의 시간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다양한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김 위원장은 세계 최고의 협상가라고 자신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1분, 1초가 소중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노출했다. 트럼프와 미국의 협상팀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트럼프는 이후 ‘서두르지 않겠다’며 북한과 상반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줬다. 김 위원장의 첫 번째 실수였다. 

트럼프에게 속내 간파 당한 김정은

김 위원장의 두 번째 치명적 실수는 미국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않은 채 협상 결과를 낙관했다는 점이다. 정상회담 전, 북한이 약속한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공감대를 형성한 후 김 위원장은 협상의 안건과 프레임(Frame)을 영변 핵 시설 폐기로 국한하고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약속 받지 못한 트럼프 및 미국 협상팀이 영변 핵 시설 폐기 대가로 제재 완화 및 협상 타결을 약속한다는 건 그야말로 북한의 순진한(Naive) 오판이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이후 미국 내부에서도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 선에서 트럼프가 협상을 타결할 것이라는 비난과 전망이 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도 영변 핵 시설 폐기로 인한 제재 완화를 약속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글로벌 외교안보 영향력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포괄적인 핵 신고와 완벽한 검증, 추가적인 핵 시설 및 탄도 미사일 폐기 등 전면적인 핵 폐기, 전면적인 제재 완화를 거론한 이유이다. 전면적 핵 폐기 안건으로 북한의 속내까지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미국은 계산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압박한 대북 제재 결의 해제를 교환하자는 스몰 딜을 주장한 데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완벽한 핵 폐기와 완벽한 제재 완화라는 그랜드 바겐을 역으로 제안했으니 애초 협상 타결이 쉬웠을 리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영변 단지 이외 다수의 비밀 핵미사일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협상에서 흘리자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정보력을 안이하게 판단한 후 트럼프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 김 위원장. 반면 그는 속내를 완전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출시키고 말았다. 

미국은 결국 북한이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핵 동결 선에서 타결, 제재 완화를 약속 받고 국제적인 지원 속에 남북 경협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북한을 압박했다. 영변 핵 시설 이외 고농축 우라늄 시설 및 다른 지역의 핵탄두를 협상 안건으로 올리지 않으려는 북한의 속내가 미국에 노출되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은 자신이 공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미국과의 협상 결렬 책임을 트럼프에게 떠넘기며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빈손으로 떠난 김 위원장의 고심은 향후 더욱 깊어질 것이다. 

북한은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력한 제재 속에서 김 위원장이 나아갈 길은 많지 않아 보인다. 뉴욕타임즈는 두 정상의 자기중심적 자아(ego)가 결국 나쁜 베팅을 이끌어냈다며 당분간 두 정상이 회담을 통해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결렬 이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맡아 달라는 과제 아닌 과제를 부여했다. 결국 두 정상의 경로 이탈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로 가는 운전대를 잡게 됐다. ‘끝까지 잘될까’라는 의구심을 ‘끝까지 잘되게끔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 그의 중재 외교 지혜와 대한민국의 총체적 노력이 다시 한 번 요구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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