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후폭풍]① 美 주류와 대립하는 트럼프·金, 그리고 文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8 15: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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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 결렬’ 이면에 숨겨진 세 가지 함수(上)
일본 보수층, 한·미, 북·미 갈등 부추겨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이로써 동북아 정세는 또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노이 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시사저널 취재진은 국내 여러 한반도 문제 전문가 및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북·미 회담 결렬’ 이면에 숨겨진 세 가지 함수를 찾아냈다. 결국 이 3대 이슈가 향후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 일러스트 신춘성

1. 민주당 공세 차단 위해 결렬 택한 트럼프

북한은 이번 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 의미 있는 선언이 나올 경우 축하연까지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이 함께 베트남을 찾은 게 이를 말해 준다. 

잠정 합의문은 분명 존재했던 것 같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월31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6·12 싱가포르 합의안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설명한 게 힌트다. 싱가포르 합의는 크게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미군 사망자 유해송환 등이다. 이 중 쟁점은 유해송환을 제외한 나머지 3개다.

이와 관련해 비건은 강연에서 북·미 관계 수립은 ‘연락사무소 개설’, 평화체제 구축은 ‘종전선언’, 북한 비핵화 카드로는 ‘인도적 지원에 한한 제재 완화’를 언급했다. 비건이 하노이로 떠나기 전 “협상 의제가 12개 이상”이라고 밝힌 것도 구체적인 합의서가 있음을 의미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선 조치 후 보상’이라는 전통적인 협상 방식만을 고집한 국무부 관료들에게 실망했지만, 기업인 출신 비건에겐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결렬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인할 문서는 준비해 놓았었다”고 말했다. 

힌트는 2월27일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VOX)의 단독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복스는 합의 내용으로 “북·미 양국은 한국전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개설에 서명하며, 이럴 경우 북한은 한국전 참전 미 전사자 유해를 추가로 송환하고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용 물질을 생산하는 것을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복스의 반응이다. 매체는 기사의 부제로 ‘이건 김정은의 대승리다. 미국을 위해서라고? 별론데(It’s a huge win for Kim. For the US? Not so much)’라고 달았다. 이는 미국 쪽 시각을 대변한다. 이대로 합의문에 서명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 돌아가서 비난의 중심에 섰을 가능성이 크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찍은 사진에 보면, 두 정상은 헤어지기 전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회담 결렬을 선택한 것일까. 해답은 3월3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 있다. 그는 “민주당은 북한과의 아주 중요한 핵 정상회담 때 공개 청문회를 열어, 유죄를 선고받은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인 코언을 인터뷰함으로써 미국 정치에 새로운 저점을 찍었다”며 “이것이 (내가 회담장을) 걸어 나온 것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종합하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이 정도 수준에서 북한과 합의하면 더 문제가 될 거라 판단했을 수 있다.

2월27일 만찬과 28일 모두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쉬지 않고 입에 올린 것은 ‘북한의 번영’과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였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북한이 수긍하지 못할 수준으로 비핵화 기준을 높이되, 이번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을 이해한 북한으로선 ‘회담 결렬’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겉으로 드러난 갈등 구도는 ‘트럼프 대 김정은’이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미국 주류층 대 북한’이다. 어찌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모두 미국 주류층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이들과의 싸움은 차기 대선의 승리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자신이 구상한 북핵 해결도 그래야 가능하다. 

물론 빅딜이 성사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회담이 결렬로 이어진 것은 양측의 협상카드가 맞지 않아서다. 2월28일 밤에 열린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 수 있듯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검증을 협상 카드로 내놓았다. 이를 토대로 제재 해제를 요청했을 게 분명하다. 북한은 부분 해제라고 했지만, 석탄·철광석 등 5대 항목에 대한 해제는 전체 제재의 90%를 넘게 차지한다. 충분히 미국으로선 전면 해제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 정도 해제를 원한다면 영변 이외의 추가시설을 내놓으라’고 미국이 요구했고, 여기에 북한은 난색을 표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고 양 정상이 대립한 것이다. 국회 외통위 간사인 이수혁 민주당 의원은 “회담 결과를 놓고 볼 때, 미국은 시설과 핵물질·무기 등을 2단계로 구분해 해체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 선언’은 약이 됐다.   

☞계속해서 (中)편 [하노이 후폭풍]② 문대통령 향한 美주류의 불신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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